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120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 - 에필로그 ·「 박원숙 -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 에필로그 어제도 7천5백만 원짜리 어음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잘라도 잘라도 계속 튀어나오는 귀신의 모가지처럼 나는 아직도 재혼 시절 남편이 저질러놓은 빚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인생의 굴곡 고비고비마다 울 때,  '얘야, 힘내라,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우냐?'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한번 나를 환기시켰다.나는 열흘도 울고 보름도 울고. 그리고 또 한참을 눈물 속에 살아왔다. 내가 화려한 연기 생활 속에서 가슴을 치며 속으로 삼킨 울음들을 마지막으로 터뜨리는 기분이다. 인생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외면하는 자유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 그 마음을 이제부터는 좀 키워보고 싶다. .. 2022. 5. 21.
내 나이 오십 넘어 「 정덕희 -  그럼에도 행복하소서」  내 나이 오십 넘어 험준한 인생산 꼭대기에 앉으니 이제야 보이더이다 올라온 길, 내려갈 길 뒤엉킨 풀숲, 가로 막던 물줄기, 버티고 선 돌덩이 뒹굴고 넘어져 옷깃 털며 허허 껄껄 넘어온 길 내 나이 오십 넘어 정확한 세금 내고 깨달음 알았으니 손해 난 장사는 아닌 듯 하더이다. 내 나이 오십 넘어 깨달음 하나, 지난 세월 돌아보니, 그냥 그렇게 앙탈하며 왔을 뿐, 이미 나있는 길 걸어 온 듯하더이다.내 나이 오십 넘어 깨달음 둘, 그래 그걸 알았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걸 별 것도 아닌 인생 별것인 양 난리였소 내 나이 오십 넘어 깨달음 셋, 그렇 수 있는 일, 그럴 수 없다는 어리석음 아파하고, 집착하며 앙탈했더이다. 그럴 수 있다는 포용의 마음, 보자기에 쌓아 가.. 2022. 5. 4.
유리 나기빈-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알퐁스 도데(어머니) (단행본) 유리 나기빈 -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 오늘 아침 나는 B군 (센 유동군의 중위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을 만나기 위해 발레리앙 산으로 깄다. 그는 마침 위병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보루의 갱문(坑門) 앞에서 파리나 전젱,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에 대해 얘기를 하며 마치 보초를 서는 초병처럼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었다. 유동군의 군복 밑에 풋내기 화가의 모습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하던 말을 그치고 앞쪽을 바라보며 내 팔을 잡았다. "아, 마치 도미에의 그림같이 아름답군!"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사냥개처럼 빛나는 작은 잿빛 눈으로 발레리앙 산의 등성이에 나타난 두 노인의 모습을 손가락질 했다. .. 2022. 4. 4.
원성스님-꽃비/요정 왕국에서 온 아이(하) 원성 - 「꽃비」 "코코, 어서 뭐라고 얘기를 좀 해봐! 나의 귓가에는 네 가느다란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채송화 요정은 가슴을 졸이며 화분 주위를 맴돌았다. "나, 행복했어.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 늘 외톨이였었는데....., 그런 내게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어. 고마워, 고마워!" "안돼, 정신차려! 이렇게 너를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제발 부탁이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나는 너를 볼 수도 없는데 마지막으로 가는 너를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어." "울고 있구나. 울지마! 울지마!" 창밖에선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속으로 코코의 목소리는 점차 사라져갔다. --- "어떻게 되었습니까?" 향나무 신은 대청마루 기둥에 기대어 우울하게 앉아 있는.. 2022. 4. 1.
원성스님-꽃비/요정 왕국에서 온 아이(상) 원성 - 「꽃비」 먼 하늘 저편 뭉게구름 위에 요정들만이 사는 요정 왕국이 있었다. 아침마다 하늘 위로 일곱 빛깔 무지개가 펼쳐지고 저녁이면 보랏빛 오로라가 라벤더 향기를 뿜어내며 하늘 위로 커튼을 드리우는 그곳은 천상의 낙원이었다. 사시사철 푸르디푸른 숲에는 지구 상의 모든 종류의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숲 속에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새들이 햇살의 따스함을 노래하였다. 크고 작은 오솔길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숲의 중앙에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가 있었는데, 어찌나 투명하게 깨끗한지 제각기 색깔을 발하는 작은 조약돌들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물속에서 황금빛 비늘을 살랑거리며 헤엄을 치고 다니는 황금 잉어의 군무를 보고 있노라면 물 위에 떠오른 찬란한 햇살로 여겨질 정도로 눈이 부셨다. 요.. 2022. 3. 31.
