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총동창신문 」
반가운 손님이 되는 길
우리 집 근처에는 순댓국과 해장국을 파는 작은 국밥집이 있다.
지나갈 때마다 꼭 주인아주머니의 안부를 묻거나 '장사가 잘 되고 있나’ 살펴보게 된다.
내가 갈 때마다 아주머니는 반갑게 맞아주시고 최고의 밥상을 준비해주신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그렇게 ‘최고의 손님’으로 대접해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장사를 한다면 저분처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11시가 다 되어 국밥집을 지나가는데,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영업을 끝내시고 정답게 소주를 한잔 하시고 계셨다.
순댓국 한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를 앞에 두고 내외분이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정겹고 따스해 보이던지.
아름다운 분들은 이렇게‘무대 뒤편’에서도 멋진 뒷모습을 보여주시는구나.
장사할 때만, 문을 열었을 때만 친절하고 멋진 것이 아니었구나.
그 뒤로 나는 그 국밥집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국밥뿐 아니라 족발과 순대 또한 맛있는 집,
무엇보다도 주인아주머니의 밝은 미소가 음식을 더욱 맛있게 느끼도록 만드는 따스한 장소였다.
하루는 함께 간 일행과 국밥을 맛있게 먹고 막 일어서려 하는데, 아주머니가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한동안 말을 걸지 못하고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신 아주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요새 많이 피곤하신가봐요.
보통 몇 시에 출근하세요?”
아주머니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그 순간에조차 활짝 웃으며 말씀하신다.
“새벽 세 시나 네 시면 출근하지요.”
“네? 새벽 서너 시요? 그럼 3시간 정도밖에 못 주무시네요.”
“아휴, 그렇게 일해도 간신히 먹고 사는 걸요.” 이러신다.
국밥집의 하루가 그렇게 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파우치포장을 해서 식재료를 조달받는 프랜차이즈점들과 달리,
이곳은 말 그대로 ‘가내수공업’으로 재료를 하나하나 손질해서 만드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모든 음식이 맛있는 거군요.
부추무침 하나, 깍두기 하나, 김치까지 다 아주머니 손으로 하시는 거네요.”
가끔 너무 몸이 고단해서 프랜차즈점으로 전환할까 유혹을 느끼지만,
이 맛과 이 분위기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힘들어도 계속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드는 작업방식을 고수하신다.
“프랜차이즈점에서는 이런 맛이 절대 안 나요.
이 집 국물은 뭔가 달라요.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있어요.”
“아이구, 감사해요.
‘정말 맛있다’는 그 칭찬 한마디 듣자고, 우리가 이 고생을 참는답니다. 하하.”
내 친구는 혼자 점심을 먹을 때마다 단골 비빔밥집을 찾아간다.
그 비빔밥집도 ‘나의 순댓국밥집’처럼 모든 재료를 손으로 매만지는 전형적인 ‘손맛’이 살아있는 맛집이다.
그런데 비빔밥 가격이 너무 싸서 걱정이라 한다.
가격이 5천원인데 반찬도 푸짐하게 여러 가지를 매일 바꿔주니, 내 친구는 부담스러웠다.
비빔밥을 다 먹고 나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는데 그 아메리카노 가격이 무려 사천오백 원이다.
그러니 비빔밥이 ‘지나치게 싸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친구는 ‘반찬은 주지 말고 비빔밥만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비빔밥집 아주머니가 어느 날은 비장한 표정으로 친구에게 다가왔단다.
“우리 집 김치랑 반찬이 마음에 안 드세요?
이거 다 우리가 손으로 손질해서 정성스럽게 만든 거예요.
다른 분들은 다 맛있다고 하시던데, 손님은 입맛에 안 맞으세요?”
내 친구는 작은 소상공인의 가게를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인데,
본의 아니게 음식점 주인의 자부심을 건드린 것이다.
생각해보니 ‘반가운 손님’이 되는 최고의 방법은 남김없이 맛있게 먹고,
‘정말 맛있다’고 외치며, 자주 가서 활짝 웃는 것이다.
멋진 주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멋진 손님이 되는 곳을 가르치는 곳은 없으니, 우린 각자 알아서 ‘반가운 손님이 되는 길’을 배워야겠다.
글 - 정여울/작가·문학평론가
출처 - 서울대총동창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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