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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ㅅ - ㅇ

유화열삽화집 - 그녀에게 반할 때

by 탄천사랑 2012. 4. 2.

 

 

 

 

익숙한 그 집 앞 - 유희열 삽화집 / 중앙 M&B 1999. 07. 10.

 

프롤로그

내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만든 그림책 하나를 갖는 것.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품어 온 "꿈" 같은 것이었다.
그 꿈 때문이었을까.
마땅히 살 책이 없으면서도 많은 시간 서점 안을 서성거려야 했고
인사동을 지나면서 괜한 설렘으로 스케치북을 샀던 것도 꽤 여러 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늦은 밤 시간에 전화를 걸 때가 없거나
긴 시간 동안 사랑을 해 보지 못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작업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그림 그릴 책상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부리나케 책상을 들여놓았다.
책상 위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글과 그림을 본다는 건 이제껏 내가 맛볼 수 없었던 기쁨이었다.
그렇게 새벽을 맞아 찬물로 세수하고 나면

가슴 한가운데로 밀려오는 행복을 만나곤 했다.
부끄러움이 먼저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낙서처럼 끼적거린 글과 그림들, 그것들을 묶어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므로 나는 두 가지 소원을 이른 셈이다.
내가 만든 그림책을 갖는 것, 그리고 연주음반을 내는 것.
이제 아주 어려서부터 꾸어 온 꿈을 실현하게 됐으니
앞으로 십여 년 동안은 그다지 해 보고 싶은 일도 없을 것 같다.

 

 

5. 사랑 / 그녀에게 반할 때

내가 그녀에게 운동화를 사 주었다.

그걸 머리맡에 두고 흘끔흘끔 쳐다보느라 잠을 못 잤던 그녀, 나는 그녀에게 반했다.

전화기 속 그녀는 나한테 화가 나 있었다. 그녀는 쉬지도 않고 계속 따졌다.

그런데 스윽 연습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너 적어 놨니?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그녀의 준비성에 반했다.

늦은 시간 집 앞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집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 화장기 없는 맨송맨송한 얼굴로 나왔다.

나만 볼 수 있는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


작업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 다음날 눈을 떴더니 그녀가 있었다. 그녀의 눈부신 모습에 반했다.

이주일 아저씨가 된 그녀, "콩나물 팍팍 무쳤냐?" 나는 한 번만 더 해달라고 무릎 끓고 빌었다.

그녀의 원초적 유머에 반했다.

노천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흉보는데, 그녀와 내가 똑같은 걸 지적할 때 그녀의 독설에 반했다.


예쁜 발에 발찌가 매달려 찰랑거릴 때 그녀의 발에 반했다.

그녀와 설렁탕을 먹으러 갔다. 깍두기를 국물에 타 먹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의 식탐에 반했다.

 

 

상기 글은 <유화열삽화집 - 그녀에게 반할 때>를 필사한 것임.

[t-12.04.02.  210403-16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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