유리 나기빈-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모파상(목가 (牧歌)) (단행본) 유리 나기빈 -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 마르세이유행 기차가 방금 제노아를 출발했다. 기차는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라가기도 하고, 바다와 산 사이에 뚫린 길을 마치 쇠로 만들어진 뱀처럼 스르르 미끄러져 가기도 하고, 가장자리를 은색 실 같은 잔물결로 두른 누런 모래사장 위를 기어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치 동물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갑자기 시커면 터널로 빨려들어갔다. 그 기차 맨 뒤칸에 한 뚱뚱한 여자와 젊은 남자가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이따금 서로 바라보곤 했다. 스물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는 출입문 곁에 앉아 바깥 경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피에몽테 지방 출신의 농민으로, 건장한 체격에 두 눈은 검고, 젖가슴은 풍만하고.. 2022. 3. 30.
한국불교신문 - 사이타마에서 온 편지 · 「한국불교신문 2022 신춘문예 동화 가작 ․ 평론 가작 입상작」 동화 가작 사이타마에서 온 편지 강명화(민재 스님) 2019. 9. 26. 바람은 차가웠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보리의 가슴은 뜨거웠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반반씩, 하지만 가족 모두 가는 여행이라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여행? 여행이라는 표현이 맞나. 보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엄마는 살던 집과 보리가 쓰던 책상과 책, 그리고 냉장고며 텔레비전도 다 중고나라에 팔아버리고 쓸만한 짐 몇 개만 한 달 전, 일본에 배편으로 부쳐버렸다. 그럼 여행이 아니고 살러가는 건데. “보리, 이제 비행기 이륙하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기도할 준비해야지.” 창밖을 내다보던 보리가 자세를 바로하며 두 손을 모은다. 작년 여섯 살이 되던 해.. 2022. 2. 24.
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부처 신영복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수씨께' 보낸 다음과 같은 귀절이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서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씨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 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메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 2022. 2. 18.
창작수필-긴 여정(변해명) 창작수필 - 「겨울호 통권 42호」 출발할 비행기의 개찰을 기다리며 무심히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서울에서부터 한 팀으로 묶여 여정(旅程)을 같이 하는 일행들이다. 말없이 앉아 있는 한 남자에 시선이 멈추었다. 50은 넘고, 어쩌면 60으로 접어든 것 같은, 그래서 직장에서 물러나고,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쉬고 싶은 마음으로 여정에 오른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신사였다. 체크 무늬 남방에 가벼운 여름 점퍼를 걸쳤는데, 들고 가는 배낭조차 없이 가벼운 차림이었다. 비행기가 있는 광장을 내다 보는 표정도 마냥 한가로워 보였다. 조금은 허탈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무료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서 그의 과거를 탐색해 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민망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2022. 2. 13.
·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바둑 두는 여자 「2022 한국일보 소설 당선작 - 바둑 두는 여자 」 기연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무심한 표정으로 개찰구를 빠져나오던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이 무슨 용기람. 순간의 망설임도 없는 자신의 행동이 내심 놀라웠다. “최정 씨 맞죠?” 자신에게 말을 건 게 확실하다는 걸 눈치챈 그녀가 기연을 바라보며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갓 스물이 되었을 것으로 기연은 짐작했다. 신문 전면을 가득 채운 바둑계의 입신킬러 최정이 지금 기연의 눈앞에 있다. 초단인 열네 살 소녀가 9단 여섯 명을 내리 꺾어 ‘지지옥션배’에서 8연승을 거뒀다는 기사였다. 흑돌 만큼이나 까만 눈동자와 당찬 입매가 고스란히 기연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기사를 오려 스크랩북을 펴들고 인물란과 예술란 중 어디에 넣을지를 고민했던 것까지. 그때 본 열네 살.. 2022. 2. 10.
