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글/갈피글(시.좋은글.에세이.344 아무래도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 -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아무래도 좋다. 이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은 도너츠의 구멍과 같다. 도너츠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존재로 받아들이느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도너츠의 구멍 때문에 도너츠의 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바람이다. 분명히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잡으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마음이란 사용하는것이 아니다. 마음이란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다. 마음은 바람과도 같아서 당신은 그 움직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산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역자 - 신효삼 하문사 - 1999. 05 17. [t-23.04.26. 230419-164857] 2023. 4. 26. · 이욱정-쿡쿡/인생 시계는그 사이에도 사정없이 똑딱똑딱 흘러간다. 이욱정 - 쿡쿡 (누들로드PD의 세계 최고 요리학교 르코르동 블뢰 생존기)」 [230121-152857] 한겨레 기사를 보고 읽게 된 책. “지구 상 6000개였던 언어가 지금 500여 개도 안 남았다고 하잖아요. 요리도 마찬가지 운명 같아요. 식문화는 인류가 자연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살아남은 지혜의 총체죠.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지고 있는데 안타깝죠. 그 안에 우리가 처한 먹을거리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도 있죠.” ☞ 원문보기 : 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568153.html 레스토랑에서야 셰프가 차려준 식사를 먹는 손님 노릇만 하면 되지만 삶에서는 나 자신이 셰프가 된다.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질과 품격이 .. 2023. 1. 22. 김동영-나만 위로할 것/일은 어떻게 하고 긴 여행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동영 - 나만 위로할 것」 [230118-161042] 일은 어떻게 하고 긴 여행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일은 하지 않아요. 그만뒀어요. 여행 중이에요." 아저씨는 조금 감탄하는 듯하더니, 여행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듯 눈을 슬며시 감았다 떴다. "용기가 대단하네. 내가 자네 나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탠데." 난 침을 삼키고 말했다. "용기는요. 그저 어느 날 일자리가 없어져서 시작한 여행일 뿐이에요. 사실 저는 언제나 불안하거든요. 제가 하는 일은 거의 걔약직이거나 프리랜서라 자주 이렇게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져요.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이제 33살이니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떠돌아다니기만 해도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해요. 하지만.. 2023. 1. 19. 우리가 건너는 겨울은 큰 강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 [230118-145024] 슈베르트의 마을을 背景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침엽수림이 보인다. 세상은 모두 흰 눈으로 덮이고, 간혹, 우편물을 실은 馬車차만이 古城으로 떠나고 있었다. 따듯한 홍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겨울의 깊은 우수 속에 잠기고 낡은 털옷을 풀어 새롭게 외투를 외투를 짜는 어머님의 뜨게질만이 무료하게 계속되는 동안, 우리가 건너는 겨울은 큰 강, 얼어붙은 얼음장 밑에서 도도히 살아 흐르는 물길 같은 침묵 뿐이었다. -p75- 김용범 /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고려원시인선 19) 고려원 / 1992. 03. 01. 2023. 1. 18. 김용범-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침묵의 박쥐우산 「김용범 -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고려원시인선 19)」 [210131-153341]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침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슴마다 감추어 두고 있던 침묵의 박쥐우산 하나씩을 비오는 거리에서 편다. 2단으로 접혀 있는 그 우산 하나만큼의 넓이로 우리는 빗발 속에서 보호된다. 그리고 서들러 귀가를 하며, 하루씩 권위를 잃어가는 家長의 능력과 비오는 날의 저으기 쓸쓸한 귀가, 오늘 나는 청빈을 그 생애 전체로 지켰던 고절한 엣 선비의 列傳을 分析하게 될 것이다. 청빈, 그리고 金力과 家長의 能力, 이런 二重性을 지니고 밤세워 散文을 쓰게 될 것이다. 