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놀드 베네트 - 아침의 차 한 잔이 인생을 결정한다(개정판)」
39.
'뭘 할까' 하고 지나쳐버리는 시간들
오후 6시가 되면 당신의 얼굴은 피곤해져 조금은 상기되어 있고,
당신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피곤하다고 알린다.
퇴근길 넥타이부터 약간 느슨하게 풀면서 낮의 씩씩했던 어깨까지 조금씩 늘어뜨리면서
집에 도착하는 사이에 서서히 의식적으로 파로 감을 자신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피로감은 두껍고 무거운 구름처럼 널리 도시의 교외 일대에 낮게 깔린다.
특히, 겨울에는 더욱 더 그렇다.
집에 도착해서도 소파에 축 처진 몸을 걸치고서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어떤 의욕도 일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겨우 원기가 나서 조금 정도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로소 그 때 식사를 한다.
그리고 엄숙한 얼굴로 담배를 한 대 태우거나 TV를 보거나 혹은 멍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잡지책을 잠시 뒤적거려 보거나,
가는 세월을 잠시 생각해 보거나 산보를 하거나......, 그러다가,
"어 벌써 11시 15분인가? 슬슬 잠자리에 들어야지...."
잠자리에 들어야지 하고 계속 생각하면서 그 때부터 또 40분쯤 보내고 만다.
본인이 생각해도 따분한 심야 프로를 보면서 끈덕지게 일어나 있는 모습이 나의 눈에 떠오른다.
마침내 하루 일에 심신이 피곤해 겨우 잠자리에 든다.
회사를 나서서 6시간, 아마도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가고 말았다.
-- 마치 꿈이나 마법처럼 영문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퇴근 후 6~7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면 당신은 아마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긴 시간이었나?"
이런 쪽이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당신은 말할 것이다.
"무어라 말해도 좋지만, 사실 우리들은 지쳤다.
보고 싶은 친구도 만나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라고.
지당한 말씀.
그러나 조금 색다르게 극장에 가려고 할 때에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특히 아름다운 아가씨와 동반할 때는).
퇴근시간에 맞춰서 부지런히 옷차림을 단정히 한다.
황급히 약속 장소로 간다.
테이트를 하는 시간이 5시간 정도는 아니더라도 4시간은 쭉 긴장한 상태이다.
여자를 집까지 보내고 그리고 당신도 '나의 집으로' 하고 돌아가서는 너무 피곤해 잠자리에 들어야지 하고
'계속 생각하며' 40분 정도를 보내지는 않는다.
곧 바로 잠자리에 든다.
친구나 피로감이라는 것은 깨끗이 잊고 있다.
그리고 오늘 밤 얼마나 긴 밤이었던가 하고 만족감에 빠진다.
(혹은, 잠깐 사이에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던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매일매일을 저녁 6시에
자신은 전혀 피곤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당신은 피곤해 있지 않으므로)
그리고 밤의 시간이 식사 때문에 한가운데에서 중단되지 않도록 배려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적어도 3시간이라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매일 저녁의 3시간을 지적 에너지를 다 써버리게 되는 일에 사용하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먼저 처음에 하루 저녁 걸려서 1시간 반,
무언가 정신의 향상이 되게 하는 의의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해보면 어떤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아직 사흘 저녁이 남아 있으므로 친구와 만날 수도 있고,
트럼프 게임이든가 테니스를 할 수도 있다.
또는 가정 내의 일을 한다든가,
고상한 책 페이지를 넘긴다든가,
담배를 피운다든가 하는 것도 할 수 있다.
정원 손질도 할 수 있고,
그저 왠지 모르고 시간을 보내거나 현상 퀴즈에 응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주말'이라는 훌륭하고 풍요로운 시간이 있다.
만일 참을성 있게 계속한다면 정말로 충실한 생활을 위해 이윽고 나흘 저녁,
닷새 저녁을 계속 그 일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밤 11시 15분이 되면
'자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야'라고 중얼대던 그 습관이 없어지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침실 도어를 여는 40분 전부터
자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는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먼저 이 주 3회의 밤 90분을,
일 주일의 모든 시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필히 기억하기 바란다.
이 90분은 신성한 시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연극의 리허설이나 테니스 시합과 같이 누가 뭐라고 해도 확보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미안하지만, 너를 만날 수 없아. 테니스 클럽에 나가야 돼"라고 말하는 대신에
"공부해야 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기가 어려운 것임을 나도 진정 인정한다.
테니스 쪽이 불멸의 혼이라는 것보다도 훨씬 눈앞의 일이기 때문이다. (p238)
※ 이 글은 <아침의 차 한 잔이 인생을 결정한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8.19. 20210803-07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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