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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갈피글(시.좋은글.에세이.344

· 최순희-캥거루들의 행진 「최순희 - 캥거루들의 행진 / 감꽃이 필 무렵 」 [221105-161400-3] 배움을 저울질하고, 자로 재고, 무엇과 비교하는 과정을 우리는 지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지식으로는 자기 인생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다.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느껴질 따름이다. 언뜻,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지만, 물 흐르듯이 잠시도 머무르지 않으니 생각은 정리되지 못하고 마음에 파문만 일어난다. 생각이 정리되지 못함은 파도가 치는 것과 같고 파도가 일렁이니 그 물에 자신을 비춰볼 수가 없다. 바람 없는 호수처럼 마음도 잠잠해야 한다. 짤막한 한마디 말에도 반드시 그 뜻이 담겨 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고, 공짜도 없고, 정답 없듯이 뜻 없는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또, 생각으로는 닿았지.. 2018. 4. 14.
·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박준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19-0909-1(1)]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P 19 - 박준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 2017. 07. 01. 2017. 9. 30.
빈센트 반 고흐-반 고흐, 영혼의 편지/테오에게 빈센트 반 고흐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테오에게. 너에게 작업 방향을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싶어서 작은 스케치를 동봉한다. 아직 눈은 좀 피곤하다. 그러나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 구성을 스케치해 보았다. 늘 그렇듯 크기는 30호 캔버스다.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을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벽은 창백한 보라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이 깔려 있다.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고, 시트와 베개는 라임의 밝은 녹색, 담요는 진홍색이다. 창문은 녹색,.. 2017. 6. 26.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 모든 요일의 여행」 매일 그곳에서도 해는 뜨고 졌을 텐데 그곳의 해라고 다르진 않았을 텐데 해가 뜨면 아침이라는 사실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을 냈다. 해가 지면 집에 갈 생각에, 매일 반복되는 그 생각에 집착했다. 같은 해가 이곳에도 뜨고 진다. 나는 넋을 잃고 풍경 저 끝에서 이 끝까지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닌다. 마치 해 지는 걸 처음 본 사람처럼. 그곳과 이 곳은 다른 해가 아닌데 그곳과 이 곳에서의 내가 너무나도 달라 해도 달도 별도 다르게만 보인다. 그곳에서도 잠깐이라도 여행자로 살 수 있다면, 퇴근길 1분이라도 출근길 1분이라도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잠깐이라도 행복한 내가 될 수 있다면. - p138 - - 김민철의 '모든 요일의 여행 중'에서 [t-16.11.16. 20.. 2016. 11. 16.
김언히 - 보고 싶은 오빠 「(다섯번째시집) 김언히 - 보고싶은 오빠」 보고 싶은 오빠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 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2016. 6. 27.
정여울 - 반가운 손님이 되는 길 「서울대총동창신문 」 반가운 손님이 되는 길 우리 집 근처에는 순댓국과 해장국을 파는 작은 국밥집이 있다. 지나갈 때마다 꼭 주인아주머니의 안부를 묻거나 '장사가 잘 되고 있나’ 살펴보게 된다. 내가 갈 때마다 아주머니는 반갑게 맞아주시고 최고의 밥상을 준비해주신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그렇게 ‘최고의 손님’으로 대접해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장사를 한다면 저분처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11시가 다 되어 국밥집을 지나가는데,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영업을 끝내시고 정답게 소주를 한잔 하시고 계셨다. 순댓국 한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를 앞에 두고 내외분이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정겹고 따스해 보이던지. 아름다운 분들은 이렇게‘무대 뒤편’에서.. 2016. 2. 23.
공지영-딸에게 주는 레시피/작가의 말 중에서 「공지영 에세이 - 딸에게 주는 레시피」 [210702-174115] 많이 경험하고 많이 살아내라. 죄라도 많이 지어라. 제일 나쁜 것은 젊은 애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츠리고 있는 거야. 영화나 책 속으로라도 들어가 모험을 해라. 늙어보니 추억만 남는다. - p22 - 엄마가 안제나 그렇게 말하듯, 삶은 자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네가 그렇게 살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 작은 실수들, 많은 실패들, 끝나지 않은 시련들을 너를 성숙하게 만들려는 신의 섭리로 생각해보렴. - p308 - 인생을 행복하게만 살다 간 사람은 없어. 다만 덜 행복하게 더 행복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어떤 것을 택할지는 네 몫이야.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이 순간을 깨어.. 2015. 7. 29.
