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패터슨 - 「The Diary (니콜라스를 위한 수잔의 일기)」
그는 케이티가 근무하는 출판사 건물에서 3~4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인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피한 걸 보니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는 그 사람다웠다.
케이티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처다봤다.
그런 광경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목을 길게 빼고 남 구경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좋아 보였다.
그을린 피부, 깔끔한 얼굴, 예전보다 조금 길어진 머리, 청바지, 깨끗하지만 끝이 닳은 샴브레이 셔츠,
먼지 묻은 작업 부츠,
예전에 알던 매트, 케이티가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매트 그대로였다.
그런 그가 무릎을 꿇고 있다.
바로 그녀 앞에,
어느 날 밤 수잔이 용서를 구하기 위해,
용서 받아야 할 것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현관앞에 무릎을 꿇었던 모습 그대로,
케이티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숨을 들이마신 케이티는 매트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그를 마주 보았다.
가까이, 최대한 아주 가까이서, 심장이 거세게 고동쳤다. 쿵, 쿵, 쿵,....,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매트를 보고 싶었는데 지금 그가 눈앞에 있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하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도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직장으로,
또는 매일 아침 달려가는 그 어딘가로 가는 길에 소중한 몇 초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며 불평을 내뱉기도 했다.
매트가 손을 내밀었다.
케이트는 잠시 멈칫했지만 자신의 길고 가는 손을 그에게 맡겼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손길이었다.
정말로 간절히 그리워하던 손길이었다.
그의 많은 것이 그리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그와 함께 있을 때 느끼던 편안함이 그리웠다.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지?
용서를 구하려고?
아니면 직접 만나 이유를 설명하려고?
대체 왜 온 걸까?
마침내 메트가 고개를 들어 케이티를 바라보았다.
이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를 얼마나 그리워했었나.
강해 보이는 광대뼈, 주름진 이마, 멋진 입술도 정말 보고 싶었다.
매트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 그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케이티. 당신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게 좋아.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 시골 사람 같은 느린 말투도 좋아.
당신은 정말 특별해. 그런 점이 정말 좋아.
당신과 같이 있는 게 좋아.
한 번도 지겹지 않았어. 당신을 알고 난 후로 단 한 순간도.
당신은 실력 있는 편집자야.
나는 실력 있는 목수고.
당신은 키가 크지만 정말 매력적이야."
케이티는 자신이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 두 사람이, 뉴욕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그 누구도 이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어쩌면 이들 자신조차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케이티도 입을 열었다.
"이봐요, 아저씨.
당신을 찾으러 갔었어.
마사스 빈야드까지 갔었다구요.
결국 거기에 가고 말았어." 이제는 매트도 미소를 지었다.
"들었어, 멜라니와 그 집 아이들한테서.
그들도 당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던데."
"그러고요?"
케이티가 물었다.
더 알고 싶었다.
그가 자신에게 하려는 말은 뭐든지 다 알고 싶었다.
그를 다시 보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이렇게 기뿔 줄은, 이런 기분이 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리고라니?
저, 그러니까,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말이지, 여기서 무릎 꿇고 있는 이유는 케이티,
당신한테 용서를 빌기 위해서야. 그래, 바로 그 때문이야.
드디어 준비가 되었어. 난 당신 거야.
만약 당신이 날 받아 준다면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당신과 나, 우리 둘의 아이를 갖고 싶어.
사랑해.
다시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게.
약속해, 케이티. 내 모든 걸 걸고 약속할께."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오래도록 키스를 나누었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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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그날,
노스캐롤라이나의 근사한 아우터 뱅크스에 있는 키티 호크 교회에서 케이티 윌킨슨과 메트 해리슨은 결혼했다.
윌킨슨 집안과 해리슨 집안은 만나자마자 서로 친해졌다.
두 가족은 금세 하나가 되었다.
뉴욕에 있는 케이티의 친구들도 몰려와 가재도 구워 먹으며 해변에서 며칠을 즐겼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의 친구들은 처마 밑이나 나무 그늘을 더 좋아했다.
그래도 두 그룹 모두 위스키에 박하와 설탕 등을 넣은 민트 줄렙을 마시는 데는 동의했다.
케이티는 살이 빠졌지만 몸을 많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객 중에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그 사실을 메트에게 털어놓자
그는 케이티에게 키스하고는 자기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도, 아니, 정확히 말해서 우리 셋 다."
섭씨 21도 안팎의 기온에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서 펼쳐진 결혼식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케이티는 날개를 단 천사 같았다.
키도 크고 매력적이었다.
결혼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조금도 요란스럽지 않은 가운데 치러졌다.
하객들을 위한 테이블들은 가족 사진으로 꾸며졌고, 신부 들러리들은 연한 분홍색 수국을 들었다.
혼인 서약을 하는 동안 케이티는 가족, 건겅, 친구, 자기 자신의 소중한 유리공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제야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평생을 매트와 사랑하는 아기와 함께 그 이야기가 주는 교훈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니 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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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인생은 양손으로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게임과 같다.
그 다섯 개의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 자기 자신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아야 한다.
그중에서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서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뛰어 올라온다.
하지만 건강, 친구, 가족, 자기 자신이라는 나머지 네 개의 공은 유리공이다.
그래서 한 번 떨어뜨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흠집이 생기거나 금이 가거나 아니면 완전히 깨져 버린다.
코카콜라 사장이 신년사로 직원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기억한다.
기업의 최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실적을 높이라는 것밖에 더 있을까 싶은데
그는 일보다 가족을, 친구를, 건강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라고 했단다.
결국 돈과 명예를 가져다주는 일도 네 마음이 편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친구, 가족, 건강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이라 웬만해서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만큼 평소에는 좀처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그 말을 따르기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롭게(적어도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수잔도 아무리 떨어뜨려도 끄떡없는 '일'이라는 고무공만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일이라는 고무공만 열심히 쳐다보다 그만 소중한 유리공들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조금 금이 갔을지는 모르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수잔은 일이라는 고무공보다 가족,
건강, 자기 자신, 친구라는 유리공이 훨씬 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움에 따라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갔다.
그런 수잔을 통해 케이티도 평범하면서도 가장 소중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고,
이 두 여인을 통해 나 역시 그 소중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면서 해놓은 것 없이 시간만 허비했다는 생각에 초조했었다.
(아직도 살라갈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았다며 나이 들어 간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는 있지만)
짐짓 별것 아니라는 얼굴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난 이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으스대며 내세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을 빨리 해내야 한다는 욕심과 조바심 때문에 무얼 하든 부족하게만 느껴졌고,
남과 나를 비교만 하고, 나에게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케이티와 함께 수잔의 일기를 읽다 보니 무작정 욕심낼 일도, 조바심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마음이 편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야 일도 더 잘되고 또 그 일을 통해 얻는 부와 명예도 소용이 있겠지?
수잔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리고 케이티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슴 아픈 이별을 겪으면서
소중한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는데 그런 힘든 고통 없이(물론 번역도 쉽지만은 않지만)
삶의 진리를 먿을 수 있었다는 것이 고맙다.
여태껏 잊고 살았던 평범한 진리를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시 깨닫긴 했지만 분명 오래지 않아 또다시 잊고 살게 되리라.
그래도 다른 어떤 인연이 그 진리를 다시 일깨워 주리라 기대해 본다.
오늘은 이만 컴퓨터를 끄고 푸른 하늘이라도 보러 나가야겠다. (p 287)
※ 이 글은 The Diary 의 일부를 필사한 것임.
제임스 패터슨 - The Diary (니콜라스를 위한 수잔의 일기)
역자 - 서현정
베텔스만 코리아(주) - 2002.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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