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우 - 「재미있는 선 이야기. 100」
어느 수행승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니라."
수행승이 질문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에서 조사는 중국선의 창시자인 달마 대사를 가리키며.
서쪽은 인도가 중국의 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인도를 가리킨 말이다.
따라서 수행승이 물은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는 바로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뜻은 무엇인가라는 말로,
불교의 근본정신이나 선의 진수를 물을 때 쓰는 말이다.
요컨대 그 수행승은 달마가 무슨 생각을 갖고 멀리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는지를 조주에게 물은 것이다.
그런데 조주 화상은 질문의 내용과는 전혀 엉뚱하게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 것이다.
조주 화상이 거주하던 관음원 경내에는 커다란 잣나무가 있어서 백림사(栢林寺)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때마침 수행승이 묻자 조주의 뇌리에는 번듯 잣나무가 떠올랐다.
때문에 그대로 잣나무라고 대답한 것뿐이다.
잣나무가 아니라 소나무나 복숭아나무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잣나무' 자체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단순히 잣나무에만 집착한다면 이 공안은 물론 선의 참뜻도 이해하지 못한다.
관산(關山) 국사는 조주 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에 대해
"잣나무의 얘기에 도적의 낌새(賊機)가 있다."고 평했다.
이 말 은 '뜰 앞의 잣나무'에는 도적과 같은 두려운 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이 갖고 있는 망상이나 집착심을
남김없이 뺏고야 말겠다는 무서운 대 도적의 살아 있는 책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관산 국사가 입적하고 나서
대략 300년 뒤인 명대(明代)의 고승 은원(隱元) 선사가 관산 국사가 머물던 묘심사에 들러
"개산 법어(開山 法語:한 파를 창시하면서 내리는 법어)가 있느냐?"고 물었다.
묘심사의 수좌가 없다고 대답하자 은원 선사는
"그렇다면 일파를 개산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힐난했다.
그러자 그 수좌(大疑 화상)는 스승 우당(愚堂) 국사와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산할 때 법어는 없었지만 '뜰 앞의 잣나무 얘기에 도적의 낌새가 있다'고 한 한마디는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은원 선사는 어쩔 줄 몰라 두려워하면서
"이 한마디가 백천만의 어록보다 낫다."고 찬탄하고서 물러갔다고 한다.
'뜰 앞의 잣나무'는 문자나 언어적 설명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서
실제로 참구(參究)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우문 선사는 '마른 똥막대기'라 했고 동산 선사는 '삼 세 근'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잣나무와 마찬가지로 그 사물들 자체에는 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망상분별을 씻어 내고 '뜰 앞의 잣나무' 자체가 되어야
비로소 조주 선사의 참뜻은 물론 선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p47)
<無門關>
신지우 - 재미있는 선 이야기. 100
불교시대사 - 199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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