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월터스 - 「아름답게 사는 기술」
우리는 노래 부르며 수용소를 떠났다.
1943년 9월 7일, 당일의 수용 기차가 베스테르보르크의 출입구를 빠져나가자
한 장의 엽서가 기차 한 량의 얇은 널빤지들 사이로 빠끔히 빠져나왔다.
우편 엽서에는 연필로 흘려 쓴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무작위로 성경을펼쳐 보니 '주님은 저의 산성'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사람들을 가득 실은 기차 한 량 한가운데에 몸을 두고 내 배냥 위에 걸터앉아 있다.
아버지, 어머니, 미샤는 몇 량 떨어진 곳에 있다.
결국 사전 통보도 없이 이송이 시작되었다.
헤이그에서 갑작스레 떨어진 특별 지령인 것이다.
우리는 노래 부르며 수용소를떠났다......'
나중에 네덜란드 농부들이 발견한 이 우편 엽서의 주인은 에티 힐레숨으로 밝혀졌다.
그 당시 29살이었던 그녀는 몇 달 동안 베스테르보르크에 수용된 뒤
1943년 11월 30일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지내던 시절에 에티의 이웃이었던 안네 프랑크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 역시 베스테르보르크에서 한 달을 지내다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이에 비해 에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인물이다.
이는 애석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캔터베리의 주교 로완 월리암스의 말대로,
그녀가 남긴 일기와 편지들은 '보기 드물게 빼어난 증언'이기 때문이다.
에티의 작품들에 흐르는 주된 주제는 놀랍게도 '감사'이다.
그녀는 몇 번이고 연거푸 그녀가 세상 안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훈훈하고 착한 마음을 감사의 표현으로 가져간다.
(꽃들의 온화한 색깔, 릴케의 시, 암스테르담 운하 위에 찰랑거리는 반짝이는 햇살)
그녀는 어린 시절 특졀히 종교적이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이후에도 제도적 의미에서는 결코 종교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베스테르보르크에 수용되기 전에 이미 삶의 단순하고도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꽃피웠었다.
1941년 11월의 글에 자신의 하숙방 풍경에 대해 적으면서 그녀는 '감사의 마음,
넓은 의자와 책상과 책들로 꾸며진 이 밝고 넓은방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불현듯 의식 안에서 온전히 일어났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거의 2년 후,
그녀와 부모와 남동생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바로 얼마 전에
그녀는 더 넓어지고 깊어진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그녀는 베스테르보르크 수용소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 하느님, 저의 삶은 당신과의 지속적인 대화, 위대한 대화로 변화되었습니다.
가끔씩 수용소 모퉁이에 서서 당신의 대지를 밟으며 당신의 하늘을 향해 시선을 둘 때,
불현듯얼굴 위로 눈물이, 깊은 정감과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에티가 삶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발견하고 함양했던 감사의 정신은 일종의 마음의 습관이다.
감사라는 마음의 습관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지만, 잘 살고 잘 죽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익숙함은 냉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만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우리로 하여금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조장한다.
그래서 너무 자주 우리는 우리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들과 체험들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
감사의 덕을 길러 가면서 우리는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들에 대해 집중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감사에 길들여짐은 삶과 창조 세계가 보상이 아닌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줌으로써 진정한 의미외 겸손을 배우게도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의 삶은 감사의 마음으로 더욱 풍요로워진다.
감사의 덕을 길러 가면서, 우리의 죽음 역시 풍요러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감사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가장 어두운 순간들, 곧 삶의 마지막 순간들에서조차,
지난 세월 자신이 누렸던 햇살의 따뜻함이며
어린이들의 웃음이며 갓 구운 빵 냄새의 축복을 소중히 간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사의 기억들을 안고 죽는 사람은 행복하게 삶을 마감한다.
사고하는 것은 감사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대거는 일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고를 촉구하는 우리 시대에, 무엇보다 우리의 사고를 촉구하는 것(현상)은
우리가 여전히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그의 말은 불합리하게 들린다.
당연히 우리는 사고하고 있지 않은가?
사고하지 않고서 달리 어떻게 로켓을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리고,
병을 치료하고, 부를 창출할 수 있단 말인가?
사고하지 않고서 어떻게 내가 이 책을 쓰고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하이데거의 요지를 비껴간다.
하이데거가 계산적 추론과 대비된 차원에서 언급한 진정한 사고는
사고의 주체가 지배하려 들거나 통제하려는 동기를 배제한 채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 가치를 인식하는 일종의 수용 행위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그것들이 실상 상당히 비범한 것들임을 깨닫게 된다.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 찬란히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낯선 이의 얼굴에 핀 미소와 어린아이의 손에서 전해지는 감촉은 경이의 대상으로 변화된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나 소나무 숲에서 울리는 바람 소리는 성스러울 만큼 존재의 깊이를 계시해 준다.
이로써 우리는 계산적 추론이라는 통상적 세계관의 표층을 뚫고 내려가 사물들의 깊은 본성을 만나게 된다.
이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이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존재의 빛나는 아름다움에 경의를 느끼고,
그 아름다움이 우리 삶에 은혜로이 현존함에 감사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진정한 사고가 필연적으로 감사를 불려일으킨다고 확신했기에,
사고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이 늘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그는 사고하는 것 (Denken) 은 감사히는 것 ( Danken)이라고 말한다.