암담한 가을 속에 2단으로 접혀 있는 박쥐우산을 펴 들듯 그렇게 빗발 속에서 보호되기를 원할 것이다. -p56- 김용범 /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 2023. 1. 16. 안소영-책만 보는 바보/우르르 천둥소리가 들리는듯하였다. 「안소영 - 책만 보는 바보」 [20-0124-1(2)] 햇살이 환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들어다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뼘가량, 두께는 엄지손가락의 절반쯤이나 될까.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책과 책을 펼쳐 든 내가,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쯤 될까. 기껏해야 내 앉은키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과 내 마음이 오가고 있는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 있다 할 만큼 드넓고도 신비로웠다 번쩍번쩍 섬광이 비치고 때로는 우르르 천둥소리가 들리는듯하였다. .. 2023. 1. 16. 이철환-연탄길/존재하는 것들은 「이철환 - 연탄길」 [230112-164845] 우산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첫 번째 아이는 비를 가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지팡이로 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아이는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빙긋이 웃으며 손가락만한 종이 우산을 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우산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아이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아이도 모두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존재하는 것들은 결코 하나의 의미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철환의 '연탄길의 꼭지' 에서 2023. 1. 12. 정호승-연인/사랑의 향기 「정호승 - 연인」 [230112-151017] 사랑의 향기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기는 거야. - 정호승의 '연인' 중에서 2023. 1. 5. 투에고-나는 가끔 내가 싫다가도 애틋해서/생은 아름답다 「투에고 - 나는 가끔 내가 싫다가도 애틋해서」 [230101-163628]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당장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현 시점에서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짧게만 느껴진다. 먼 훗날 똑같이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려도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한한 우주의 긴 시간 앞에서는 인간의 삶 자체가 하루살이보다 짧아서다. 그렇지만 허무하지는 않다. 비록 살아가는 동안에는 고통이 가득한 비극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저 멀리서 보면 반짝이다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벌그스레한 불꽃일지도 모른다. (p212) - 투에고 '나는 가끔 내가 싫다가도 애틋해서'중 생은 아름답다는 말에서 2023. 1. 2. 박지현-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짧은 이야기/잘못된 계산 위대한 역사가이자 수학자인 헤로도투스는 평균(平均)의 개념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 그 당시 그것은 대단한 발견이었으며, 헤로도투스는 그것에 완전히 심취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소풍을 떠났다가 작은 강을 만나게 되었다. 목적지로 가려면 그 강을 꼭 건너야 하는데 아이들 때문에 아내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러자 헤로도투스가 말했다. "걱정말고 기다리시오. 내가 강의 평균 깊이와 아이들의 평균 키를 잴 테니, 5분이면 충분하오." 그는 줄자를 꺼내 아이들의 키를 잰 다음 강으로 달려가 몇 군데의 지점을 돌면서 강 깊이의 평균치를 계산했다. 그런 다음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걱정할 것 하나도 없소. 아이들의 평균 키가 강의 평균 깊이보다 크니 강에 빠질 염려는 .. 2022. 12. 21. 케리 월터스-아름답게 사는 기술/추천의 글 케리 월터스 - 「아름답게 사는 기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희곡 이 좋아 일부러 그 연극을 보러 간 일이 있습니다. 조셉 버나딘 추기경의 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분이 임종 전 친지들에게 미리 써 놓은 성탄 편지들을 읽는 대목에선 절로 눈물이 났지요. 깊은 신앙의 용기로 가득한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 편지들을 읽으면 항상 정신이 번쩍 들곤 하였습니다. 이 세 분과 더불어 테아 보우만, 에티 힐레숨, 조나단 다니엘스, 카릴 하우슬랜더 등 7명의 삶을 조명한 책 은 매번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명작이었습니다. 출신과 배경이 다른 7인의 위인이 다양하게 살아온 모습을 '믿음. 사랑. 감사. 순명. 용기. 인내. 그리스도 닮기'라는 일곱 개의 덕목으로 나누어 집중.. 2022. 11. 30. 