이어령-읽고 싶은 이어령/미래를 읽는 법 이어령 - 「읽고 싶은 이어령」 추위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한겨울 추위 같아서는 다시 봄이 올 것 같지 않던 것이 어느새 흰눈이 덮였던 자리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 이 계절의 순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개구리는 땅 속에서 동면을 하고, 화초는 구근 속에서 찬바람을 견딘다. 그러나 인간은 계절의 순환에만 움직이는 벌레와 식물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들의 손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계절, 말하자면 문화와 역사의 또 다른 시간의 순환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다. 코트를 입고 벗는 것만으로는 적응해갈 수 없고, 또 달력을 넘기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인공의 계절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정치일 수도 있고, 산업일 수도 있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가치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순.. 2021. 12. 6.
스페인 너는 자유다 - 스페인에 가면 마음껏 춤을 출 거야 손미나  - 「스페인 너는 자유다」  마드리드 대학 철학 교수 었던 훌리안 마리아스가 미국에서 지낼 때 이런 말을 했다. "미국에서는 자유를 법으로 살지만, 스페인에서는 자유가 곧 생활의 냄새요 맛이다." 나는 손미나가 스페인 유학 생활에서 이 자유의 맛을 배우고 왔으리라는 상상을 해 본다. 진정한 자유의 맛에 익숙해지면 버르장머리가 없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밝아진다. 유학 후 의 손미나의 모습이 훨씬 더 밝아졌다. 그런 모습만으로도 나는 그녀가 30대 특유의 방황을 끝내고 자유와 생의 참의미를 만지고 왔음을 안다. 나의 사랑스런운 제자가 그런 좋은 경험을 책으로 펴낸다니 반갑고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 민용태(시인. 고려대 교수)   프롤로그 스페인에 가면 마음껏 춤을 출 거야.언젠가 내 생활에 '쉼.. 2021. 10. 26.
스페인 너는 자유다 - 스페인에 가면 마음껏 춤을 출 거야 ·「 손미나  -   스페인 너는 자유다」   마드리드 대학 철학 교수었던 훌리안 마리아스가 미국에서 지낼 때 이런 말을 했다."미국에서는 자유를 법으로 살지만, 스페인에서는 자유가 곧 생활의 냄새요 맛이다."나는 손미나가 스페인 유학 생활에서 이 자유의 맛을 배우고 왔으리라는 상상을 해 본다.진정한 자유의 맛에 익숙해지면 버르장머리가 없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밝아진다.유학 후 의 손미나의 모습이 훨씬 더 밝아졌다.그런 모습만으로도 나는 그녀가 30대 특유의 방황을 끝내고 자유와 생의 참의미를 만지고 왔음을 안다.나의 사랑스런운 제자가 그런 좋은 경험을 책으로 펴낸다니 반갑고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민용태(시인. 고려대 교수)  프롤로그 스페인에 가면 마음껏 춤을 출 거야언젠가 내 생활에 '쉼표'가 필.. 2021. 10. 25.
기도서의 시몬 ·「크라운 베이커리 -  제5회 크라운베이커리 주부 글잔치」    기도서의 시몬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시구가 있다.'시몬, 나뭇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가지 끝을 스치는 바람에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질 때면 나는 이 시를 읊조리며 또 다른 한 사람의 시몬을 생각하게 된다. 그를 만난 80년대는 정국이 혼란한 시기였다.청춘의 속성이 혼란에 빠지기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연일 계속되는 반정부 학생 시위와 최루 가스로 대학 가는 비틀거렸다.친분 잇는 고향 선배가 메가폰을 잡고 시위를 지휘하다 교정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아,어느 날은 교정에서 한 친구가 사복형사에 쫓겨 달아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교정을 가로질러 본관 앞의 가파른 충계를 달음박질쳐 올라 도서관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먹.. 2021. 9. 24.
못된 자식에게 차비 얻어 쓰긴 싫다 - 나문희 「김승희 - 어머니 발등에 입을 맞추고」    이희재라는 아주 고운 부인이 있었다. 올해 나이 일흔여섯이지만 아직도 아기자기하고 예쁘장한 것을 드러내고 좋아하는 그이는 소녀들과 잡담 나누기를 즐기고 주위 사람들에게 뭔가를 나누어주지 못해 안달이다. 보도블록 사이로 앙증맞게 피어난 들꽃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해 '정말 예쁘다. 그렇지?'라며 꼭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녀 같은 구석이 있는 그이는 바로 나의 어머니, 내 마음속에 항상 고즈넉한 산사 같은 여유를 심어주시는 분이다. 어머니는 지금 이모와 함께 돈화문 근처에서 따로 살고 계시다. 이것저것 화초도 많이 기르고 있고,  집 안 곳곳에 예쁜 것 좋아하는 어머니의 취향이 살아 있어 당신의 말씀에 의하면 딸네 아들네 순례하다 지치면 찾아드는 보.. 2021. 7. 30.
