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끊임없이 서로를 재발견하는 열정
3 - 023. 그녀를 위한 식사를 차리는 것
episode 1
그는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이마에 손을 얹어보니 열이 펄펄 끓었다.
"다녀왔어요?"
"응, 의사 선생님이 뭐래?"
"독감이 심하대요. 미안해요."
그녀는 몇 번 들썩거리며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그가 부축을 해주니 겨우 일어나 앉았다.
"그래, 약 먹고 자자.
빈 속에 약 먹으면 안 좋으니까, 내가 저녁 차려올게."
그는 이불을 덮어주고 주방으로 갔다.
아침에 먹었던 김치찌게와 식어버린 밥이 그대로 있었다.
아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아픈 사람한테는 죽이 최고일 것 같아 편의점에 가서 인스턴트 죽을 사 오려 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다가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인스턴트보다는 정성이 담긴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직접 죽을 끓여보기로 했다.
죽을 끓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시도해 보기로 했다.
쌀을 듬뿍 퍼서 냄비에 담았다.
쌀을 씻고 손을 넣어 손등에 물이 적당히 올라오게 맞춘 다음, 불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이게 아니다 싶었다.
'죽이니까 물이 더 있어야 하는 것 아냐?'
손목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물을 보충한 다음 뚜껑을 닫았다.
냉장고를 여니 젓갈이 눈에 띄었다.
그가 좋아한다고 그녀가 자주 장만하는 갈치젓이다.
조그만 접시에 앙증맞게 담았다.
반찬들을 꺼내 예쁘게 상을 차렸다.
가스레인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 보니 죽이 다 된 것 같았다.
냄비를 열어보았다.
물이 하나도 없다.
쌀을 몇 개 집어서 씹어보았다.
이게 왠일인가, 생쌀이다.
그는 다시 물을 붓고 끓였다.
이번에는 물이 넘친다.
잠시 후 열어보니 또 물이 부족하다.
절반은 익어 있었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누구한테 전화 걸어서 물어볼까? 아냐 그냥 내가 끝까지 해보는 거야'
다시 물을 부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냄비 밖으로 쌀이 넘쳐흐른다.
그릇에 절반을 덜어냈다.
그리고 다시 물을 부었다.
또 끓였다.
상에 차려진 음식들이 식어갈 무렵 알맞게 죽이 되었다.
아니, 그것은 죽이 된 게 아니었다.
쌀들이 지쳤는지 퉁퉁 불어터진 것 같았다.
그릇에 담아 상을 들고 방으로 갔다.
그녀가 놀라 묻는다.
"뭐 했어요?"
"내가 죽을 쑤어봤어"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정말 당신이 끓였어요?"
"그렇다니까.
생각 없어도 약 먹으려면 조금이라도 들어.
약 먹고 푹 자."
그는 한 숟가락 떠서 그녀 입에 대주었다.
표정으로 보아 맛이 없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맛있다'라며 숟가락질을 계속한다.
그릇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맛없는 죽을 먹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필경, 아내도 이런 기분으로 밥상을 차릴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반찬 투정을 부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 이불을 덮어준 뒤 상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밥을 먹은 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찜질용 수건을 만들었다.
그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이마에 손을 얹어보니 여전히 열이 있었다.
수건을 머리에 얹어주었다.
그녀는 약간의 미동을 하더니 다시 잠을 잔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항상 걱정만 해주는 아내, 나직이 얘기한다.
"미안해, 앞으로는 더 열심히 살게"
가슴이 찡해진다.
감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episode 2
그들 부부가 다툰 것은 신혼여행 때문이었다.
사정상 뒤로 미뤘던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그녀는 동남아를 고집했다.
스노클링이나 래프팅 같은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더운 곳에 가는 것이 싫었다.
가뜩이나 여름이라 더워 죽겠는데 무슨 동남아란 말인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치 양보도 없는 설전이 벌어졌다.
말싸움에서 밀린 그가 면박을 주었다.
"동남아 간다고 치자. 수영복 입을 자신 있어? 몸매를 생각해야지."
그녀는 그 말에 수저를 탁 놓았다.
그는 아뿔싸 하고 후회했지만, 한 번 나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밤이 깊었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갈만한 곳은 전부 수소문해 보았지만 그녀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밤 12시가 넘어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가 아니었다.
친한 친구였다.
"야. 빨리 나와 봐라. 네 와이프 큰일 났다."
그녀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가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술집 앞에 친구 부부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너무도 애가 탄 나머지 화가 났던 것도 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 바보야. 그런다고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 어떡해."
그는 집 앞 놀이터 벤치까지 휘청거리는 그녀를 업고 왔다.
그녀가 벤치에 힘겹게 앉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야! 너 인간이 그러면 안 돼.
네가 군대 간 3년도 기다렸는데,
나 좋다는 남자들 다 밀쳐 버리고 너만 믿고 기다린 건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 계속 그러면, 나 집에 가버릴 거야."
그는
'무조건 잘못했다'라고 빌면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 재웠다.
다음 날, 일찍 퇴근한 그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 당해 보는 숙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콩나물과 두부를 사다가 돼지고기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감자와 양파, 계란, 고추, 마늘, 소금, 참깨를 섞어서 부침까지 만들었다.
파김치를 다듬어 깔끔하게 접시에 담았다.
"자기야! 찌개 맛이 끝내준다. 나보다 잘하는 것 같아. 종종 끓여줘."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집을 나섰는데,
언니 집에 가려니 눈치가 보여서 가까이 사는 친구 부부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친구가 흥분하는 바람에 그렇게 술을 마셨다는게 그녀의 변명이었다.
그는 다시 '무조건 잘못했다'라고 말했다.
"아니야. 나, 기분 완전히 풀렸어. 찌개 맛이 감동적이었거든.
신혼여행은 아무 데나 가자."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 마디가 당신의 그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해 보세요. 닫혔던 그녀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녀가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식사를 차려 보세요.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9.20. 20210307-1617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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