장영희-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책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꿈 「장영희 -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어제 힐리스 밀러(J. Hillis Miller, 1928~)라는 유명한 비평가가 쓴 책을 읽다가 너무나 좋은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책은 내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꿈이다 (A book is a pocket or portable dreamweaver).” ‘weave'는 '짜다, 만들어 내다'라는 뜻입니다. 만약 자신이 일생의 목표를 세웠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는 가벼운 책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드림위버(dreamweaver)'입니다. 참 실용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말 아닌가요? 책을 읽지 않더라도 들고 다니기만 한다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니까요. 책을 가지고 다는 것은 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2022. 11. 27. 힐러리 로댐 클린턴-살아 있는 역사 1/내가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힐러리 로댐 클린턴 - 살아 있는 역사 1」 내가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빌과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로 한 것과 뉴욕 주 상원의원에 출마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이제 나는 가능하다면 우리의 결혼생활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빌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을 내가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첼시를 그만큼 잘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나 혼자서도 앞으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빌과 함께 늙어가게 되기를 바랐다. 빌과 나는 우리가 공유한 과거와 신앙과 사랑을 도구로 이용하여 우리 결혼생활을 복구하는 데 몰두했다. 빌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이 .. 2022. 11. 22. 고도원-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 드려야 할 45가지/그 가슴에 내가 박은 못 뽑아드리기 「고도원 -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 드려야 할 45가지」. "야이...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그 말이 그토록 엄마를 화나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토록 엄마를 변하게 만드는 말인지도 몰랐어. 엄마는 다시는 부모한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수십 번 다짐을 받아냈고, 엄마는 그날 밤까지 나랑 얘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날밤 나는 엄마에게 사과했어. "엄마... 미나네요... 다시는 그런 말 아나께요... 엄마... 못먹구 못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이예요." 그리고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어. 어린 시절, 아마도 여러 번 부모님께 해서는 안 될 말을 해서 매를 맞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기억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내뱉었던 그 시절의 실수들은.. 2022. 11. 2. 림삼의 초대시 - 나의 그 밤 ·「서울일보 2022.10.31 - 시가있는 아침」 림삼의 초대시 나의 그 밤 휘영청 달빛 밝더니만 선연한 별빛 쏟아지고 아득히 오래 전부터 나 보아왔던 달, 별, 언제까지라도 나 보고있을 달, 별, 잘게 부서지는 달빛, 잘게 쉬 내리꽂히는 별빛, 쉬 고스란히 몸 위 내려앉아서 잠시 잠깐 자연의 일부 되어가다 나는 예 앉아있더니만 나는 저기 밤하늘 높이 솟아 오르고 있네 솟아 오르고 있네, 훨 훨 손 뻗어 달을 만지고 별을 보듬고 무수한 뇌리 속의 하많은 영상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달려나온 그 밤, 나의 시작노트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벌써 두 장만 달랑 남겨졌다. 하마 11월이라는 말인가? 새 해 들어서 다짐하던 것들이 하 많아서 차례로 하나씩 이루리라고 작심했었는데, 돌아본즉 제대로 갈무리한 건 단 한.. 2022. 11. 1. 구로야나기 테츠코-창가의 토토/리드미크 구로야나기 테츠코 - 「창가의 토토」 그러니까 첫 날, 토토가 학교 문 앞에서 엄마에게 "도모에가 뭐야?" 하고 물으려고도 했었지만, 이 학교의 이름인 는 흰색과 검은 색으로 이루어진 문장의 일종인 두 개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바로 아이들의 심신 양면의 발달과 조화를 바라는 교장선생님의 진심어린 발로였던 것이다. 