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위로할 것 - 김동영 / 달 2010. 10. 08.
일은 어떻게 하고 긴 여행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일은 하지 않아요. 그만뒀어요. 여행 중이에요."
아저씨는 조금 감탄하는 듯하더니, 여행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듯 눈을 슬며시 감았다 떴다.
"용기가 대단하네. 내가 자네 나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탠데." 난 침을 삼키고 말했다.
"용기는요.
그저 어느 날 일자리가 없어져서 시작한 여행일 뿐이에요.
사실 저는 언제나 불안하거든요.
제가 하는 일은 거의 걔약직이거나 프리랜서라 자주 이렇게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져요.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이제 33살이니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떠돌아다니기만 해도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해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떠들고 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이미 식은 찻잔에 입을 대었다 떼고는 내게 말했다.
"솔직히 나도 예전에는 젊을 땐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나도 자네 나이 때는 나이를 잊을 만큼 열심히 일을 했지.
그때는 일이 내 존재의 이유었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지.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
내가 만약 시간을 되돌려 자네 같은 나이로 돌아간다면
난 일을 열심히 하기보단 내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말이지.
바빴고 열심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거 같아.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에 비해 추억이 없다네.
내가 기억하는 내 30대는 그저 밤을 새우고 일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어.
물론 그 시절 난 여행을 떠나 더 많은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지.
하지만 눈 앞에 쌓여 있는 일들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
내가 은퇴를 하자마자 그렇게 원하던 여행을 시작했을 때 알았지.
내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자네 같은 젊은이들이 여행에서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온실 유리창으로 물방울 하나가 타고 흘러내렸다.
"젊음이 뭔지 아나? 젊음은 불안이야.
막 병에서 따라낸 붉고 찬란한 와인처럼,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넘쳐흘러버릴지 모르는
와인 잔에 가득 찬 와인처럼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불안한 거야.
하지만 젊음은 용기라네. 그리고 낭비이지.
비행기가 멀리 가기 위해서는 많은 기름을 소비해야 하네.
바로 그것처럼 멀리 보기 위해서는 가진 걸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고 대가가 필요한 거지.
자네 같은 젊은이들한테 필요한 건 불안이라는 연료라네.”
그의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에는 꽤 많은 연료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실에는 장미가 불안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어디선가 와인 향기가 풍겨와 코 끝에 머물렀고 나는 약간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 이 글은 <나만 위로할 것>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3.01.19 230118-16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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