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유리 나기빈 -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
마르세이유행 기차가 방금 제노아를 출발했다.
기차는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라가기도 하고,
바다와 산 사이에 뚫린 길을 마치 쇠로 만들어진 뱀처럼 스르르 미끄러져 가기도 하고,
가장자리를 은색 실 같은 잔물결로 두른 누런 모래사장 위를 기어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치 동물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갑자기 시커면 터널로 빨려들어갔다.
그 기차 맨 뒤칸에 한 뚱뚱한 여자와 젊은 남자가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이따금 서로 바라보곤 했다.
스물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는 출입문 곁에 앉아 바깥 경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피에몽테 지방 출신의 농민으로, 건장한 체격에 두 눈은 검고, 젖가슴은 풍만하고 양볼에는 살이 많았다.
꾸러미 몇 개는 나무 걸상 밑에 밀어놓고 바구니 한 개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마주 앉은 젊은 남자는 스무 살쯤 되어 보였다.
깡마른 몸 집에 얼굴은 볕에 그을러 있었다.
뙤약별 아래서 밭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그 까맣게 탄 얼굴이었다.
옆에 있는 보따리 속에 그의 전재산이 들어 있었다.
즉, 양말 한 컬레, 서츠 한 벌, 짧은 바지 한 벌, 그리고 웃 저고리 한 벌이 그것이었다.
걸상 밑에도 뭔가 있었다.
끈으로 한데 묶인 삽과 곡갱이였다.
그 남자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는 길이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해가 해안에 불볕을 비처럼 퍼붓고 있었다.
때는 오월말이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사방에 떠돌고, 유리창이 내려진 기차 안에까지 스며들었다.
꽃이 핀 오랜지나무와 레몬나무는 그렇게 향긋하고, 그렇게 강렬하고,
그렇게 유혹적인 달콤한 향기를 조용한 하늘에 퍼뜨리면서 장미꽃의 향기와 뒤섞이고 있었다.
길가, 아름다운 정원, 오두막 문 앞, 그리고 들판에까지 마치 잡초처럼 장미가 자라고 있었다,
이 해안이 장미들에게는 마치 자기 집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은 강하되 독하지 않는 향기로 이 지방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공기가 맛있는 것이 되고, 포도주보다 더 풍미롭고, 또 포도주처럼 취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이 꽃밭 속을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기차는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기차는 언제나 작은 역의 몇 채 안 되는 하얀 집들 앞에서 멈춰다가 긴 기적을 울리며 다시 조용히 떠나곤 했다.
그러나 기차를 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온 세상 사람들이 졸고 있는 듯 했고, 이 뜨거운 봄날 아침에 거처를 옮길 결심을 못 하고 있는 듯 했다.
뚱뚱한 여자는 이따금 눈을 감고 졸다가도
무릎 위의 바구니가 미끄러져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퍼뜩 다시 눈을 뜨곤 했다.
잽싸게 바구니를 붙잡은 다음, 그녀는 잠시 창 밖을 내다보다가 어느새 또 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방울방울 땀이 내뱄다.
어떤 견딜 수 없는 일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몹시 괴롭게 호홉을 하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촌사람답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떤 작은 역을 떠날 무렵, 문득 뚱뚱한 여자가 눈을 떴다.
그녀는 바구니를 열더니 빵 한 조각, 삶은 달걀 몇 개, 그리고 작은 포도주병과 빨갛고 예쁜 자두 몇 알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젊은 남자가 갑자기 잠을 깼다.
그는 여자 쪽을 건너다보았다.
그녀가 먹을 것을 무릎 위에서부터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시선을 고정시키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뚱뚱한 여자는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연달아 포도주를 한 모금씩 마시며 달걀을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이따금 동작을 멈추고 숨을 돌리곤 했다.
이윽고 그녀는 빵, 달걀, 자두, 포도주를 다 먹어치웠다.
그녀가 식사를 끝내자, 젊은 남자는 두 눈을 감았다.
먹은 음식 때문에 속이 거북했는지 여자는 옷을 약간 늦추었다.
그러자 젊은 남자는 문득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추를 몇 개를 더 끌렀다.
젖가슴을 꽉 죄었던 옷이 벌어지면서 두 유방 사이의 틈이 차츰 커져 흰 속옷과 살결이 조금 보였다.
다소 편안해지자 그 시골 여자가 이탈리아 어로 말했다.
"너무 더워서 숨쉬기가 힘들어요." 그러자 젊은 남자도 같은 이탈리아 어로, 그리고 같은 어조로 대꾸했다.
"여행하기엔 괜찮은 때죠." 그 여자가 물었다.
"피에몽테 태생이신가요?"
"아니, 난 아스티 사람이요."
"난 카잘레인데." 알고 보니 이웃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직했다.
그들은 그런 류의 사람들이 즐겨 되풀이하는 시시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우둔하고 특별한 의견이 없는 그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그들은 고향 이야기를 헸다.
둘 다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들먹거리고,
두 사람이 모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을 찾아낼 때마다 더욱 친밀해지는 것을 느꼈다.
많은 말들이 다투듯 두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마치 이탈리아의 노래처럼 잘 울려퍼졌다.
이윽고 그들은 자신들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 뚱뚱한 여자는 결혼한 몸으로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런데 마르세이유에 있는 프랑스 여자 집에 좋은 유모 자리를 구했기 때문에
동생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났던 것이다.