리드미크의 종류는 아직 더 많지만, 어쨌든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제각기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소질을 주위의 어른들이 손상시키지 않고 어떻게 키워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리드미크만 하더라도, '문자와 말에 너무 치중하는 현대의 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이 마음으로 자연을 보고 신의 속삭임을 듣고 또 영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감성과 직관을 쇠퇴시키지는 않았을까? 해.. 2022. 9. 3. 유시민-유럽도시기행 1/피레우스에서는 드라이브를 유시민 - 「유럽도시기행 1」 세 번째 날 낮 시간을 온전히 피레우스에서 보냈다. 피레우스에는 두번 가보았다. 처음에는 전철을 타고 가서 도보여행을 했고, 두 번째 갔을 때는 렌터카를 썼다. 피레우스에도 역사 공간이 없지는 않지만 무엇을 보러 간 건 아니었다, 아테네에는 딱히 더 보고 싶은 데가 없어서 바닷가로 소풍을 갔을 뿐이다. 아테네 시내 여행은 대중교통으로 충분하지만 피레우스는 운전하며 다니는 게 훨씬 나았다. 아테네 도심을 벗어나면 길이 좋아 운전하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무덤, 무너진 성벽과 돈대, 박물관 같은 곳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으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카페리에 차를 싣고 살라미스섬을 방문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살라미스섬에는 산모퉁이 아래에 조.. 2022. 8. 19. · 유용주-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서문 (산문집) 유용주 - 「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 많이 아팠다. 길을 더럽히는 족속들은, 길은, 한번 자나 가면 종족이 묘연하다더니, 자취가 없다느니, 흔적을 찾을 수 없다드니 하면서 길을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길처럼 뚜렷한 흔적은 이 세상에 없다. 사진 판독기보다 더 극사실로 길은 지나간 사람들의 자취를 기억한다. 길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자국 정도는 우습다. 지나가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 들이쉬고 내뱉는 숨소리에서 몸 냄새까지 오래도록 저장하고 있다. 길을 함부로 대하면 다시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길가에는 아무렇지 않게 있다가 결정적일 때 증언하는 나무와 풀이 무수하게 살아 눈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함부로 내디뎌 신발 밑에 깔려 죽은 뭇 생명들의 원혼이 수천 년 잠자고 있.. 2022. 7. 26. 김승현-이야기가 있는 미술관/4장 벽을 넘어, 사로잡힌 사람들 김승현 - 「이야기가 있는 미술관」 키이스 해링 '빛나는 아이'를 몰래 헐어 7백 달러를 마련, 뉴저지 주 해변의 롱비치 섬으로 화려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도시의 세련된 젊은이들과 또래 애들이 몰린 롱비치에서 해링은 철저한 고독의 소외를 맛봤다. 그렇지만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롱비치의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완전한 예술의 세계를 경험했다. 해링은 고교를 졸업한 76년 피츠버그의 직업 예술 학교인 아이비 스쿨에 진학했다. 이 학교에서 그는 향후 자신의 미술 작업의 기본이 되는 순수 예술의 기본 기법과 함께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기술, 실크 스크린등 상업 예술의 기초를 배웠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여자' 애인 수진을 만났다. 그러나 해링은 1년을 채 다니지도 않고.. 2022. 7. 7. 강원국-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글을 쓰기 전에 독자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살아야 한다. 묻지도 않은 것을 쓰는 것은 가렵지 않은 데를 긁어대는 것처럼 의미 없다. 나는 주로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모르는 내용이다. 둘째, 의문이다. 셋째, 반문이다. 넷째, 자문자답이다. (p20) “받아 적지 말게. 지금은 받아 적어봤자 소용없네. 그냥 잘 듣게.”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부터”라는 말과 함께 받아 적기 시작하면 말이 아니라 글이었다. 그전까지는 말이 아니라 생각이었다. 그분은 말로 생각하고, 말로 글을 썼다. (p90) “셋째, 말은 꾸미거나 욕심 부릴 여지가 없어서 쉽다. 말은 핵심으로 곧장 들어간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2022. 6. 4. 장 자끄 상뻬-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 「얼굴 빨개지는 아이」 꼬마 마르슬랭 까이유는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아주 행복한 아이로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이도, 마르슬랭은 어떤 이상한 병에 걸려있었다. 그 아이는 그래, 혹은 아니, 라는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쉽게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여러분은, 그 아이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얼굴을 쉽게 붉힌다고 얘기 할 것이다. 