지예-몽정의 편지/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냈다. 지예 -「몽정의 편지」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녀를 처움 가질 때 보다 더 떨렸다. 그녀가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었다는 감정이 더욱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부드럽게 컨트롤했다. 그녀의 속은 여전히 깊었다. 그녀가 작게 신음하자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그녀에 대한 익숙함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내조 아래, 난 내 세상을 만난 듯 내 무대를 마음껏 펼쳤다. 바보 같고 등신 같고 찌질해 보였겠지만 꼭 묻고 싶었던 말이 결국 목구명까지 치밀어 나를 간질었다. 결국, 그 질문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잘해? 내가 잘해?" 그녀는 나의 눈을 똑똑히 보며 대답했다. "너." 대답을 듣자마자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얼른 페니스를 꺼내어 그녀의 배 위에 갈겼다. .. 2014. 10. 18.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장세희 -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밥과 몇 가지 반찬 풍성한 식탁은 아니어도, 오늘 내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누군가 나에게 경우에 맞지 않게 행동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태양의 따스한 손길을 감사하고, 바람의 싱그러운 속삭임을 감사하고, 나의 마음을 풀어 한 편의 詩를 쓸 수 있음을 또한 감사하렵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커다란 축복으로 여기고, 가느다란 별빛 하나 소소한 빗방울 하나에서도 눈물겨운 감동과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맑은 영혼의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 장세희. [t-14.0.. 2014. 4. 26.
오 자히르 - 나는 자유다 · 「파올 코엘료 - 오 자히르」 모든 사랑은 여행이다. 그대에게로 떠나는,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떠나는 ..., 그렇게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아내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영화에서 보고, 책과 잡지에서 읽고, 텔레비전 방송에서 본 것과 비슷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냈었다. 내 이야기 속에서 '사랑'이란, 점점 자라나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그때부터 알아서 생명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었다. 가끔 물을 주고 이파리만 잘라주면 되는 식물처럼, '사랑'은 애정, 명성, 편안함, 성공의 동의어였다. '사랑'은 미소나, '사랑해!' 혹은 '당신이 집에 돌아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와 같은 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태는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명 길을 건너기전, 나는.. 2014. 4. 11.
눈 오는 밤 「김성동 - 눈 오는 밤」 눈 오는 밤 천지를 삼킬 듯 눈은 내리고 개울물은 꽝꽝 얼어붙었다 . 배는 고프고 목은 타는데 눈보라는 또 휘몰아친다. 나는 왜 또 이 산 속으로 왔나 물통은 또 어디에 있나. 도끼로 짱짱 얼음장을 깨면 퍼들껑 멧새 한 마리. 천지를 삼킬 듯 눈은 내리는데 나한테는 반야(般若)가 없다. 없는 반야(般若)가 올 리 없으니 번뇌(煩惱)를 나눌 동무도 없다. 산속으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평안도(平安道) 시인(詩人)은 말했지만 내겐 버릴 세상도 없다. 한번도 정식으로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그립다. 사람들이 보고 싶다. 배고픈 것보다 무서운 건 외로움이고 외로움보다 무서운 건 그리움이다. 몀불(念佛)처럼 서러워서 나는 또 하늘을 .. 2014. 3. 9.
무라카미 하루키 -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추운 겨울날의 해질 녘에 나는 단골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삿포로 중간 병)와 굴튀김을 주문한다. 그 가게에는 다섯 개짜리 굴튀김과 여덟 개짜리 굴튀김,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정말 친절하다. 굴튀김을 많이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굴튀김 큰 접시를 내어준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에게는 굴튀김 작은 접시를 내어준다. 나는 물론 여덟 개짜리 굴튀김을 주문한다. 오늘 나는 굴튀김을 배불리 먹고 싶으니까. 굴튀김에는 잘게 채 썬 양배추가 푸짐하게 곁들여 나온다. 달착지근하고 신선한 양배추다. 원하면 추가로 주문할 수도 있다. 추가 요금은 오십 엔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나는 정말로 굴튀김 그것이 먹고 싶어서이지 곁들여 나오는 양배추를.. 2014. 2. 9.
뇌성마비 김준엽 시인 "내 시를 돌려달라".. 국민애송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알고 보니 「국민일보 - 2014. 01. 04. 쿠키 사회」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가 페이스북에서 저작권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시를 쓴 실제 주인공은 2014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 보치아 선수로 출전하는 김준엽씨로 파악됐다. 솟대문학 방귀희 발행인은 3일 페이스북을 통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이라는 시가 윤동주 시인으로 알려졌으나 이 시를 쓴 시인은 뇌성마비 시인 김준엽씨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소개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2014. 1. 21.
