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07 옥수수 심기 - 정토불교대학 실천적불교사상 4강」
저녁 8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사상 제4강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업에서는 ‘우리는 이 세계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를 주제로 인간의 정신작용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이 세계의 실제 모습은 어떤한가’를 주제로 붓다가 발견한 연기법에 대한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개별 존재의 집합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관찰해보면 한 사람이 이기려면 다른 한 사람이 져야 하고, 한 사람이 선거에 당선되면 다른 한 사람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죠. 그래서 세상을 ‘적자생존, 약육강식,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잘 살펴보면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핵심 내용이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죠. 그 깨달음의 핵심 내용은 한마디로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법은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연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연기법을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것은 공간적 연기를 뜻합니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것은 시간적 연기를 말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예요. 모든 존재는 시공간적으로 연기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불교 가르침 중에 가장 핵심인 연기법입니다.
옛날에는 양반이라는 신분이 단독으로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양반 종자와 천민 종자가 다르기 때문에 천민이 이 세상에 없어도 양반이 그냥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천민이라는 개념이 있으니까 양반이라는 개념이 있고, 천민이란 개념이 없어지면 양반이란 개념도 없어집니다.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존재 자체에는 귀하고 천함이 없습니다. 무엇을 ‘귀하다’라고 하니까 반대로 ‘천하다’ 하는 것이 생겨난 거예요. ‘귀한 것’이 없어지면 ‘천한 것’이 없어지고, ‘천한 것’이 없어지면 ‘귀한 것’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습니다.
연기법을 간단한 비유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속을 조립해서 만듭니다. 자동차를 단순히 2만 여개의 부속이 모여 있다고 보는 것은 세상을 단독자의 집합으로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개별 존재의 집합이 세계라고 보는 거예요. 연기적 세계관은 어떻게 다를까요? 자동차를 ‘2만 여개의 부속이 잘 조립되어서 하나의 자동차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2만 개의 부속은 각각 자기 특성을 갖고 있지만, 자동차라는 기준에서 볼 때는 하나입니다. 2만 개의 부속 중에 한 개만 없어도 자동차가 잘 작동하지 않잖아요. 서로 다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이 세계의 실제 모습이 마치 조립된 자동차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계가 2만 개의 부속이 조립되지 않은 상태로 그저 바구니에 담겨 있다고 봐요. ‘세계는 하나’라는 말은 단순히 세계가 한 덩어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계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하나 더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습니다. 손가락마다 각각 모양이 다르고 따로 움직입니다. 전체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손가락 하나하나를 보면 개별적 존재로 보입니다. 깨달음이란 가려진 것이 벗겨진 것과 같아요. 손 전체를 보면 다섯 개의 손가락이 연결되어 하나의 손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를 보면 ‘하나의 손’이 되고, 개별로 보면 ‘손가락’이라고 불러요. 그러나 손가락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단독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손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냥 한 덩어리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을 잘 못 이해하면 전체를 한 덩어리라고 보거나, 개체 하나하나가 단독으로 존재한다고 봐요. 이는 극단에 치우친 겁니다. 실제를 알지 못하는 거예요.
과학적으로 증명된 연기법
연기법을 과학적으로 한 번 이해해 봅시다. 19세기 초 돌턴은 물질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돌턴의 원자설은 현대 화학의 기초가 되는 ‘질량 보존의 법칙, 배수 비례의 법칙, 일정 성분비의 법칙’을 뒷받침했습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이 법칙들을 진실로 알고 있었어요. 세월이 흘러 과학자들은 원자가 단독자가 아니라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원자핵도 단독자가 아니라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원자는 단독자가 아니라는 원자의 구조가 밝혀진 거예요.
여기서 과학자들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쿨롱의 법칙(Coulomb’s law)에 의하면, 전기장에서 두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각 전하량의 곱에 비례하고, 전하 사이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합니다. 그런데 작은 핵 속에 양성자가 2개 이상 모여 있다면, 양성자 사이의 거리가 제로에 가까우니까 서로 밀어내는 힘이 무한대에 가까워져서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기존의 물리 법칙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새로운 가설이 나왔어요. 바로 중간자의 역할입니다. 일본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는 이론적으로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누구나 배우는 이론이 되었죠.
원자는 단독자가 아닌 수많은 소립자들의 결합이므로 분해도 되고 융합도 됩니다. 핵분열이란 우라늄을 분열시키는 것이고, 핵융합이란 중수소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이 화학반응에서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핵반응에서 질량 감소가 일어날 때, 감소된 질량은 에너지로 바뀝니다. 이게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식 (E=mc2)입니다.