아이들이란 겁을 먹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개 얼굴이 빨게지게 마련이라고, 그런데 마르슬랭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이었다. (p5) 어느 날, 마르슬랭은 여느 때처럼 얼굴이 자주 빨개지면서 집에 돌아오다가 계단에서 재채기 소리 비슷한 것을 들었다, 2층에 다다랐을 때, 마르슬랭은 또 한 번 그 재.. 2022. 5. 30. 임병식-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진성 민주당원이 쓴 진상 쓴소리) 임병식 -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오징어 게임〉의 ‘깐부’ 정신과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에서 드러난 ‘천화동인’ 담합 비리는 판이하게 다르다. ‘깐부’는 숭고한 자기희생인 반면, ‘천화동인’은 끼리끼리 나눠 먹는 추악한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p55) ‘일하는 국회법’은 우리 정치를 돌아보게 하는 낯 뜨거운 법안이다. 차라리 유치한 불이익 규정보다 세비 삭감과 국민 소환제라는 현실적인 내용을 담았어야 하건만 본질은 피해 갔다. (p97) 야당이 각박하게 변한 데는 여당 책임도 적지 않다. 집권 여당은 너른 품이 필요하다.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공감하면서 야당을 동반자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했다. 한데 독선과 진영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집권 내내 야당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21.. 2022. 5. 29. 미셸 투르니에-생각의 거울/고양이와 개 미셸 투르니에 - 「생각의 거울」 고양이와 개는 가장 가정적인 동물들, 즉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가장 잘 통합되어 있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집에 통합되어 있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고양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집 안에 있는 호랑이, 조그만 야생 동물이라고 말한다. 고양이가 개처럼 사람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고양이를 '가축' 이라기보다는 '길들어진 야생 동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가축과 길들여진 야생 동물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가축은 집 안에서 태어난다. 길들어진 야생 동물은 자연에서 태어난 뒤, 나중에야 집 안에 들여진다. 그런데 암고양이가 새끼를 집 밖에서 낳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암고양이는 집 밖에서 새끼를 낳.. 2022. 5. 29. 홍사덕-지금 잠이옵니까?/박대통령이 피살된 진짜 이유 홍사덕 - 「지금 잠이옵니까?」 박대통령의 피살과 신군부의 등장이 TV에서 드라마화되어 경쟁적으로 방영되던 95년 말께었다. 가끔 저녁시간을 내어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곤 하는 박봉환 장관(전 동력자원부 장관)께서 그날도 자리를 만들어 줬다.. 그런데 박장관이 그날의 중심 주제였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홍의원은 박대통령이 죽은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자본시장 개방과 관련된 문제를 한참 나누던 중에 느닷없이 꺼낸 말씀이라 다소 얼떨떨했지만 박장관이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반드시 슬기로운 얘기가 뒤따라 나오는 것을 잘 아는지라 "그게 뭘까요? 요 얼마전 TV드라마를 보니까 미CIA 서울 지부장이 김재규를 충동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런 것도 이유의 하나가 되겠습니까?" 라고 반문했다. 백.. 2022. 5. 27. 성진아-나도 멋지게 살고 싶다 성진아 - 「나도 멋지게 살고 싶다」 1 - 1. 자기 인정 -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러소 행복해진다' '너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려 하지 마라. 다만 완벽한 너 자신이 되라.' - 성 프란시스 드 살레스. 파올라는 몇 해 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음주 운전자의 차량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는 그녀의 왼쪽 다리를 허벅지에서부터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모델인데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니…. 몇 달 후 파올라는 건강을 회복하였지만 마음의 상처는 회복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모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하고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하지만 파올라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자신.. 2022. 5. 23. 