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불교신문 2022 신춘문예 동화 가작 ․ 평론 가작 입상작」
동화 가작
사이타마에서 온 편지
강명화(민재 스님)
2019. 9. 26.
바람은 차가웠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보리의 가슴은 뜨거웠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반반씩, 하지만 가족 모두 가는 여행이라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여행? 여행이라는 표현이 맞나. 보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엄마는 살던 집과 보리가 쓰던 책상과 책, 그리고 냉장고며 텔레비전도 다 중고나라에 팔아버리고 쓸만한 짐 몇 개만 한 달 전, 일본에 배편으로 부쳐버렸다. 그럼 여행이 아니고 살러가는 건데.
“보리, 이제 비행기 이륙하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기도할 준비해야지.”
창밖을 내다보던 보리가 자세를 바로하며 두 손을 모은다. 작년 여섯 살이 되던 해, 엄마는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비행기가 하늘로 큰소리를 내며 올라갈 때 간절히 기도하면 부처님이 들어주신대.
그러니까 무서워서 울지 말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거야, 알겠니.”
하지만 그때는 머리가 핑 돌며 귀가 울리고 온몸이 먼지털개처럼 털털 거려서 정말 무섭고 소름이 끼쳤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어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이제 일곱 살이 되어서는 의젓해져서 간절한 기도도 곧잘 하게 되었다. 엄마는 보리의 귀에 대고 소근거리듯 말했다.
“보리, 아빠 기도도 같이 해줘, 부탁한다.” 아빠는 다니던 직장에서 해외 발령을 받아 일본으로 가는 길이었다.
“알겠어, 엄마!” 보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자 보리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쫓아갔다. 보리, 뛰면 안 돼! 엄마의 다급하고도 나지막한 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러나, 작년에는 엄청 맛있었던 아이스크림이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사이타마로 가는 길이 조용하고 엄마와 아빠는 말이 없다. 보리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왠지 엄마 표정이 슬퍼 보여 입을 꼭 다물었다. 사이타마 집은 한국에서 살던 집보다 좁았으나, 어쨌든 방이 세 개라 아빠 서재방과 보리 방, 그리고 안방까지 나눠 쓸 수 있어 좋았다. 집은 추웠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추워, 덜덜 떨면서 가다 보니 오줌 마려운 걸 참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이를 눈치 챈 엄마가 보리를 불렀다.
“보리, 오줌 참으면 오줌소태 걸려. 아무리 추워도 그렇지 오줌은 참으면 안 돼.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쓴 약도 먹어야 돼.
엄마 역시 중학교 때 학교 화장실이 더러워서 오줌 참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니까.
일주일 동안 학교도 못 갔어.”
결국 엄마는 화장실에 작은 전기난로를 놓아 주었다. 한국 화장실은 따뜻한데 일본은 왜 추운거야... 화장실 갈 때마다 중얼거리며 난로가 있어도 들어가기 전에 켜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보리는 후다닥 들어갔다가 쏜살같이 볼 일만 보고 손도 씻지 않고 나왔다. 하지만, 일본은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았다. 한국은 대형 마트에 가야 있는 뽑기 기계가 여기는 사방에 깔려 있었다. 조그만 슈퍼나 식당에도, 심지어 서점에도 뽑기 기계가 즐비하게 늘려 있었다.
“엄마, 돈, 돈, 돈... !!!”
말없이 백엔짜리 동전 두 개를 주던 엄마가 한 달쯤 지나자 마트 쪽으로 신나게 뛰어가고 있는 보리를 불렀다.
“오늘부터는 뽑기를 일주일에 한 번만 하면 안 될까 ?
엄마가 한 달 살아 보니까 뽑기 값이 너무 많이 나가네.
이백엔이면 방울토마토 열 개 살 수 있어. 돈가스 한 조각이랑.” 보리가 세상 슬픈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 !”
지난 한 달 동안 장난감 뽑는 재미로 살았는데 웬 날벼락인가 싶다. 사실 보리가 한국에 살 때는 저금통에 돈 떨어질 날이 없었다. 특히 외할머니 집에 가면 대답 잘했다고 만원, 심부름 잘 한다고 만원, 노래 잘못 불러도 이쁘다고 만원씩 주셨는데 일본 친할아버지에게 여태 용돈을 받은 적이 없다. 맨날, 스고이! 가와이이! 하면서 백엔도 주지 않으신다. 쳇! 맨날 최고다, 이쁘다, 말로만 하지 말고 용돈을 좀 주라고. 보리는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올 때면 서운한 마음에 저절로 문어입이 되었다. 그런저런 일로 뽑기 취미가 더 생겼는데 엄마가 그만하라니 보리의 눈에 후둑, 눈물이 떨어진다. 일본, 살기 싫어. 보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장을 다 볼 때까지 말이 없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오백엔짜리 동전을 모을 수 있는 책을 사주었다. 오백 엔을 백 개 붙이는 지갑같이 생긴 책이었다.