정호승-모닥불/나는 뗏목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정호승 / 「모닥불」 나는 뗏목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깊은 산에서 벌채한 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강에 띄우는 그런 뗏목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저 강을 건너기 위해 몇 그루 소나무로 어설프게 엮어서 태어난 초라한 뗏목에 불과합니다. 사실 내가 사는 곳의 강심은 그리 깊지 않아 굳이 배를 띄울 필요가 없답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도 어쩌다 하루에 한 두 명뿐이어서 강을 건너기에는 나같이 작고 볼품 없는 뗏목이 가장 알맞습니다. 나는 사람이 서너 명만 타면 더 이상 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몸피가 작아 어떤 때는 내가 강물에 떠 있는 것조차 아주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강의 하류에 있는 커다란 나룻배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나 자신이지만 그래도 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강가에 사는 갈대와.. 2021. 7. 10.
최유라-저 살림하는 여자예요/우리집 행복 5계명 최유라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 '최유라'라는 여자 '완벽'한 사람은 없고 '흠'없는 사람 없다. 내가 그나마 세상을 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인간이 어떻게 완벽과 흠 없음을 갖출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완벽과 흠이 없는 여자를 만났다. 知? 感? 美? 禮? 藝? 어느 글자에서 그녀의 결함을 찾을 수 있을까. 솔직히 고민 많이 했다. 뭐 이런 여자가 있나, 나이도 어린것이!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여자 (애기를 들어서 알았다) 큰아이가 이불을 차 버리고 자는 것은 아닐까 작은 아이 기저귀가 젖지 않았을까 남편이 출근할 시간인데..., 상당액의 세금을 낼 정도로 바쁘게 일하며 사는 여자가 가사를 돕는 사람도 없이 그 모든 일을 혼자 억척스럽게 해내는 것을 어떻게 생.. 2021. 7. 9.
안재우.안재연-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모든 삶에는 그런 시기가 있다. 안재우. 안재연 / 「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마이클 카미- 모든 삶에는 그런 시기가 있다. 조그만 일 하나에도 진절머리가 나고 이유 없이 화가 나 꿈이고 뭐고 모두 그만두고 싶을 때, 이는 작은 희망을 안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간간히 찾아오는 유혹이다. 아마도 이 시기, 우리는 진심으로 꿈을 버리고 싶은 것이 아니리라. 다만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지는 인생이라는 싸움에서 잠시 지친 것일 뿐. - p202 - -- 끈질김은 성공의 큰 요소이다. 오랫동안 요란하게 문을 두드린다면 결국 누군가를 깨우게 될 것이다. -롱펠로- -- 하버드의 교수들이 내게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일까? 나를 인턴으로 채용하고 싶도록 만들 만한 요소.. 2021. 6. 29.
안재우.안재연-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사랑하는 아들 재우야 안재우. 안재연 / 「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 미국 유학 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첫 해, 자주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앓는 소리를 늘어놓자 하루는 어머니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사랑하는 아들 재우야! 연일 30도를 웃도는 날씨 때문에 모두들 지쳐 있다. 엄마도 요즘 더위를 먹었는지 밖에 나가기가 두렵구나. 거기는 어떠니? 여기 한국이랑 날씨가 거의 비슷하다고 들였는데, 더운 날씨에 공부하랴 훈련받으랴 정말 힘들겠구나 얼음 통을 들고 금세 달려가서 지친 너의 마음과 머리를 식혀 주고 싶어도 우리 사이를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구나. 엄마가 마음으로라도 얼음 덩어리를 한 움큼 너에게 뿌릴게 알았지. 근래에 부쩍 잦아지는 너의 전화에 엄마는 많은 생각을 해. 곁.. 2021. 6. 28.