행복하게 사는 방법 ·「우화 - 행복하게 사는 방법」 한 소녀가 산길을 걷다가 나비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녀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거미줄에 걸려있는 나비를 구해 주었습니다. 니비는 춤을 추듯 훨훨 날아갔지만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찔려 붉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천사로 변하더니 소녀에게 다가왔습니다. 천사는 자기를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면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천사는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 소근 거리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도록 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행.. 2013. 10. 20.
The Big Picture -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 「더글라스 케네디 - The Big Picture」 인생은 짧은 이야기와 같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아니라 값어치다. - L.A. 세네카 . 책 표지 이미지를 선듯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책.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책 표지에 적힌 문구를 보고 읽게 된 책이다. 불안한 미래이기에 화가의 길을 포기했던 빌. 부모의 재정적 도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어릴적 꿈이었던 사진를 포기해야만 했던 벤의 이야기다. 이웃이 된 월가의 변호사가 된 두 남자. 벤은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이지만 뭔가 다른 삶을 꿈꾼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냈을 때의 성취감,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의 설레임, 첫 아이와 만남을 기뻐하며 하늘에 했던 감사함, .. 2012. 11. 11.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빨간 청어 「무라카미 하루키 - 잡문집」 빨간 청어 청어(ニシン)라는 생선을 꽤 좋아한다. 사전을 펼쳐보면, 청어는 '二審'이나 '二心' 같은 별로 눈에 확 띄지 않는 어휘들과 나란히 늘어서 있는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청어 초절임은 맥주 안주로 더할 나위 없이 최고다. 청어는 조금 희한한 생선이라 평소에는 자주 먹지 않지만, 이따금 못 견딜 정도로 당겨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청어 메밀국수 같은 음식이 일단 먹고 싶어지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당장 가까운 국숫집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막상 먹고 나서 크게 만족하거나 감동하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고, 결국은 그저 '청어 메밀국수'일 뿐이다. 그런 면이 청어라는 생선의 한계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점일 수도 있다. 청어는 영어로 헤링(herring.. 2012. 5. 6.
유화열삽화집-익숙한 그 집 앞/프롤로그 유희열삽화집《익숙한그집앞》 [210403-163611] 프롤로그 내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만든 그림책 하나를 갖는 것.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품어 온 "꿈" 같은 것이었다. 그 꿈 때문이었을까. 마땅히 살 책이 없으면서도 많은 시간 서점 안을 서성거려야 했고 인사동을 지나면서 괜한 설렘으로 스케치북을 샀던 것도 꽤 여러 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늦은 밤 시간에 전화를 걸 때가 없거나 긴 시간 동안 사랑을 해 보지 못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작업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그림 그릴 책상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부리나케 책상을 들여놓았다. 책상 위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글과 그림을 본다는 건 이제껏 내가 맛볼 수 없었던 기쁨이었다. 그렇게 새벽을 맞아 찬물로 세수하고 나면 .. 2012. 4. 2.
물의 이야기 「2007년 열린 문학 가을호」 물의 이야기 -오문옥- 맑은 물 마시며 얼마나 마음 달래며 왔는가. 컵속에 가득 찬 하늘 보며 나직한 물의 이야기 듣는다. 어떤 거친 생명도 고운 꽃으로 길러내라고 낮게 더 낮게 흐르며 살아 가라고 물은 말갛게 웃는다. 나도 말갛게 웃는다. - 2007년 열린 문학 가을호 에서 - 2012. 3. 31.
내가 알게 된 참 겸손 - 이해인 내가 알게 된 참 겸손 / 이해인 책을 읽다가 '겸손은 땅이다.'라는  대목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겸손은 땅처럼 낮고, 밟히고,  쓰레기까지 받아들이면서도  그곳에서 생명을 일으키고  풍성하게 자라 열매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더 놀란 것은 그동안  내가 생각한 겸손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나는 겸손을  내 몸 높이로 보았습니다.  몸 위쪽이 아닌 내 발만큼만  낮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겸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 발이 아니라 그 아래로  더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밟히고,  눌리고, 다져지고,  아픈 것이 겸손이었습니다.  그 밟힘과, 아픔과 애태움 속에서  나는 쓰러진 채 침묵하지만   남이 탄생하고 자라 열매맺는  것이었습니다. 겸손은 나무도,  물도, 바람도 아닌.. 2011. 10. 29.