저는 지금 최신 과학 이론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핵심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단독자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는 거예요. 물질뿐만 아니라 생명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세포 생물은 세포 수백 조가 결합해서 하나의 개체를 구성합니다. 그 수많은 세포마다 다 핵이 있고 핵 속에 DNA가 있습니다. DNA 속에는 개체 전체의 정보가 들어있고 그것이 유전자입니다. 어떤 생물의 세포 하나를 떼서 복제하면 그것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생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애완용 동물 같은 것은 실제로 복제가 일어나고 있어요.
DNA의 나선 구조를 보면 그 개체의 온갖 특징에 대한 정보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자동차 설계도에 따라 부품을 조립하면 그냥 쇳덩어리에 불과한 자동차가 굴러가기도 하고 소리도 내고 불도 켜잖아요. 그처럼 생명체도 유전자에 따라 수많은 물질이 고도로 결합해서 유기체로 살아있는 거예요. 그런데 생명체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해요. 스스로 자기 복제를 못하면 생명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그건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생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이란 자기가 자기를 복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생명현상 위에 정신현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현상을 또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영혼’, ‘아트만’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신현상도 잘 분석해보면 수많은 조건 속에서 연관되어 일어나는 작용일 뿐입니다. 이렇게 연관되어 일어나는 정신현상은 오늘날 과학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성주괴공, 생노병사, 생주이멸
시간적 연관도 살펴보겠습니다. 옛날에는 우주가 영원하다고 생각했지만 과학의 발달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는 탄생한 지 45억 년 정도 되었고, 태양은 46억 년 정도 되었습니다.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빅뱅으로 우주가 형성됐고, 이 우주 속에는 수많은 별들이 지금도 형성되고 소멸하고 있습니다. 우주에 있는 성간 물질이 모여서 주계열성이 되고, 그러다가 거성이 되고 폭발해서 백색왜성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불꽃놀이를 하듯이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주는 성주괴공한다. 이루어지고 머무르고 붕괴되고 사라진다. 생명은 생노병사한다.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정신은 생주이멸한다. 한 생각 일어나고 머무르고 흩어지고 사라진다.’
과학적인 증거가 나오기 훨씬 전인 2600년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물질세계, 생명세계, 정신세계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항상하는 것은 없어요. 우리가 무언가 집착한다는 것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원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집착은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법은 사상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아주 심오한 얘기입니다. 옛날에는 불교가 너무 심오하니까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했는데, 요즘 일부 과학자들은 불교가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가 서양에 전해졌을 때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어요.
‘과거의 종교, 철학, 사상 중 새로운 우주 시대에도 존립할 수 있는 것은 불교밖에 없다’
저는 불교가 훌륭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실제의 세계는 이런 것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실제의 세계가 연관된 모습인지 아닌지, 이것도 한 사람의 주관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분도 경험한 바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직접 경험을 해봐야겠죠. 그러나 2600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고 설했습니다. 이에 기반해서 당시에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당시는 계급을 절대화하고 차별하는 사회였습니다. 여성은 그 존재 자체가 단독적으로 사람이 될 수 없는 사회였습니다. 남성을 주인으로 섬기는 전제하에 여성이 존립할 수 있는 시대였어요. 부처님은 그런 귀족 중심, 남성 중심의 계급 사회에 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주어진 계급과 성별로 인해 성스러워지거나 천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이 단독으로 자기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여성 출가를 허용했습니다. 노예가 출가하면 브라만이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여성이 출가하면 남성이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될 수 있었어요. 이런 얘기가 요즘은 별 거 아니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이었습니다. 속박에서 벗어난 이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신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왕도 아니다. 내가 주인이다.’
자유를 얻은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겠죠. 불교의 가르침 중에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단독의 실체나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독자나 영원한 것이 있다는 생각은 일어날 수 있지만 실제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의 세계는 서로 연관되어 있고 항상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냐 늦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변화가 일어날 때는 항상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습니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일어나지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우리는 원인을 모르고 결과만 갖고 기적이라고 하거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하는 거예요. 원인을 알면 필연이라고 합니다. 우연과 필연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에요. 원인을 아느냐 모르냐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원인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아직도 기적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일어납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어요. 어떤 현상이 일어났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반드시 그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어떤 원인이 있습니다. 뉴턴의 법칙처럼 힘을 가하면 속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속도의 변화가 일어났다면 반드시 힘이 가해졌다는 얘기예요.”
여기까지 법문을 하고 스님은 학생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수행연습 과제를 안내했습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오늘 강의를 듣고 난 소감과 지난 시간에 스님이 내어 준 수행연습 과제를 실천해 본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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