유안진-종이배/아직은 눈발도 안 보이는 황량한 겨울이다. 유안진 / 「종이배(유안진에세이)」 종이배 종이배가 떠온다 초등학교 적의 내 동요(童謠)가 떠온다 어느 소녀의 눈빛을 싣고 흘러와서 맴돌다가 내 마음도 함께 싣고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가 되어 떠니깐 종이배 동화는 소설이 되고 냇물도 눈물이 되어 출렁이는 바닷가에 내 다시 무엇을 꿈꿀 수 있다고 종이배는 떠와서 맴을 도는가. 아직은 눈발도 안 보이는 황량한 겨울이다. 초록빛이 사라진 거무튀튀한 잿빛 계절에 문득 겨울같이 삭막한 나이를 느껴 본다. 정녕 지금의 나는 눈부신 봄철이 아니고, 칠칠한 여름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을 같은 정취도 없으니, 아무렇게나 꺾어지고 부러지고 버려진 빈 터의 잡초 모양 잿빛 겨울철의 삭막함과 을씨년스러움과 황량함이 오히려 내게 어울리는 듯, 그냥 겨울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2021. 6. 24.
안도현-연어/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안도현 / 「연어」 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해져서 이제는 갖다 버려야 할,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한번 더 가져보고 싶은,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믿는 이에게 바친다. - 작가의 말 - -- 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 "은빛연어야, 네 동무들이 너를 별종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니?" 은빛연어는 별종, 이라는 말의 뜻을 그때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뭇연어들과 자신을 구분 짓는 말이었다. 갑자기 은빛연어는 자신이 먼 바다에 홀로 뚝 떨어져 있는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 오직 혼자밖에 없다는 외로움, 외로움은 두려운 게 아니라 슬픈 것이다 자신의 몸이 온통 은빛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2021. 6. 22.
정호승-모닥불/몽당 빗자루 정호승 / 「모닥불」 작가의 말 칼릴 지브란은 그의 시에서 과일의 씨앗이 햇볕을 쐬려면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어야 하듯이 우리도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을 원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이 동화는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진정한 사랑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 고통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깊게 생각해보고 싶어서 씌어진 동화입니다. 저는 이 동화를 쓰는 동안 모든 진정한 사랑에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사랑은 슬픔을 어머니로 하고 눈물을 아버지로 한다는 것을 사랑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고통 때문이라는 것을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2021. 6. 21.
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장 궁핍했던 시절 엄마의 이야기는 나에게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아카시아꽃도 처음 보는 꽃이려니와 서울 아이들도 자연에서 곧장 먹을 걸 취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꽃을 통해서였다. 잘 먹는 아이는 송이째 들고 포도송이에서 포도를 따 먹듯이 차례차례 맛있게 먹어 들어갔다. 나도 누가 볼세라 몰래 그 꽃을 한 송이 먹어 보았더니 비릿하고 들척지근했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이 났다. 무언가로 입가심을 해야 들뜬 비위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 2021. 6. 19.
김훈-바다의 기별/광야를 달리는 말 김훈 / 「바다의 기별」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맞바람이 치던 야산 언덕이었다. 언 땅이 곡갱이를 튕겨내서, 모닥불을 질러서 땅을 녹이고 파내려갔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육군에서 갓 제대한 무직자였다. 아버지는 오래 병석에 누워 계셨고,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 외출 나와서 가끔씩 아래를 살펴드렸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확실성으로 그 언저리에 와 있었다. 아래를 살필 때, 아버지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너 이러지 말고 나가서 놀아라. 좀 놀다가 부대에 들어가야지" 아버지는 장작처럼 마른 팔다리를 뒤척이면서 말했다. 땅을 파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관이 구덩이 속으로 내려갈 때, 내 어린 여동생들은 따라 들어갈 것처럼 땅바닥을 구르며 울었다. 불에 타는 .. 2021. 5. 30.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여유로운 생활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종기 , 루시드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며칠 전에 석사과정 학생을 한 명 지도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의 어머니가 브라질인이라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안다고 했읍니다. 브라질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을때 선생님 생각이 났읍니다. 사람들은 브라질을 말할 때 예외 없이 제일 먼저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꼽지만, 이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가난하지만 행복의 근원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요. 서머타임 마지막 주를 맞이하는 이번 주부터 이곳은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덕분에 걸리지도 않는 감기까지 걸리고 말았네요. 추석이었는데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건강하시고, 시간 나실 때 편지 주십시요. 윤석 올림 - p37 - 많이 바쁜 윤석 군을 생각하다가 이상한 이야기로 흘려갔네요. 나도 젊을때.. 2021. 5. 20.