이진이-하루다이어리/내 마음의 치료 봉사 이진이 - 「하루다이어리」 세계적인 억대 부자인 록펠러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53세가 되던 해에 그는 알 수 없는 병으로 1년밖에 못산다는 선고를 받았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그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자선사업을 해보라 권했고 그는 그때부터 자선사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1년밖에 못산다던 그는 98세까지 장수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언젠가 TV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을 이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밤이 되면 온갖 생각과 걱정으로 수면제 없이는 한숨도 자지 못하던 어떤 분이 재활시절에서 설거지 봉사를 시작하면서 두 달 만에 불면증이 말끔히 나았다는 것이다. 흔히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누.. 2022. 5. 17. 옴베르토 에코-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시간을 알지 못하는 방법 옴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지금 나는 어떤 물건에 관한 설명을 읽고 있다. 이것은 18금의 이중 케이스에 33가지 기능을 갖춘 회중시계(파텍 필립 89)이다. 이 시계를 소개하고 있는 잡지는 가격 표시를 빠뜨렸다. 지면이 부족했던 탓이 아닌가 싶다 '리라로 표시하기까지 번거로웠으면 그냥 달러로 백만 단위만 적어 놓아도 되었을 텐데.' 나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면서 그것 대신 5만 리라짜리 신형 카시오 회중시계를 사기로 한다. 페라리 자동차를 미치도록 갖고 싶지만 그것을 살 수 앖다는 것을 알기에 자명종 라디오를 사면서 마음을 달래는 사람과 심정이 비슷하다. 어쨌거나 회중시계를 가지고 다니려면 적당한 조끼도 한 벌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회중시계를 지니고 다니지 않고 책상.. 2022. 5. 13. 미셸 투르니에-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선험적 추리와 경험적 추리 미셸 투르니에 -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 나는 써야 할 말이 있는데 만년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만년필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어떻게 했는가? 찾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여 기억해내려는 방법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만년필을 사용한 것이 언제이며 어디인가? 그리고 나서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두 번째는 생각해 보지 않고 일어나서 이곳저곳을 찾아보는 방법이다. 나는 주머니, 서랍, 책가방을 뒤진다. 전자의 방법은 선험적(연역적)이고, 후자의 방법은 경험적(귀납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구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내가 추론으로 틀림없이 만년필이 가죽 점퍼의 왼쪽 안주머니에 있다고 확신했다 해도 하나의 의문은 남는다. 경험적으로 확인해 .. 2022. 5. 8. 눈을 감고 보는 길 「 정채봉 - 눈을 감고 보는 길」 창 밖은 바다였습니다. 푸른 밀물이 저만큼 서 밀려들고 있는데 그녀는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창문을 두들겼습니다. 나는 '밀물이 들고 있단 말이야, 가, 가라고!'하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어느덧 밀물은 그녀의 발목을 훔치고 무릎을 넘어서 가슴께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창을 열고자 팔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유리창은 손잡이가 없는 통유리였습니다. 안 돼, 문을 열어야해, 아니면 유리창을 박살 내든지, 나는 허둥거리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천장에서 오이꽃 같은 엷은 노란색 미등이 내려다보고 있는 병실. 옆 간이침대에서는 아우가 벽쪽으로 코를 박고 잠들어 있고 꿈에서 그녀가 밀물에 잠겨들면서 계속 두들겨 대던 유리창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 .. 2022. 5. 6. 토머스 트웨이츠-토스터 프로젝트 토머스 트웨이츠 - 「토스터 프로젝트」 최근 나는 미국의 환경주의자 데이비드 브로워(세계 최대의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 설립자)의 다음 글을 접하게 되었다. '정치인은 풍향계와 같다. 우리가 할 일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정확히 누구를 가르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화를 바람에 비유한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 유행, 과학, 문학, 신념, 기술, 이야기, 뉴스, 사건 등이 뒤섞여 문화라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문화라는 바람이 올바른 방향으로 불도록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들은 생업을 가지고 있다. 부업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한다. 원하는 건 여가 시간뿐. 나는 토스터를 만들면서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 2022. 5. 3. 이전 1 2 3 4 5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