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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ㄷ - ㄹ12

부서진 가슴에서 야생화가 피어난다-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 수오서재 2023. 12. 21. 토끼가 새끼를 뱄다.  귤밭 전체의 공기가 예민해진 것이 느껴진다.  서귀포 귤밭의 50년 된 돌집을 집필실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던 작년 여름, 귤나무 사이로 이 흰 토끼가 처음 나타났다.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고 소리쳤다. ‘네가 왜 거기서 나오니?’   토끼도 선글라스에 장발을 한 야수를 보고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다음 날 보니 한 마리가 아니었다.  조금 어려 뵈는 흰 토끼가 또 한 마리 깡충거리며 뛰어다녔다.  며칠 후에는 검은 토끼도 모습을 나타내었다.    늘상 반바지에 웃통을 벗고 다니는 이웃 밭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누군가 집에서 키우다 ‘귀찮으니까 내다 버린’ 것이라고 말하고는 내가 남자인데도 쑥스러운지 팔짱.. 2025. 3. 5.
자신이 좋아하는 색으로 자신을 정의하라-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 수오서재 2023. 12. 21. 예민한 사람일수록 싫어하는 것이 많다.  우리가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예민함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자기 주위에 벽을 쌓는 쪽으로 그 재능이 사용되어선 안 된다.  우리를 상처 입히고 고립시키는 것은 우리의 예민함이 아니라 그 예민함으로 발견하고 선택하는 것들이다. 예민한 영혼으로 태어난 것은 신의 실수가 아니라 축복이다.  관계 심리학자들이 말하듯이, 예민함은 바로잡아야 할 심리 상태가 아니라 특별한 재능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다른 이들이 놓치는 현상의 이면을 보고,  울림 있는 내면세계를 가지며, 문학과 예술에 감동받는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도 뛰어난 감응력을 갖는다.  예민한 사람은 .. 2025. 3. 4.
네가 어떤 기분인지 내가 잘 알아-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 수오서재 2023. 12. 21. 봄의 주머니에서 꺼낸 이름들로 꽃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같은 종족의 사람이라도 저마다 이름이 있듯이 ……  날개는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만 우리는 아픔을 겪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잘 모른다.  누군가의 아픔이 어떤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아픔을 일반화시켜 말해서는 안 된다.  심리학 서적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해도 저마다의 아픔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상처마다 그 상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상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상처는 영혼의 일이므로 각각의 상처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 상처에 대한 존중이다.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큰.. 2025. 2. 8.
보이지 않는 스티커를 등에 붙인 고독한 전사-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 수오서재 2023. 12. 21. 부정의 프레임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긍정의 프레임으로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저도 요즘엔 읽을 책이 많으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와우... 이렇게 흥미진진한 책들이 내 책상을 둘러싸고 있다니!!!" 그러면 정말 책을 사랑하게 되고 한 자 한 자 눈에 잘 들어옵니다. 뭐든 세상을 이렇게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 같네요. 이 방법 또한 책이 저에게 준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제주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서귀포 돌집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도 유리창에 기대고 있던 그녀의 오른쪽 뺨이 어른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이 슬펐다.  상실은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고 있는 걸까?  그녀의 앞.. 2024. 4. 21.
당신 책을 읽다가 졸려서 베고 잤다-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 수오서재 2023. 12. 21.  당신 책을 읽다가 졸려서 베고 잤다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과 함께 생활한 인류학자 리처드 B. 리가 전하는 일화가 있다.  연구 기간이 끝날 무렵 리는  그동안 부족민들이 베푼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축제 날에 소 한 마리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달 전부터 소들을 살피며 다닌 끝에 다른 부족 마을에서 550킬로그램이나 되는 거구의 황소를 발견했다.  그 지역 부시맨 150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소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면서 축제 때까지 소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리가 축제를 위해 소를 샀다는 소문이 돌자 부시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찾.. 2024. 4. 11.
여행자를 위한 서시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열림원 1997. 05. 10.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 2022. 7. 14.
