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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

최유라-저 살림하는 여자예요/우리집 행복 5계명

by 탄천사랑 2021. 7. 9.

최유라  -「 살림하는 여자예요

 

 

'최유라'라는 여자

'완벽'한 사람은 없고 '흠'없는 사람 없다.
내가 그나마 세상을 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인간이 어떻게 완벽과 흠 없음을 갖출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완벽과 흠이 없는 여자를 만났다.
知? 感? 美? 禮? 藝?
어느 글자에서 그녀의 결함을 찾을 수 있을까.
솔직히 고민 많이 했다.
뭐 이런 여자가 있나,  나이도 어린것이!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여자 (애기를 들어서 알았다)
큰아이가 이불을 차 버리고 자는 것은 아닐까
작은 아이 기저귀가 젖지 않았을까
남편이 출근할 시간인데...,

상당액의 세금을 낼 정도로 바쁘게 일하며 사는 여자가 가사를 돕는 사람도 없이

그 모든 일을 혼자 억척스럽게 해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맞아! 부모님이 함경도라고 했지, 아마.....,
어쩔 수 없군.
그래도 여자는 적당히 '틈'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여자는 도무지 '틈'이 없다.

여자라면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는 듯해야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도무지 지남편,  지새 끼 밖에 모르는 여자,
난 이렇게 야물딱진 여자 '애'는 처음 본다.

'맹 씨'가 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만하다.

                                                             MBC(지금은 라디오 시대)
                                                                                  이종환

--
우리집 행복 5 계명

꼬박꼬박 주말마다 성당엘 가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은 하느님을 믿으며 살고 있는 가톨릭 집안이다.
원래 우리 엄마의 고향이 함경남도 덕원(德源)인데 외가댁은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믿음이 강한 집안이라고 한다.
...
아빠의 집안 또한 강원도에서 일찍부터 천주교를 믿었던 집안으로
외삼촌 중에는 수사가 되신 분들도 있다.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켰고,
그 시절 나와 정임이의 꿈은 당연히 수녀가 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할 때도 가톨릭이 아니면 안 된다는 우리 집안의 원칙에 따라
내 남편 맹 씨는 나와 교재를 시작하면서부터 교리 공부를 시작,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혼배성사를 하고 나서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우리 집은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섬기는 집안이다.

그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종교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기도 했거니와
성서에 나와 있는 십계명은 거의 지켜나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엘 잘 나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 대신 우리는 성서가 아닌 우리 집안만의 5 계명을 만들어 놓고 
현실 속에서나마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하루빨리 성당에 나가 신앙생활에 충실하려고 애쓰고 있다.

성서에 부부간의 사랑이나 자기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사랑하면서 살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좀더 세부적인 계율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결혼을 하면서 만든 우리만의 5 계명이다.

그 5계명 중 첫 번째가 
아이만큼은 남편과 내 손으로 기르자는 것이다.
요즘은 방송국에 나가는 시간에는 내 동생 정임이에게 아이를 맡기지만 
준영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사람을 두지 않는 걸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럴 정도로 우리는 준영이를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
아니 맡기기 싫었다는 게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우선 남편과 내 손으로 
아이를 기르자는 첫 번째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과 둘이서 준영이를 키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드라마 촬영을 하는데 

온 식구가 같이 출동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남의 손에 우리 아이를 맡기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면에선 남편의 도움이 무엇보다도 가장 켰다.

...
두번째,
우리 집 행복 5 계명은 언제 어떤 일이고 우리 가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번째 계명은 일도 중요하지만 일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을 주고받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만들자는 애기이다.

남편도 일이 끝나면 되도록이면 일찍 집으로 들어와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고 있고,  저녁마다 아이들 목욕만큼은 꼭 자기가 시키는 등
항상 가족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나도 일을 하는 데 있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식사를 챙겨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바쁘게는 일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래서 각종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와도 가족들에게 지장을 주는 일이
발생한다면 고사하는 편이다.

...
세 번째,
우리 집 행복 5 계명은 여행을 자주 다니자이다.
물론 가족끼리 말이다.
결혼 초기에 적어도 일 년에 해외여행은 두 번,  

국내는 시간 나는 대로 자주 다니자고 약속을 했었다.
해외여행은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잘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국내 여행만큼은 아무 때나 보따리 싸들고 자주 떠나는 편이다.

올 초만 해도 속초로 느닷없이 떠났다가 

그만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미시령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서 할 수 없이 

생방송을 펑크내고 차 안에서 방송을 듣는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절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훌쩍 짐을 챙겨서 자주 조선 팔도로 떠나곤 한다.

...
우리 집 행복 5 계명 중 네 번째는 상대방에 대해 최선을 다하자이다.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항상 나보다는 남편을,  

남편은 자신보다는 나를 먼저 배려해 주는 

그런 예의를 갖추자는 뜻에서 비롯된 계명이다.

우리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누구보다도 먼저 서로에게 의논을 한다.
어떤 때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통화를 한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웬만해서는 곡해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 열두 번도 넘는 통화 속에 문제가 있으면 풀고 또 충분히 상의하기 때문이다.
혹 혼자 결정한 일이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지 물어보고
지장이 없는 범위,  또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부부 사이에 하루
열두 번이 아니라 스무 번이라도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해도 괜찮을 듯싶다

마지막 5 계명 중 다섯 번째는 아직까지는 지켜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영원히 사랑하는 마음을 변치 말자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 약속대로 우리는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생일 때 남편으로부터 너무나 큰 꽃다발과 사랑의 카드를 선물로 받았다.
진주 목걸이까지 덤으로 받았으니 나로서는 최상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날 나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고 

선물로 받은 진주 목걸이를 서슴없이 목에 턱 걸치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방송국에 가려고 이미 입은 옷과 진주 목걸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는데도 
방송 도중 나는 내내 행복한 웃음을 실실 흘렸을 정도였다.