그 젊은 남자, 그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요즘 마르세이유에서 한참 집을 짓고 있으니까
거기 가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던것이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다시 입을 다물고 잠자코 있었다.
뜨거운 햇볕이 기차의 지붕에 내리쬐고 있었다.
열차 뒤쪽에서 부연 먼지가 일어나더니 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또한 오랜지와 장미꽃 향기는 더욱 강렬하게 짙어지고 무거워지는 듯했다.
두 사람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들이 눈을 뜬 것은 거의 동시였다.
태양은 빛의 화살을 푸른 수면에 퍼부으면서 바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공기가 상쾌하고 가벼워진 것 같았다.
유모가 되기 위해 가는 여자는 앞가슴을 벌려놓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양볼은 축 처지고, 두 눈은 흐릿했다.
그녀는 맥없이 말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머리가 어찔어찔해요.
어제부터 젖을 주지 않았거든요."
그 젊은 남자는 잠자코 있었다.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렇게 젖이 나올 때는 하루에 세 차례는 젖을 빨려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가슴이 몹시 답답해서 무거운 것에 짓눌리는 것만 같아요.
그 무게 때문에 제대로 숨도 쉴 수 없고 또 손발이 부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그러니까 젖이 많이 나오는 것도 불행이에요."
"그 정도면 불행이지요.
부인은 그래서 그렇게 괴로워하고 계시군요."
그 남자가 말했다.
그녀는 사실 중환자같이 보였다.
억눌리고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가슴을 꽉 누르면 마치 분수처럼 젖이 솟구치는 거예요.
정말 볼만한 광경이랍니다.
안 믿어지시죠? 하지만 카잘레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러 오곤 했죠."
"그게 정말인가요?" 그 남자가 감탄한 듯 말했다.
"정말이고말고요.
지금 보여드릴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는 내게 별로 도움이 안 돼요.
그런 식으로는 젖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기차가 한 정거장에 섰다.
울타리 옆에 웬 여자가 우는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몹시 여윈 그녀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뚱뚱한 여자는 그 어린애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동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여자가 있고, 또 저 어린애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데....,
물론 나는 부자가 아니에요.
집과 남편과 갓난아이까지 버려두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니 말이에요.
하지만 10분만 저 아이를 안고 내 젖을 빨아먹일 수 있다면 5프랑을 내겠어요.
그 일로 아이도 울음을 그치고 나 또한 펀해질 테니까요.
아, 난 다시 살아난 기분일 거예요."
그 여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몇 번이나 뜨거운 손으로 닦았다.
이윽고 그녀가 신음하듯 말했다.
"더는 못 참겠어요. 죽을 것만 같아요."
그리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옷을 훌렁 벗었다.
오른쪽 가슴이 드러났다.
앞으로 내민 풍만한 유방에는 딸기 비슷한 갈색 반점이 있었다.
그 가엾은 여자가 정신 나간 듯 중얼거렸다.
"아 ! 죽을 것 같아. 괴로워 ! 어쩌면 좋아 ?"
열차가 다시 움직였다.
흔히 따뜻한 날 저녁에 있는 일이지만, 열차는 몸으로 스며드는 듯한 숨결을 토하고 있는 만발한 꽂밭 속을 달렸다.
이따금 푸른 바다 위에 보이는 고깃배가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또한 흰 돛이 움직이지도 않고 물 위에 비치는 것이 마치 다른 배를 거꾸로 놓은 것같이 보였다.
젊은 남자가 당황하여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부인... 나라도 괜찮다면....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은데요....," 기진맥진한 여자가 말했다.
"네, 제발 좀 도와주세요.
더는 못 견디겠어요. 어서요."
그래서 젊은 남자는 그 여자 앞에 무릎을 끓었다.
그녀는 몸을 기울이고 유모처럼 남자의 입 쪽으로 검은 젖꼭지를 가져갔다.
그 순간 젖꼭지에서 젖방울이 스며나왔다.
그 젊은 남자는 그 묵직한 유방을 마치 과일처럼 입에 물고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는 여자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갓난아이처럼 목을 움직이면서 꿀꺽꿀꺽 젖을 들이켰다.
갑자기 여자가 말했다.
"이쪽은 그만 됐어요. 자, 이번엔 이쪽을 좀....,"
남자는 얼른 다른쪽 유방을 손에 잡았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두 손을 젊은 남자의 등에 얹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행복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며 꽃의 향기를 맡았다.
기차가 움직임에 따라서 미풍에 섞어 향기가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녀가 말했다.
"향기가 정말 좋군요."
남자는 두 눈을 감은 채 잠자코 그 육체의 샘물을 계속 마시고 있었다.
이윽고 여자가 남자를 가만히 떼어놓았다.
"이제 됐어요.
기분이 아주 좋아졌어요.
가까스로 다시 살아난것 같아요."
남자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일어났다.
두 개의 살아 있는 물통을 옷 속으로 도로 집어넣은 다음, 여자는 다시 가슴을 부플게 하면서 말했다.
"덕분에 고통이 사라졌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도리어 내가 부인에게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거든요 !" (p48)
※ 이 글은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유리 나기빈 -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짧고 쉽게 읽히는 세계 명단편 콩트 모음)
역자 - 이인환
성심도서 - 1991. 11. 01.
'내가만난글 > 단편글(수필.단편.공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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