“보리야, 여기 오백엔 동전을 백 개 모으면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필요한 가방이랑 학용품을 살 수 있어.
일본은 한국하고 달라서 친척들이 네가 필요한 걸 다 사주지 않아.
그러니까 학교 갈 준비도 보리 혼자 다 해야 해.
엄마랑 아빠도 한국에 살 때보다 생활비를 더 많이 아껴 써야 하거든,
지금은 어려서 다 설명 해 줄 수는 없지만 가족은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보리의 차갑던 가슴이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해보자! 동전 모으기.”
2019. 12. 5.
TV에서 코로나가 많이 유행하고 있다고 당분간은 공항 폐쇄로 외국 여행을 금지한다는 방송을 하였다. 표정이 어두워진 엄마 아빠를 보자 보리도 기분이 우울해졌다. 엄마는 인터넷으로 부처님 사진을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서재방에 조그맣게 불단을 마련했다. 목탁 대신 손으로 딱딱 박수를 치면서 ‘천수경’ 과 ‘반야심경’ ‘화엄경 약찬게’를 읽어본다. 불단에는 조그만 꽃병과 밥그릇, 국그릇이 놓여 졌는데 밥그릇에는 밥을 담았지만 국그릇에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부처님 앞에 놓고 절을 하였다.
“보리야, 우리 언제 한국에 돌아갈지 몰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잘 들어!
외할머니가 다니 시던 절에 가 봤지? 거기 부처님께 절 올리고 기도 했잖아.
엄마가 한글 가르쳐준 거 기억나니?
네가 아는 글자만으로도 염불을 할 수 있으니까 우리 같이 열심히 기도 해보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알겠어요, 엄마.”
2020. 3. 9.
엄마와 보리는 모처럼 쉬는 날 마트에 장을 보기로 하였다. 마스크는 점점 구하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외할머니가 보내준 마스크가 있어 지내기는 수월했다. 마트에 도착하자 엄마가 깜짝 놀란다. 매대에 휴지와 손소독제며 필요한 물건들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웅성웅성거리고 보리도 처음 보는 광경에 말을 하지 못했다.
“저... 스미마생.”
나이가 팔십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엄마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마스크 파는 데를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피곤하고 초라한 모습에, 입은 휴지 조각으로 가리고 있었다. 마스크는 구할 수 없다고 엄마가 말하면서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보리에게 묻는다.
“보리야, 마스크 다섯 장 있는데 이거 할아버지 드릴까?”
고개를 가로 저으려다 할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치자 보리는 고개를 숙인다.
엄마가 마스크를 할아버지 손에 쥐어주고 미안해하는 할아버지를 피해 쏜살같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엄마, 우리도 모자라는데 왜 드렸어?”
“그래도 저 할아버지보다는 많이 있잖아, 한국에 있는 외할아버지 생각나서 드렸어.
나이도 많으신데 마스크 구하기도 어려우셨을 거야. 아마 가족이 없나봐.”
집에 돌아온 엄마는 인터넷으로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씨름한 후에야 100장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손소독제도 값이 많이 올랐지만 다섯 병 넉넉하게 사들고 친할아버지와 고모가 살고 있는 도쿄로 갔다. 할아버지 네도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으나 그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리는 불단의 부처님께 계속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부처님 할아버지께 기도하고 노래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본에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할 수 있어 행복한 거야. 돈을 좀 더 모으면 엄마가 염불할 때 치는 손뼉 대신 목탁을 사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보리는 빌고 또 빌었다.
2021. 4. 8.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보리는 한 동네에 사는 언니, 오빠들이랑 줄을 맞추어 가는 게 신기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별로다. 맨 앞에 육학년 오빠가, 맨 뒤에는 오학년 오빠나 언니가 서고 한 줄로 순서대로 가는데 앞사람과 말을 해서도 안 되었다. 또한 부모님들이 학교에 데려다 주거나 차를 타고 와서도 안 되는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엄마는 자기 키의 반을 차지하는 무거운 란도셀을 메고 가는 모습을 쳐다보니 가슴이 찌릿 아파온다. 일학년 표시인 주황색 운동모자를 쓰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딸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부처님, 저 아이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엄마의 주먹 쥔 손이 저절로 모아지며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
집으로 돌아오면 보리는 동네 공원으로 나가 철봉 연습을 한다.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철봉을, 여기 아이들은 너무나 잘한다. 사이타마는 키즈카페도 놀이시설도 별로 없어 동네 공원에 나와 줄넘기나 철봉, 정글짐을 타고 논다.