덕배는 파도 위에서 한다 - 박형권 박형권 - ​『현대시학』 (2011년 5월호)   덕배는 파도 위에서 한다 / 박형권  나이 오십 바라보니 세상에 꽉 찬 것들도다 헐렁해 보이기 시작하고또 세상의 보드라운 것들이 나 잡수시오 하고 다가와도 가슴 벌렁거리지 않는데쌍끌이 기선망처럼 밀어주고 당긴네 살 터울 마누라는늦여름 모자반처럼 부쩍 감겨온다덕배는어제와 다름없이 일 톤짜리 조각배에마누라를 태우고 달맞이꽃 살포시 오므린 밤에 기름 한 드럼을 채워 넣었다덕배를 힘껏 짝사랑하던 머큐리 엔진도우당탕탕 내질러야 할 터인데 이제는 삐걱삐걱 수조기 우는 소리를 낸다이런 날에는 노래미 볼락들이 심해를 견디기 지루하여 물가로 밀려와뻐끔뻐끔 담배 피듯 플랑크톤을 흡입하는데 별빛과 검은 밤에 취하여 해롱거리는데뜰채로 걷어 올려도사내 몸 끌어당기는 첫 밤처럼 .. 2011. 10. 29.
나비와 광장(廣場) - 김규동 나비와 광장(廣場)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기계처럼 작열한 작은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眼膜)을 차단(遮斷)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寡默)한 묘지 사이사이 숨가쁜 Z기의 백선(白線)과 이동하는 계절 속 --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에 밀려 이제 흰나비는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 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신(神)도 기적도 이미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流域) -- 그 어느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흰나비는 또 한 번 스.. 2011. 10. 2.
이정하-우리 사는 동안에/그리움 때문에 삶엔 향기가 있다. 「이정하 - 우리 사는 동안에」 [211103-150537] 바람이 부는 것은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혹은 네가 나에게 보내는 바람엔 향기가 묻어 있다. 삶이란게 그렇습니다. 기쁨보단 슬픔이 더 많지요. 또한 사람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같은 양이라 할지라도 기쁨보단 슬픔을 더욱 깊게 느끼지요. 뿐만 아니라 기쁨은 순간적이지만 슬픔은 그렇지 않습니다. 슬픔의 여운은 기쁨의 그것보다 훨씬 오래인 것입니다. 왜그렇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 그 해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 이제는 그 까닭을 알 수 있게 되었지요. 비바람을 겪은 나무가 더욱 의연하듯 사람도 슬픔 속에서 더욱 단련되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헤세가 얘기했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우.. 2010. 11. 2.
송현-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내가 만든 섹스 병풍 마지막 8폭 송현 - 「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 드디어 내가 만든 섹스 병풍의 마지막 폭(8폭)을 소개한다. "체력이 아직도 강장하다면(60세에도) 한 달에 한 번 사정해도 무방합니다. 대개 사람의 기는 스스로 강성한 자도 있습니다. 남보다 뛰어나게 강성한 자는 억지로 억제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오랜 동안 사정을 하지 않으면 악성 종기가 생깁니다. 60세가 넘은 자는 수십 일 동안 교접 불능으로 마음이 상쾌하지 못하더라도 정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사정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에는 남자가 일생 동안 불과 1800회 정도 사정한다고 말하고 있는 데 반해서 킨제이보고서에서는 55세 까지 3.831회 사정한다고 계산하고 있다. 이라는 고전에는 도인 유경이라는 이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봄에는 3일에 .. 2010. 8. 19.
김동영-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안개 속의 풍경 김동영 -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LA에서 시카고까지 연결된 66번 국도와 40번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텍사스 북부의 앨버커키 이곳은 미국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고도가 높아서 여름에는 덥고 습하며, 겨울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 도시다. 네가 머물 때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그다음엔 어김없이 안개가 도시를 덮어버렸다. 그날 오후 비를 피해 들어간 카페. 해피 아워(Happy Hour)가 끝난 한가해진 카페 안은 밖에 깔린 안개처럼 커피 향이 가득했다. 그리고 난 거기서 널 보았다. 넌 거리가 내다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매달리다시피 앉아 이런 변두리 도시는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안개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진한 화장을.. 2010. 5. 31.
김용범-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平和로운 山間마을의 가을은 김용범 -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고려원시인선 19)」 평화에 대한 연구 - 21 平和로운 山間마을의 가을은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들은 휴가기간 중에만 平和로운 山間마을을 사랑한다. 山間마을의 사람들은 죄다 서울로 떠나고 흰구름 몇 점만이 산허리에 걸리어 있다.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엔 노인들만이 남아 텃밭을 일군다. 山間마을의 平和는 노인들이 일구는 텃밭의 면적만큼, 그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무우순만큼, 혹은 그 텃밭에서 머무는 흐린 구름 한 접만큼. -p19- 김용범 /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고려원시인선 19) 고려원 / 1992. 03. 01. 2010. 4. 30.