나도 아직까지는 연애할 때처럼 그런 마음이고 남편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 안 들어가 봤으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난 지금 행복하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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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로 풉시다. 

'수다로 풉시다'가 진행되는 매주 토요일에는 

방송 시작 전에 그날의 수다 떨 주제를 우리들이 정한다.


"자, 오늘은 토요일! 혼기를 앞둔 처녀 총각들 중에 맞선 본분들 많으시죠.
 오늘이 나는 맞선 100번째다. 또는 선을 통해 결혼에 골인하신 성공담도 좋구요.
 실패담도 물론 환영합니다.

 아무튼 맞선에 얽힌 애기를 갖고 계신 분들은 저희에게 전화 주십시오."

그날그날 주제를 정해 놓고 전화 사연을 받는데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면서 전화를 하지만,
우리 DJ의 농간이라고나 할까,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가슴속에 묻어뒀던 

깊은 얘기까지 꺼내서 오히려 우리가 당황하는 해프닝이 벌어질 때가 있다.

한 번은 '첫 키스'에 대한 사연으로 수다를 풀 때였다.
지방에 사는 한 주부가 남편과 첫 키스를 하던 젊은 날의 추억을 얘기하다가 

그만 우리 농간에 걸리고 말았다.

이종환 선생님 특유의 짓궂은 농담과 유도 질문에 

그 아줌마는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그 이하고 같이 저수지가 있는 방죽 위로 갔는데요."
"그래서,  아니 방죽에서 어떻게 뭐요?"
"저 그게,  그러니까 거기서 히힛."
"그러니까 거기서 키스를 했다 이거죠?  솔직히 말해 봐요.  딴 일도 있었죠?"
"아니,  키스만 했어요."
"그럼, 그때 느낌이 어땠습니까?"
"느낌이고 뭐고 하도 정신이 없어서,  너무 세게 빠는 바람에 그만 멍이 들었어요."
"아니 멍이 들다니,  어디 가요?"
"저, 거기가."
"아니 거기라니?  거기가 어딥니까?"
"저......, "

말하는 기세로 보아 뭐든지 실토하고 말 것 같은 상황이다.
이쯤 되면 이번에는 우리가 방송윤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을까 봐 

거꾸로 아줌마 입을 막아야 할 차례가 된다.

'수다로 풉시다'는 정말 재미있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기분으로 

청취자들과 수다를 떠는 날이다. - p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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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편지

누구나 연애 시절에는 시인이 된다.
누구의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는 이 세상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누구나 시인이 되는 것 같다.

아마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편지를 써본 기억 중 

젊은 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할 때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수줍어서 말로는 고백할 수 없어 밤새도록 붓방아를 찧던 

기억을 웬만한 분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빛바랜 편지'는 바로 지난날 누구나 시인이었던 바로 그 시절에 썼던,
지금은 어느 책갈피 속에 또는 앨범 속에 고이 들어 있는 편지를 

다시 한번 읽으면서 사랑했던 시절을 반추해보는 그런 시간이다.

대게는 현재의 남편이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주고받았던 내용들을 공개하는 편지가 많은데,
어느 날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그 편지를 보낸 여자분과 통화를 하는데 이상하게 대답이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편지 잘 들으셨죠?
 그때 남편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런 편지를 다 쓰썼어요?" 
".....,"
"왜요?  추억에 잠겨서 말도 안 나오시나 보죠?"
"....,"
"아니, 그런데 이 전화 연결되고 있는 거 맞습니까?"
"..... 네에."
"그런데 왜 아무 말씀이 없으세요.  편지 보내신 것 맞아요?"
"사실은,  저.....,  어제 부부 싸움을 했거든요."

푸하하하, 

편지를 보낼 때까지만 해도 그런 애틋했던 옛날을 떠올려보려고 

남편에게 다시 한번 그 사연을 들려주기 위해서 과거의 편지를 보냈는데 

각본에도 없는 부부 싸움을 했고,  부부 싸움을 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분명 남편을 사랑이 아닌 원수로 생각하며 칼을 갈고 있을 그 시간에 

사랑 어쩌구 하는 편지가 들려오니 

아무리 우리가 질문을 해도 아무 말 못 하고 가만있을 수밖에.

"아유, 그런 줄도 모르고,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싸움이 되겠어요?"
"....,"
"옛날에 남편을 이렇게 사랑했던 그런 시절을 떠올리면서 

 앞으론 절대 싸우지 마세요."
".....,"
"어때요, 이제 화 풀리셨죠.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요?"
'네."

비록 대답하는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 그날 저녁 그 부부는 화해하고 

더욱더 사랑하며 살자는 다짐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빛바랜 편지'는 

바로 청취자들에게 사랑을 다시 일깨워주고 

부부가 화합하게 만드는 감초 역활까지도 하는 

빛바렌 편지가 아니라 빛나는 편지 시간이다.  -p148-  


※ 이 글은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중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최유라 /  살림하는 여자예요
제삼기획 / 1997.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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