보리는 ‘한국에서 온 못난이’ 소리를 듣지 않으려 동영상으로 손유희나 일본어 공부를 하고 철봉을 해질 때까지 손이 까지도록 돌고 또 돌며 연습을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빠가 실내 철봉대를 사오셨다. 방안 가득 이불을 펴놓고 보리는 잠자기 전까지 철봉에 매달렸다.
엄마는 방과 후 수업료가 생각보다 비싸 두 시 간정도 혼자 집에 있게 하였다. 대신 햄스터 ‘찰 떡’을 키우게 하고 30분 정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보리는 혼자서 현관문을 열 때면 옆에 누가 없나 사방을 돌아본 후 문을 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지만 열쇠를 돌려 재빨리 열고 불단으로 가서 절을 한다. 부처님 할아버지, 잘 다녀왔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도 올 때까지 지켜주세요. 보리는 절을 할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뭉클뭉클 뭔지 모를 간절함이 솟아오른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누가 볼까 눈물을 훔치며 엄마가 프린트해준 천수경과 반야심경, 화엄경 약찬게를 편다. 보리는 그중에서도 화엄경 약찬게가 제일 어렵지만 왠지 슬픈 노래 같으면서 다 읽고 나면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에 제일 좋아한다.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 약찬게’ 이것은 4․3조의 노래 가락과 비슷하다. 학교생활은 지낼 만 하였으나 히카리라는 뚱뚱한 여자애가 가끔씩 보리를 괴롭혔다. 히카리는 너무 바로 앞자리에 앉아 툭하면 뒤돌아보면서 ‘야, 너 뭐해’ 하고 깜짝 놀라게 했다. 보리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히카리는 더욱 더 ‘야, 야!’ 하고 놀래켰다. 속상해할까봐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케이트보드를 가지고 노는 히카리를 만났다.
“야, 보리. 너 이거 탈 줄 아냐?” “그래.”
“엇쭈, 진짜 ? 그럼 여기서 타 봐.”
히카리는 약간 경사진 곳에다 스케이트보드를 놓아 주었다. 보리는 비탈길이라 불안했으나 친구들이 보고 있어 거절을 못하고 마음속으로 ‘부처님 도와주세요.’를 계속 외치며 타고 내려갔지만 콰당! 넘어지면서 얼굴과 팔을 다쳤다. 엉엉 울고 가는 보리를 보고 히카리는 바보라고 놀려대며 웃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얼굴에 약을 발라 주면서 내일 선생님과 면담을 해보겠다고 하였다. 보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엄마.
내가 못하겠다고 거절했어야 했는데 잘못했어. 이제 히카리와 친구 안하면 돼.
그거보다도 엄마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근데, 나 지금 불단에 가서 노래하고 싶어.”
보리는 엄마와 함께 틀리지 않으려고 손으로 꼭꼭 짚어가며 ‘화엄경 약찬게’를 읽었다. 엄마는 딸의 슬픈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을 참으며 읽느라 천천히 읽고, 보리는 틀리지 않는 데만 집중해서 엄마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2021. 5. 23.
코로나가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아빠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보리는 개어 놓은 이불을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코로나 ! 내가 정말 죽여버릴 거야. 내가 꼭 복수할 거야. 한국도 못 가고. 외할머니 보고 싶어. 엉엉엉.”
엄마는 보리를 달래지 않고 이불을 계속 걷어차고 있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며칠 후, 도쿄에 살고 있는 애리 고모가 놀러왔다. 마스크를 선물한 댓가로 보리에게 자전거를 사주러 왔는데 아기 ‘치이로’를 데리고 왔다. 세 살인 ‘치이로’는 개구쟁이였지만 보리는 조그만 손과 발이 귀여워 계속 조물락거리고 있었다.
고모가 간 뒤 보리는 엄마에게 부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귓속말을 들은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어보았다.
“뭐? 동생을 낳아 달라고? 아기랑 너랑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그 말에 아빠도 거실로 달려 나왔다.
“보리, 정말이야?”
“응, 엄마가 힘들면 내가 도와주고 동생도 내가 키울게.”
보리의 말에 모처럼 세 가족이 거실에서 웃음꽃을 피운다.
2021. 11. 24.
아빠 회사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자 보리네 가족은 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아빠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매일 지하철을 타고 도쿄로 나가고, 엄마는 몸이 계속 안 좋아져 케이크 가게를 그만 두었다. 그런데 엄마가 물만 먹어도 토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열 번 이상 토하고 자꾸 잠만 자는 엄마를 보면서 보리는 겁이 덜컥 났다. 엄마가 토할 때면 미지근한 물을 들고 화장실 앞에 서 있는다. 등을 두드려 주고 싶지만 엄마는 토하는 모습을 못 보게 했다. 우우우웩! 하고 토하는 소리는 보리의 가슴을 찌르는 듯이 아프게 했다.
