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끊임없이 서로를 재발견하는 열정
022
다름에 적응하는 것
episode 1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는 들뜬 마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섰다.
내일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은 토요일. 모처럼 맞이하는 연휴의 시작이었다.
"아빠! 엄마 들어오면 혼 좀 내주세요."
아들이 토라진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왜 무슨 일 있니?"
"2시에 목욕한다며 나갔는데 지금까지 안 오잖아요! 배고파 죽겠는데"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너무 심했다.
여자들이 목욕탕에 가면 본전을 빼고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친 것이었다.
신혼시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같이 목욕하러 갔었는데, 먼저 나온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서 외식을 하기로 했었다.
그는 아내가 먼저 나오면 오래 기다릴까 봐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 시간을 기다려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네.
무슨 일이 있나? 혹시 깜빡하고 먼저 집에 간 것이 아닐까?"
집에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혹시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라도 한 것 아닐까?"
슬슬 걱정이 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탕에 들어가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목욕 후의 상쾌했던 기분이 싹 사라져 버렸다.
짜증이 울컥울컥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것 같았다.
두 시간 넘게 기다리는데 부아가 돋았다.
"나오기만 해봐라! 가만 두나!"
그렇게 분을 삭이고 있는데 그녀가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왔다.
"자기야! 오래 기다렸지. 잉?"
그는 대뜸 고함을 질러댔다.
"너, 목욕탕 물 다 퍼먹었냐? 왜 이제야 나오는 거야?"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눈이 분노의 눈으로 바뀐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여자들은 원래 목욕을 오래 하는데 그것도 이해 못 해!"
그녀가 야무지게 쏴붙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인지, 아내가 생떼를 쓰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래서 목욕탕에 들어서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에서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아주머니! 여자들은 목욕하면 4, 5시간이나 걸려요?"
그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
그 아주머니는 '별 이상한 인간 다 보겠다'라는 표정을 하고는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외식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부부는 한동안 '그놈의 목욕 때문에' 냉전을 치러야만 했다.
이후로 함께 목욕탕에 가는 일은 사라졌다.
어쨌거나 아내의 목욕 오래 하는 버릇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그는 아내가 돌아오면 한바탕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며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했다.
episode 2
"시금치나물에 참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소고기국에는 왜 이렇게 기름이 뜨냐? 이건 왜 이렇게 매워?"
그가 아침부터 찬물을 끼얹었다.
반면 그녀는 국이 싱거워 자신의 국그릇에 간장 한 숟가락을 넣은 뒤였다.
"안 그래도 맵고 짠데 거기다가 간장을 또 넣는 건 또 뭐냐?"
그녀가 대꾸했다.
"우리는 음식 궁합이 너무 안 맞는 것 같아.
나물에 참기름 많이 들어가면 더 고소하니 뭘 그래?
어제 자기 술 마셨으니까 해장하라고 국을 좀 얼큰하게 끓인 건데, 그것도 맵단 말이야?
그럼 먹지 마.
왜 자기가 매우면 나도 매워야 되고, 자기가 싱겁게 먹는다고 나도 싱겁게 먹어야 하는 거야?"
그에게는 양념 많고 기름진 음식이 맞지 않았다.
그녀는 초고추장과 김치를 넣어 비빈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반면,
그는 멸치육수에 담백하게 끓인 물국수를 좋아했다.
그는 김치를 먹을 때도 매운 양념을 발라낸 김치 한 가닥으로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 한두 끼 먹는 반찬이 사흘이 가도 남아돌아,
그녀가 비빔밥을 해서 해치워야만 할 지경이었다.
결혼 생활 7년.
어느 정도 생활이 비슷해질 법도 한데,
도대체 이 먹는 것만큼은 늘 그대로이니 먹을 때마다 전쟁을 한다.
얼마 전까지는 밥상에다 간장과 고춧가루를 따로 담아놓고 먹기까지 했다.
간을 제각각 하자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삼겹살이 먹고 싶었다.
"자기야, 삼겹살 좀 사줘."
그녀의 코맹맹이 소리를 그가 단칼에 잘랐다.
"느끼한 거 싫어서 죽겠다."
"요즘 먼지도 많다는데 가끔 삼겹살 먹어줘야 좋대. 응" 먹자...."
"안 먹어도 산다. 시장에 가서 봄배추 있으면 알 작은 걸로 좀 사 와.
된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싱거운 건 간이 안 된 것 같아 정말 맛이 없고,
지글지글 돌 판에 구운 삼겹살이 좋은데, 그는 묽은 된장찌개에 배추 겉절이를 먹자고 한다.
그것도 고춧가루가 세수하고 지나간 것 같은 양념으로.
그는 가끔씩 시위를 한다.
반찬이 짜거나 안 맞으면 물에 밥을 말아서 안 메운 풋고추나 배추에 쌈장 찍어 한 그릇 비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가 야속하기만 하다.
딴에는 맛있으라고 차린 음식을 앞에 두고 물에 밥 말아서 그렇게 먹어대니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싱겁게, 채소 위주로 먹는다는 건 건강에 좋은 거니까.
건강을 위해서 결국 내가 따라야겠지'
그렇지만 억울하다.
'한 번씩은 음식 외도(?)도 필요하지 않겠어?'
그녀는 그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삼겹살을 사달라고 조르기로 했다.
채소만 먹고 살자니 소가 된 기분이었다.
결혼은 각각 다른 환경에서 20년 이상을 다르게 살아온 남녀의 결합입니다.
남녀 간에도 차이가 있는데, 낳아주신 부모님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거의 모든 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서로의 다름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서로 조율하고 양보하면서 적정 타협점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9.19. 20210908-1336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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