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부부로 산다는 것

3 - 024. 상대방의 변한 모습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

by 탄천사랑 2007. 9. 21.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끊임없이 서로를 재발견하는 열정

3 - 024. 상대방의 변한 모습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
episode 1
상대방의 변한 모습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
그와 아내는 영화와 음악 마니아였다.
한참 사귈 때는 거의 매일 만나 영화를 보고, 음반 매장을 찾아 CD를 서로에게 선물해 주기도 했다.
특히 그녀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차 안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틀어주면 
살포시 눈을 감고 음미하는 그녀의 옆모습이 그토록 고상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커리어 우먼 풍의 치마 정장을 즐겨 입었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했고, 밤마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결혼을 서둘렀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상냥 그 자체였다. 
새벽에 퇴근을 하면, 그녀가 꿀물을 타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돈보다 우선 자기 몸부터 챙겨. 돈보다 건강이 우선이잖아.” 

그는 빙그레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 역시 결혼하길 잘했어.’

그러나 그녀가 변한 것은 첫 아이를 낳은 이후였다.
사귈 때는 밤새도록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여보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끊어 버린다.
"자기야, 집에 올 때 우유랑 주스 좀 사 와요."
"그래" 하는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끊어버리는 게 요즘의 그녀다.

차를 같이 타고 가면서 그가 음악을 틀면,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을 듣기는 커녕 그를 째려보면서 소리를 지른다. 
“시끄러워서 아기 깨겠어. 소릴 낮추든가 좀 꺼!”

그는 경악한다. 이럴 수가. 
지금의 그녀는, 그토록 로맨틱했던 그녀가 아니란 말인가?
결혼 전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화장기 없는 부스스한 머리로 퇴근한 그를 맞아주는 아내. 
하루 종일 아기랑 씨름을 하다 보면 거울 한 번 볼 시간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무릎 튀어나온 운동복을 입으면 편하겠지만,
가끔씩 왕년의 스커트를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큰일이라도 난단 말인가.

그는 '내 아내도 아줌마의 대열에 합류하는구나' 싶어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돈이 인생의 전부다'라며 '돈이나 벌어와'라고 할 것 같아 두려워졌다.


episode 2
그 남자가 그랬다.
결혼 후 용돈은 하루에 2.000원이면 족하다고.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줬다.

결혼 후 첫 생일 날.
그녀는 운동화를 선물 받았다.
2.000원씩 모아서 샀다고 했다. 그녀는 감동 먹었다.

결혼 2주년. 그에게서 60만 원을 받았다.
그것도 2.000원씩 모은 것이라고 했다.
약간 좀스럽게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다시 감동 먹었다.
어느 날 그 남자가 말했다.
매년 연말까지 100만 원씩 모을 거라고.
그녀가 물었다.
"왜? 겨울에 스키장 가고 싶어?" 그가 대답했다.
"아니, 당신의 장인 장모님 해외여행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잖아"

그녀는 눈물을 훔쳤다.
그랬던 그가 변했다.
그녀에게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라고 했다.
싸움의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평소 늦게 잠자는 그녀의 습관을 못마땅해 하던 그 남자.
그녀가 막 돌이 지난 아이만 좋아한다고 투덜대던 그 남자, 그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그날 밤 그가 물었다.
"나 어디서 자?"

그녀는 안방에 아들을 재워놓고 작은방에서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컴퓨터에 빠져 있다가 무심코 대답했다.
"아무 데나 누우면 자더니 오늘따라 난리야. 그냥 거실에서 자."

그가 성질이 난 모양이었다.
"너, 그렇게 잠 안 자고 컴퓨터 하다가, 내일 출근해서 피곤하다고 나한테 투덜거릴 거지?
 앞으로는 나한테 피곤하다는 말 꺼내지도 마!"

그녀가 컴퓨터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쏘아붙였다.
"사람이 잠만 자고 살아? 알았어. 피곤하다고 말 안 해!"

다음 날,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되어도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녀는 컴퓨터를 보면서 생각했다.
"뭐 반항하는 거겠지"

새벽 3시가 되어가자 그녀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민식이네 집"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그럼 믿지 마라"

딸칵.
그녀는 약이 올라 전화를 다시 걸었지만, 그는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놓았다.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외박!!!!! 전화 거부!!!! 들어오지 마라!!!!!!'

4시쯤 되어 걸려온 전화.
그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갈 생각도 없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우린 너무 안 맞아"
"그래서 어쩔 건데?"

그가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이혼해야지. 더는 같이 못 살겠다"
"응! 그래! 이혼해. 근데 나 지금 자야 하니까 전화하지 마. 들어오지도 말고. 알겠지?"

다음 날 그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그가 쓰러져 자고 있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출근도 못한 것 같았다.
'밥은 챙겨 먹었을까' 측은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간도 크지, 이혼! 감히 그 따위 단어로 날 협박하다니'
그녀는 초췌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난 지금의 이런 우리가 좋은데 이 남자는 아닌가?
 사과 한 마디면 될 것 같은데, 그걸 죽어도 하기 싫으니 이걸 어째, 에잇!
 그냥 하자는 대로 해버릴까?
 이혼! 감히 외박까지 한 주제에 어디서 감히......'

그녀는 진짜로 이혼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못 견뎌 하는 여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괴로웠다.
그녀는 망연자실 생각에 빠졌다.
'사랑은 변한다는데, 사람도 변하고....., 
 사랑의 속도가 빠를까, 아니면 사람의 변화 속도가 빠를까'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9.21.  20210903-171248-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