합당하게 사고하는 것은 모두 참으로 감사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바로 에티 힐레숨이 그녀의 삶 끝자락에서 만났던 통찰이다.
훈련이자 감화로서의 감사
---- 헨리 나웬은 우리에게 감사의 훈련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는
'감사함의 훈련이란 나의 모든 존재와 소유가 사랑의 선물로,
그래서 기쁨으로 경축해야 할 선물로 주어졌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것' 이라고 믿게 되었다.
감사의 반대말은 원한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경이와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선물로써 삶을 체험한다.
반대로 원한에 차 있는 사람은 삶을 불공정한 것으로 체험하면서 자신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자신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얻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감사의 태도에 길들여지면, 우리는 삶이 은혜로운 선물이고,
우리가 아무리 어두운 상황에 맞서더라도
삶이란 선물이 지닌 아름다움과 선성이 어둠을 이겨 낼 거라고 마음에 새기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마음에 이는 원한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쪽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헨리 나웬은 이렇게 표현했다.
- 감사의 훈련은 의식적인 선택을 수반한다.
내 감정과 느낌이 여전히 상처와 원한에 묻혀 있을 때조차 나는 감사하길을 선택할 수 있다.
불평 대신에 감사를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내가 비판받을 때, 심지어 내 마음이 여전히 비통하게 반응할 때조차 나는 감사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나의 내면의 눈이 고발할 누군가를 찾거나 추하다고 부를 무언가를 찾고 있을 떄조차,
나는 선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여전히 내 마음 안에서 원한에 가득 찬 말이 울려 나오고 미움으로 찡그린 얼굴이 보일 때조차,
나는 용서하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는 쪽을, 내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
헨리 나웬이 권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것은 적어도 처음에는 우리편에서의 엄청난 노력을 분명 요구한다.
하지만 다른 모든 덕이 그러하듯 감사의 덕도 일정한 훈련의 기간이 지나면 하나의 습관으로 다져지고,
처음에는 짐스러웠던 것이 어느덧 제2의 본성이자 기쁨으로 변화된다.
감사는 보상의 기쁨이 뒤따르기에 다른 덕들에 비해 함양하기 쉬운 덕이다.
베스테르보르크
에티 힐레숨이 영혼의 전망을 발견하면서 해방을 얻는 데에는 잔인한 역설이 뒤따른다.
그녀가 감사에 대한 일깨움을 얻었을 즈음,
나치 정부는 네덜란드계 유다인들의 인권을 꾸준히 박탈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네덜란드를 점령하자마자 유다인들에게 차별 등록을 부가했고,
다윗의 별이라는 노란색 표적을 가슴에 달고 다니라는 의무령을 내렸다.
더욱이 언론은 말할 나위도 없이 벽과 담에는 으례 반셈족 구호가 나붙었다.
상황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었다.
강제 이송과 노역 수용에 대한 소문이 돌자 네덜란드 유다인들은 공포에 떨었다.
생애의 최후 몇 달 동안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한 에티의 감사 표현은
그녀의 일기와 편지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1942년 6월,
그녀의 첫 번째 체류 중에
그녀는 수용소 체험에도 불구하고 삶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이전의 확신이 시들지 않았음에
놀라워하며 감사의 표현을 적었다.
또한 무사히 암스테르담에 돌아와서는 이렇게 적었다.
“이전에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인 책들과 시집들과 꽃들에 둘러싸인 내 삶을 사랑했다.
그런데 어느덧 추궁과 탄압을 받는 사람들로 꽉 찬 막사들 사이에서 나는 삶에 대한 나의 사랑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재확인은 그녀에게 너무도 중요했기에, 어느 순간 그녀는
“나를 평화로운 책상에서 끌어내어
이 시대의 근심과 고통 한가운데에 있게 해 주셨음”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에티가 자기 주변의 고통을 경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공포 한가운데서도 삶의 깊은 선성을 의식했을 따름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무서워 떠는 수감자들의 얼굴들을 바라보는 중에도 에티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다.
가시 돋친 철조망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그녀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다.
“저 너머 온통 잿빛 하늘을 가르며 나는 갈매기들이 보인다.
그들처럼 내 안의 사고들은 자유롭게 날고 있다.”
감사와 죽을 운명
우리 대부분은 감사의 덕을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정상적인 수명을 누린다.
에티 힐레숨은 삼십 년을 살았다.
에티의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모아 그 안에서 하느님 현존에 주의 깊게 머물 때,
삶의 아름다운 선성과 동료 인간들의 고결함으로 개방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더 나아가 그것은 우리가 감사를 마음의 습관으로 길러 나감으로써
우리 자신의 죽음(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일러 준다.
일전에 에티는 '진정 중요한 모든 것'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 그분 존재의 작은 일부를 우리 자신 안에,
더 나아가 다른 이들 안에 지켜 나가려고 힘쓰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한 인간 소명을 존중하는 한 가지 길은 같은 사고를 함양함으로써 깊은 감사로 나아가는 것이다.
삶이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마져 이어지는 감사의 마음은 삶의 쓰라린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그동안 누렸던 삶의 선물에 깊은 감사를드리며 그 선물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게 한다. (p163)
- 에티 힐레숨.
※ 이 글은 <아름답게 사는 기술>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케리 월터스 - 아름답게 사는 기술
역자 - 김성웅
생활성서사 - 201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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