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 2022. 5월호」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계절의 봄이야 어김없이 오지만 '마음의 봄은 만들어야 온다'는 말을 그동안 수도 없이 해왔고
희망과 용기의 덕목들을 나열해 가며 '봄과 같은 사람'이라는 글도 썼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든 순간들은 언제나 '봄'이라고도 노래했습니다.
오늘 성당으로 가는길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날아와 찾아보니 하얀 라일락쫓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처음으로 하얀 나비를 보았을 떄의 설렘,
새소리를 처음 듣던 순간의 설렘이 다시 느껴지는 감동과 감탄의 순간을 감사했습니다.
요즘은 마음껏 좋아하고 옷을 수만은 없는 아픔과 슬픔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어서
때로는 의기소침해지고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동안은 날마다 새롭게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사랑의 노력들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수녀님, 택배에 필요한 빈 상자 하나 주세요.'
'편지에 넣을 수 있는 예쁜 카드 하나만!'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책 하나만 추천 좀?'
'결이 고운 칫솔 없어요?'
'허브사탕이 꼭 필요합니다.'
수녀들이 저의 작업실에 와서 청하면
'뭐야? 여기가 무슨 공급실인가? 맞춤형 선물의 집인가?' 하면서도
귀찮은 내색 않고 최선을 다해 저 깊이 숨어있는 고운 마음을 불러내어
'수녀 고객들'이 청하는 것보다 더 넉넉히 내어주는 애덕을 발휘해 기쁨을 주곤 합니다.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 음식 맛이 달게 되네. / 비누를 조금 가지고도 / 내 몸이 깨끗이 되네.
햇볕을 조금 가지고도 / 새싹이 자라네. / 조금 남은 몽당연필로 책 한 권을 다 쓰네' 로 이어지는
엘리사벳 노벨의 '조금 (A little)'이란 동시를 좋아합니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21살의 청신한 얼굴'같다고 5월을 노래한 피천득 선생님도 기억하면서
조금의 인내와 절제, 조금의 친절과 미소로 다시 삶 속의 봄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가만히 봄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살며시 행복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해인수녀.
[t-22.05.05. 20220504-153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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