로트레아몽-말도로르의 노래/인간과 더불어 시작되어 인간과 더불어 끝날 그 환희 로트레아몽 / 「말도로르의 노래」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찿아서, 상상력으로 꾸며내거나 혹은 그들이 소유할 가능성이 있는 영혼의 고귀한 품성을 이용하여 글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 나는 잔인함의 환희를* 그리는 데 나의 천재를 사용한다! 일시적이거나 인공적이 아닌, 인간과 더불어 시작되어 인간과 더불어 끝날 그 환희. 신의 은밀한 결단 속에서는 천재는 잔인성과 결합될 수는 없다고? 혹은 잔인하기 때문에 천재를 가질 수는 없다고? 나의 말 속에서 증거를 보게 되리라. 당신들이 그걸 원한다면, 당신들은 내 애기를 듣기만 하면 된다. 용서하라, 내 머리카락이 머리 위로 곤두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나의 손으로 머리카락을 쉽사리 처음의 위치로 되돌려놓기에 이르렀으니까. 노래부르는 자는 그.. 2010. 4. 9.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痴人. · 「김병기 - 拾珠」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痴人. 부자면 부자인대로 부(富)를 따라 즐기고,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가난을 따라 즐겁게 살아라. 입 열어 웃을 줄 모르는 사람, 그게 바로 바보이니라. 부자는 부자여서 즐겁다면 가난한 사람은 또 가난한대로 어느 구석에선가 기쁨과 즐거움을 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참 이상한 존재다. 기쁨과 즐거움이 좋은 덧인 줄을 알면서도 그것을 찿아 누리지를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부자는 부자대로 고민이 많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또 고민이고 걱정이다. 그리하여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입가에 웃음을 짓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찡그리고 사는게 우리네 삶이다. 우리의 입은 찡그릴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고 또 울 수도 있다. 입의 기능은 이처럼 다양하다. .. 2010. 4. 7.
· 조너선 사프란 포어-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유일한 동물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211204-141531] "관심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올 가을에 제가 연극에 출연하는데 공연 작품이 이에요.. 전 요릭 역이고요. 물이 흐르는 분수도 설치할 거예요. 개막일 밤에 오고 싶으시면 오세요. 지금부터 십이주 후예요. 아주 근사할 거예요." "가도록 해볼께." 그녀가 말할 때 나오는 입김이 뺨으로 느껴졌다. "잠깐만 키스해도 돼요?" "무슨 소리니?"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고개를 뒤로 빼지는 않았다. "그냥 아줌마가 좋아서요. 아줌마도 저를 좋아하시는 것 같고요."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구나." 네 번째 실망. 왜 안 되느냐고 물었다. "난 마흔여덟 살이고 넌 열두 살이야." "그래서요?" "그리고 난 유부녀고." ".. 2009. 12. 13.
서로의 체온으로 「 박인식 -  TV동화 행복한 세상」   한 남자가 네팔의 눈 덮인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 눈보라까지 심하게 몰아쳐 눈을 뜨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인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멀리서 여행자 한 사람이 다가왔고 둘은 자연스럽게 동행이 됐습니다.  동행이 생겨 든든하긴 했지만 말 한마디 하는 에너지라도 아끼려고 묵묵히 걸어가는데 눈길에 엔 노인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눈에 묻히고 추위에 얼어죽을게 분명했습니다. 그는 동행자에게 제안했습니다. “이 사람을 데리고 갑시다. 이봐요.  조금만 도와줘요.” 하지만 동행자는 이런 악천후엔 내 몸 추스르기도 힘겹다며 화를 내고는 혼자서 가 버렸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노인을 업고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얼.. 2009. 12. 8.
윤경희-여행의 순간/바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윤경희 - 「여행의 순간 (느린 걸음으로 나선 먼 산책)」 시장을 누비고, 골목을 걷고, 강변을 산책하고, 공원에 들르고,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런던에서의 며칠은 그렇게 지나갔다. 걷는 동안 커피 냄새, 베이컨 냄새, 감자튀김 냄새가 느껴지면 어디든 들어가서 쉬는 시간을 보냈다. 돌아보면 신기하고 멋진 풍경을 보았을 때보다 내 마음대로 쉬는 시간,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p90) 윤경희 - 여행의 순간 (느린 걸음으로 나선 먼 산책) 앨리스 - 2009. 07.10. 2009.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