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기쁨
020.
화목해지는 신기술을 끊임없이 도입하는 것.
남편의 모든 것이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일까'
남편은 '처음은 있으나 끝은 없는' 성격이었다.
무엇이든 그의 손을 거치면 행방불명됐다.
냉장고 속에 있어야 할 물통이 그의 손을 거치면 안방 화장대 위로 이사를 갔다.
그가 서랍을 열어 필요한 것을 찾고 나면,
서랍은 입을 벌린 채 그녀의 손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휴지통이 가까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마디로 그의 손이 거쳐간 곳에는 어김없이 흔적이 남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잔소리밖에 없었다.
"왜 이런 것 가지고 자꾸 못살게 굴고 그래!"
그는 그녀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이렇게 대꾸했다.
그는 정리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작은 수고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녀는 남편의 습관에 체념했다가도, 때로는 스트레스를 폭발시키곤 했다.
걷잡을 수 없는 부부싸움이 일어났고 서로가 상처를 받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동생 집에 놀러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남동생 부부가 다툼 한 번 없이 잘 산다고 해서, 두 사람의 성격이 잘 맞아서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둘 다 착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한데 동생 부부는 착한 것 외에도 확실히 남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가 사용하는 말투였다.
남동생은 올케에게 올케는 남동생에게 아주 차분한 권유형 말투를 쓰고 있었다.
조카들이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자,
동생이 텔레비전 가까이 앉아 있던 올케에게 말했다.
"텔레비전을 끄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올케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 남동생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어머, 간장이 떨어졌네요.
요기 앞 가게에서 사다주시면 좋겠어요."
한쪽이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다른 한쪽은 두말없이 따라주었다.
아마도 이전부터 그랬을 것이었다.
다만, 그녀가 동생 부부의 그런 행동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터였다.
그녀는 그날 저녁 내내, 남동생과 올케의 주고받는 말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동생도 올케도 서로에게 명령조의 말투를 전혀 쓰고 있지 않았다.
깍듯한 말투는 아닐지라도 상대에게 부탁과 함께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배려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대하던 말투를 떠올려보았다.
"이것 좀 제대로 해놔!"
"휴지는 썼으면 휴지통에 버려!"
그것도 모자라 끝에 달던 또 한 마디.
"어릴 때 뭘 배웠어.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 배웠어?"
그녀는 부끄러웠다.
무심결에 내뱉은 한 마디에 상처를 받았을 남편에게 많이 미안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동생 부부처럼 말투를 고치기로 결심했다.
"당신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때, 어지러운 것보다 정리 정돈된 모습이 좋지 않겠어?"
휴일 점심을 준비할 때에도 남편의 의사를 먼저 묻기로 했다.
"오늘 점심 수제비 어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었다.
희한하게도 남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어지른 것은 스스로 정리를 했고,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부탁할 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꼼짝 못하겠다."
화목한 부부들에게는 그들만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거창한 무엇인가를 찾는 데만 익숙해 있습니다.
'성공했으니까 많이 벌어오니까 당연하지' 이렇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잘 살펴보세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신기술을 주저 없이 도입해 보세요.
생활이 바뀔 것입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7.05. 20210702-18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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