세네갈 거부가 호의를 베푼 까닭 ·「 손미나 - 스페인 너는 자유다」   세네갈 거부가 호의를 베푼 까닭우연히 만난 친구들 덕분에 아슬아슬한 고비는 넘겼지만 나의 슬럼프는 계속되었다. 새로 이사를 간 집에서 스페인 할머니,  프랑스인 여대생과 함께 살게 된 나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다. 할머니는 내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요즘 젊은 것들이 세상을 망친다며 프랑코 시대가 좋았다고 틈만 나면 불평을 했다. 그런가 하면 심한 프랑스어 억양이 섞인 스페인어를 구사하던 파리 출신의 여대생은  밤마다 그녀의 연애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의 나는  매일같이 강도가 더해지는 문화적 충격으로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할머니의 잔소리를 견디기도 힘들었고,  프랑스인 여대생 때문에 내 스페인어 발음.. 2021. 5. 10.
유토피아의 땅 - 2018 창작21 가을호 신인상 소설 당선작 · 「창작21 - 2018 창작21 가을호 신인상 소설 당선작 / 오늘의 좋은 소설」 유토피아의 땅 박세환 희망의 기운과 사랑의 기쁨이 가득 찬 꿈의 세계. 그런데 없었고, 없는, 또 어쩌면 없을 곳, 그런 곳을 가리켜 ‘유토피아’라 부른다.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험심이 남다른 사람, 또 지금 현실의 고통 속에서 시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곳을 꿈꿔봤을 것이다. 너무 간절한 나머지 현실 같은 꿈을 꿈속에서 봤을지도 모르겠다. 꿈을 깨고 나선 진한 여운을 느끼면서도 현실과의 간극에 못내 아쉬워했을지도.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다만, 꿈이 실현되기 위해선 그곳을 향한 발걸음을 정진해야 한다. 꿈속에서의 걸음은 그저 꿈에 머물 뿐이다.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 발을 딛기 시작할 때, 비로소 .. 2021. 2. 4.
(사)밀양문인협회-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사)밀양문인협회 - 20. 07. 11」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요즘 ‘소확행’이란 말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린다.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남들에게 드러나는 거창한 행복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나만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열거하자면, 아침에 눈을 떠서 창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맑은 새소리가 마음과 귀를 맑히며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할 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오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오래오래 함께하고픈 마음이 들며 또한 행복해진다. 아침상 차리느라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도, 수저를 놓는 소리도 따뜻하고 소소한 행복의 소리이다. 아직은 가방을 메고 출근할 직장이 있어서, 그리고 직장에서 함께.. 2021. 1. 11.
나의 부족한 언어로 - 박하림 「한국경제 - 2019. 1. 1. 2019 한경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작」 수필 부문 박하림. "3개 국어 쓸 줄 알지만 이방인 신세..나만의 언어로 글 쓰겠다" “너무 개인적인 아픔만 얘기한 것 같아 쓰고 나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른 걸 내볼까도 고민했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도돌이표처럼 이 글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제겐 운명 같은 글이에요.” 2019 한경 신춘문예에서 ‘나의 부족한 언어로’로 수필 부문에 당선된 박하림 씨(30)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0년 멕시코로 이민해 16년 동안 이방인으로 크고 작은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 언어 문제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또 사람들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그를 잡아준 건 글이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언어로 무시당하면서 그 언어가 정말.. 2019. 2. 25.
제4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소설 금상-오동의 꿈(권용주) 「경북일보 - 2017. 11. 22. 」 에어컨 바람 빠질세라 꼭꼭 닫은 출입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다. 퉁퉁한 몸피가 때 이른 더위를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얼라리? 높으신 송주사님이 워쩐 일이여.” “폭폭혀 죽겄다 니미럴.” 호섭이 두툼한 주먹으로 제 가슴을 쳤다. 퇴근길에 한 잔 걸친 얼굴이었다. 그가 내 책상 위로 푸짐한 엉덩이를 삐딱하게 올렸다. 다 나눠주지 못하고 쌓아둔 전시회 팸플릿이 바닥으로 좌르르 떨어졌다. 나는 흐트러진 그것들을 주워 올리며 어색한 웃음으로 호섭의 눈치를 살폈다. 환영촌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한 게 내 탓이라도 되는 양…. 그렇잖아도 나는 간댕간댕한 임시직을 붙잡고 일거리가 바닥날까 애를 태우는 중이었다. 지자체에서 집창촌 철거에 장기간 공을 들여왔고 .. 2017.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