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 - 2022 July vol. 222」
“뇌는 자동차와 달리 시동을 끌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뇌는 공상, 기억, 잡념에 빠져 공회전처럼 계속 돌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휴식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쓰지 않는 주의 Effortless attention’가 필요하다고 한다.
억지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회복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 책상을 닦고 계세요?”
번아웃 문제로 상담을 받고 있는 명주 씨에게 건넨 질문이다.
그녀는 상담 중에 휴지를 꺼내어 연신 책상을 닦으며 이야기를 했다.
인상적인 행동이었다.
“가만히 있기가 뭐해서요.
뭐라도 하고 있으면 마음이 좀 더 편안해요.”
비정년 대학교수로 있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이 언제나 가득하다.
그렇기에 친구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할뿐더러 명절에도 고향 집에 안 내려간다.
모든 것은 정년을 보장받은 이후로 미뤄 놓았다.
그녀는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먼저 퇴근한다.
집에 있으면 왠지 불편하다.
특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때로는 죄책감까지 느껴진다.
쉬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 그냥 학교에 나온다.
이렇게 하루의 절반을 앉아서 생활하다 보니 최근에는 목과 허리가 아파서 요가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요가를 하면서도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시간이면 책을 좀 더 볼 수 있는데…….’
좋아서 하는 능동적 휴식 활동을 라틴어로 ‘오티움 Otium’이라고 한다.
이는 책임이나 의무 때문도 아니고 보상이나 결과 때문도 아닌 그 활동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드럼 연주, 사진, 자전거 타기, 글쓰기, 꽃꽂이 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것은 과연 그녀만의 이야기일까?
평생교육 전문기업 ‘휴넷’의 2022년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942명 중에 87.9%는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을 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번아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희한하다.
분명 갈수록 노동 시간은 줄고 휴식 시간도 늘어나고 있는데 번아웃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휴식의 양이 아니라 휴식의 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리학자 스테판 카플란 Stephen Kaplan 등이 이야기한 ‘주의회복이론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은
휴식의 원리를 단순하게 이야기해 준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주의집중력은 결심을 한다고 막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용량이 제한된 한정 자원이다.
그렇기에 주의를 집중하고 애를 쓰는 시간이 있으면 반드시 애를 쓰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회복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애를 쓰지 않는 시간 Effortless time’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생각과 달리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뇌는 자동차와 달리 시동을 끌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뇌는 공상, 기억, 잡념에 빠져 공회전처럼 계속 돌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휴식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쓰지 않는 주의 Effortless attention’가 필요하다고 한다.
억지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회복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녹색 환경 속에서의 휴식이다.
파란 하늘과 산을 바라보고,
싱그러운 꽃과 나무를 가까이하는 등 자연과 연결될수록 주의력은 잘 회복되고 피곤은 풀린다.
실험에 의하면 모니터로 자연 풍경을 보기만 해도 맥박이 느려지고 이완이 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休, ‘쉴 휴’라는 글자만 보더라도 사람과 나무가 함께 있을 때 쉼이 찾아온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가!
휴식 시간에 잠시라도 산책을 하고 집과 사무실에서 식물을 기르는 등 주위를 녹색 환경으로 꾸며보자.
둘째, 놀이와 같은 휴식이다. 이는 ‘휴식’이라는 글자에서 息, ‘숨 쉴 식’에 해당한다.
이 글자는 ‘자기自’와 ‘마음心’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좋아서 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렇게 좋아서 하는 능동적 휴식 활동을 라틴어로 ‘오티움 Otium’이라고 한다.
이는 책임이나 의무 때문도 아니고 보상이나 결과 때문도 아닌 그 활동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드럼 연주, 사진, 자전거 타기, 글쓰기, 꽃꽂이, 발레, 명상, 퀼트, 철학 공부, 목공예, 숲 해설 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활동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능동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그 과정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점이다.
숨을 들이마시면 내쉬어야 한다.
주먹을 쥐면 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애를 썼으면 애를 쓰지 않아야 한다.
그 애쓰지 않는 시간이 있기에 하고 싶은 것도 생기고, 해야 하는 것을 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휴식다운 휴식을 선사하자.
좋은 휴식 뒤에는 활력이 솟아나고 도약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고 느껴진다면,
어쩌면 쉬는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몰라요.
어디로 떠날지,
무엇을 할지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좋아요.
일단 속도를 늦추는 데서 휴식은 시작된답니다.
시원한 바다,
달큰한 바람,
숲속 짙은 초록 속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아 보세요.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당신을 환히 비추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빈틈없이 안아줄 거예요.
여유가 묻어나는 당신의 얼굴 참 보기 좋네요. (p14)
글 -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의사)
그림 - 장선영
땅과 사람들 - 54870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기지로 120
063-713-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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