처음에는 그냥 듣고만 있다가 점점 보리가 울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가 대신 토해주고 싶어. 같이 울고 토하고 나면, 엄마를 눕게 하는 것만이 보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 손에 는 물 컵을, 한 손에는 베개를 들고 서있는 딸의 모습에 엄마는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토하면서 나온 눈물이라고 보리에게 말했다.
한 달 이상을 참다못한 엄마는 한국에 편지를 썼다. 잘 있으니까 늘 걱정 말라고 하던 엄마가 외할머니께 사실 그대로 말했다. 생활이 어려워진 보리 아빠와 보리 동생에 대해서 기도해 달라고.
2022, 4. 23.
보리와 엄마는 하네다 공항에 왔다. 외할머니께서 일본에 오시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간 아빠는 일본에 있는 스위스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엄마의 배는 남산만해졌다. 보리는 외할머니와 약속한대로 엄마를 딸처럼 보살폈다. 외할머니가 ‘사이타마에서 온 편지’를 읽고 보리에게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보리야, 엄마가 아프다며?
근데 그게 보리 때문에 아프다는데, 보리가 동생 낳아 달라고 했어?
할머니가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없으니까 할머니 대신 엄마 좀 보살펴.
할머니 대신이니까 보리가 엄마가 되는 거야. 가끔씩은 딸이 되도 되고.”
보리는 엄마의 배가 부풀어 오를 때마다 자신이 자랑스러워졌다. 딸 노릇도 좋지만 엄마의 엄마가 되어 동생이 들어있는 배를 만져 보는 것도 좋고, 엄마의 심부름도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이제는 아침 일찍 눈을 뜨면 국그릇에 찰랑찰랑 물을 담아 불단에 올리고, 학교 갔다와서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거나 빨래를 개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삼 년 전에 먹어본 녹차 아이스크림 맛이 궁금하지만 외할머니랑 함께 먹기로 하고 보리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붙잡는다. 저만치서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엄마가 배를 만지며 ‘붙뜰아, 외할머니야 인사해. 저기 오시네’ 하며 숨 죽여 흐느끼고 보리가 뛰어간다.
“할머니이!!!”
“아이고! 내 딸이랑 손주, 살아 생전에 못 보는 줄 알았네.”
“엄마, 엄마!!!”
“우리 붙뜰이, 엄마 잘 붙잡고 있었구나, 아이고 기특해라.
그런데 제일 기특하고 장한 거는 우리 보리다 아이가. 보리야. 니가 느그 엄마 살렸데이.
인자 죽어도 여한이 없네. 아이고 장하다, 내 새끼들.”
크고 넓은 하네다 공항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나비처럼 살랑살랑거린다.
동화 가작 입상소감
“문학 꿈 키워준 부처님께 감사”
마흔 아홉이 되던 해, 머리를 밀었다. 그때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고 ‘이런 엄마 만난 것도 네 운명이야!’ 하며 잘 만나주지도 않았다.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왜 스님이 되었냐고. 딴 사람은 빌어주면서 나는 왜 안 빌어주느냐고. 내가 말했다. 너는 부처님 자손이니까 네가 빌어. 그 후 아이는 시험 때면 절을 찾아와 백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부처님 계신 상단에 쪽지와 함께 포개놓고 절을 했다.
“부처님 할아버지, 저 중간고사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그 아이가 서른네 살이 되어 일본에 있다. 아이는 자라도록 영어 과외나 학습지 한 번 안 시켜주었다. 엄마가 산에 들어가서 안 나올까봐 죽도록 공부했다는 딸, 이화여대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스님 공부’ 때문에 돌보지 못했고, 이제 칠십이 눈앞이라 애들 좀 챙겨 보려니까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몇 년 동안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했다. 그 막연함을 글로 써 보고자 삭발 염의 후 접었던 문학의 꿈을 조심스레 꺼내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부처님의 가피와 계산법이 얼마나 정확하신지. 울컥 눈물이 솟는다. 또한 할머니 대신 엄마를 돌본 손녀 소윤이의 소망을 글로 남길 수 있음을 한국불교신문에 감사드린다.
부처님께 한없이 고마운 마음을 법신진언으로 전하며.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
-1954년 고양 출생
-원광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졸업(철학박사)
-현재 보현정사 주지
출처 - 한국불교신문 2022 신춘문예 동화 가작 ․ 평론 가작 입상작
[t-22.02.~~ 20220223-17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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