빈자의 행복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열림원 1997. 05. 10. 빈자의 행복차루는 허풍쟁이였다. 걸핏하면 허풍을 떨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노 프라블럼!"을 외쳤다. 차루는 키가 작고 못생겼다. 그는 내가 묵고 있는 남인도 마드라스의 호텔 앞에서 아침마다 릭샤(바퀴 셋 달린 택시)를 받쳐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내가 호텔 문을 나서면 차루는 운전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도 다른 릭샤꾼들을 제치고 재빨리 달려왔다. 그리고는 날 모시고 다니려고 이른 새벽부터 대기하고 있었다고 허풍을 떨었다. ​처음 차루의 릭샤를 탔을 때 연신 기침을 해대는 것이 안돼 보여 약 사먹으라고 차비를 더 얹어준 적이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날부터 차루는 아예 나를 자기 주인으로 모시기로 작정한듯 어딜가나 따라다.. 2022. 6. 30.
댄 브라운 - 다 빈치 코드 - 20 댄 브라운 - 「다 빈치 코드」 어둠 속에서 나온 랭던과 소피는 비상계단을 향해 고요한 대화랑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랭던은 어둠에서 조각 그림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이 미스터리는 아주 골치 아퍘다. '사법경찰의 반장이 내게 살인 협의를 씌우려 하고 있다.'  랭던은 속삭였다. "어쩌면 파슈가 바닥에 메시지를 적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소피는 돌아보지도 않았다."불가능 해요."   랭던은 어전히 미심쩍었다."반장이 나를 유죄로 만드는 데 아주 열심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쩌면 내 이름을 바닥에 적어 놓으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피보나치 수열은요? 그리고 P. S.는?    다 빈치와 여신을 나타내는 모든 상징들은요? 그것은 분.. 2022. 5. 14.
댄 브라운 - 다 빈치 코드 - 6 댄 브라운 - 「다 빈치 코드」자크 소니에르의 핏기 없는 시신은 사진에서처럼 바닥에 누워 있었다.  랭던은 강한 조명 불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시신 위로 몸을 숙였다.  기묘한 형태로 자기 몸을 배열하느라 삶의 마지막 몇 분을 써버렸을 소니에르가 다시금 놀라웠다. 소니에르는 제 나이에 맞는 노인으로 보였다.  모든 근육조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걸치고 있던 모든 옷가지들은 벗어서 마루 위에 단정하게 놓아두었다.  소니에르는 자기 등을 화랑의 긴 축과 정확히 일치시켜 폭 넓은 화랑 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팔과 다리는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나 아이들이 만든 눈 천사처럼 바깥쪽으로 뻗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사지를 벌린 사람처럼 보였다. 총알이 살.. 2022. 5. 12.
세 가지 만트라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열림원 1997. 05. 10. 산 모퉁이를 돌자 만년설을 뒤집어쓴 설산 히말리아가 아이맥스 영화처럼 거대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아래 납작바위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요기(요가 수행자) 한 명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눈은 지그시 감겨 있고,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두 손은 허공중에 무드라(깨달음의 형상)를 그리며 정지해 있었다. 신비 그 자체였다. 거대한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박혀 있는 불상처럼 그렇게 요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허리까지 드리워진 긴 머리카락만이 이따금씩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요기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첫눈에 그의 아름다운 자태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완벽한 스승이었다. 바로 그런 스승을 만나기 위.. 2007. 9. 15.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480원 어치의 축복 · 「류시화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480원 어치의 축복 누구나 한 번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이유 없는 허무감과 슬픔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마치 어느 전생에선가 무척이나 힘든 삶을 살았던 것처럼 원인 모를 슬픔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 무렵의 내가 그랬다.  나는 인생의 허무감에 젖은 채로 버스를 타고 북인도 대륙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생의 슬픔만이 아니라 먼 전생으로부터 전해지는 어떤 슬픔이 나를 길거리에서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런던 어는 날. 내가 탄 버스 위로 성자 한 명이 오랜지 색 누더기를 걸치고 올라탔다. 이마에는 노란색. 붉은 색. 흰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고  발꿈치까지 내려올 성싶은 긴 머리는 둘둘 말려 머리 꼭지에 얹혀 있었다. 성자는 버스에 타자마자 운전사와 심한.. 2007. 5. 24.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열림원 1997. 05. 10.나는 지금 낯선 마을에 와 있다.마을의 이름은 '쿠리'이다. 북인도 라자스탄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 몇 안 되는 흙벽돌 집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엎드려 있다. 내가 이 외딴 마을까지 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 번째 인도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새로운 여행 방법을 생각해 냈다. 어차피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지도 위에 한 점을 찍어 그 장소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몇 년째 갖고 다닌, 귀퉁이가 해진 인도 지도를 무릎 위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서너 바퀴 돌린 뒤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찍었다. 눈을 떴을 때 내 집게손.. 2007.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