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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부부로 산다는 것

2 - 019. 그녀의 주정을 받아주는 것

by 탄천사랑 2007. 7. 4.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기쁨

019. 


그녀의 주정을 받아주는 것
"자기야, 저녁에 좀 나갔다 오면 안 돼?"
"왜?"
"응, 오늘 저녁에 아파트 아줌마들 모임 있잖아. 송년회 한다고 해서 뭉치기로 했는데."
“그래. 그럼 다녀와.” 
"응, 알았어.” 
 
그녀는 저녁 8시가 되기가 무섭게 몇 통의 전화를 받더니 수수한 외출복을 입고 나섰다. 

"나, 조금 늦을지도 몰라."

그녀는 900년 묵은 여우를 찜 쪄 먹은 여우였다.
이미 모임을 예상하고는 아이들의 낮잠을 재우지 않았다.
이윽고 찬바람을 가르며 현관을 나간다.

9시가 조금 지나자 아이들이 잠을 청한다.
그는 하나씩 안아 애들 방에 뉘여주었다.
깨어 있을 때는 그토록 말썽꾸러기지만, 잠든 모습은 천사였다.

그녀가 없는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그는 신문을 뒤적이다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 숫자 공부를 여러 번 했다.

저녁 11시가 넘었다.
뉴스 채널과 영화 채널을 오가며 내용도 모르고 재미도 없는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채찍질했다.
한데 영화가 몇 편 끝났는데도 그녀는 소식이 없었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채널도 여러 번 복습해 보지만 소식이 없다.
그의 시선이 자꾸 시게로 향하고 마침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무엇인가가 몸속에서 뜨거운 고구마처럼 올라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화를 못 이기고, 베란다에 가서 오래 전에 담가두었던 차가운 칡 술을 꺼내 마셨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남자가 이 정도 사소한 것 때문에.... 
 게다가 아내는 집에서 일 년 열두 달 애들과 씨름만 하다가 어쩌다 한 번 나간 것 아닌가'
그러다가 자정을 넘겨 잠이 들었다.
잠결에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띵했다.
집 안을 둘려보던 그는 대경실색했다.
그녀가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숙아! 정신 차려!"

그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술 취한 사람이 무거운 줄 알고 있었지만 그녀까지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갈아입힌 뒤 나란히 누웠다.
그러자 그녀가 정신이 든 것 같았다.
그의 목을 세게 끌어안으며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한다.

“자기야, 고마워.” 
“뭐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 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 기분 너무 좋더라.
 일 년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정말 기분 짱이었어.” 
“그렇게도 좋았어?”
“응, 자기랑 애들한테 더 잘할게. 딸꾹.” 

그녀는 뽀뽀를 한다고 장난을 치더니 이내 잠들고 만다.
그는 아내의 발그레한 얼굴을 만져보면서 말한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그렇게 스트레스 풀고 나니까 시원하지? 잘 자라. 숙아. 나도 너 사랑해.”



바깥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업주부들도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피곤은 안과 밖을 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녀에게도 자그마한 일탈이 필요합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그녀 역시, 당신만큼이나 힘듭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7.04.  20210702-18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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