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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배워야 한다.

by 탄천사랑 2022. 7. 25.

·「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 대화 (나이듦에 대하여)

 

 

우암 * 선생님에게 유머는 산호이고 진주이지요.  귀하다귀한 선생님 품격의 일부입니다.
인생에서 유머의 기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금아 * 유머는 인생을 향상시키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지요.
유머는 위트처럼 날카롭지 않고 풍자처럼 잔인하지 않아서 따스한 웃음을 짓게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긴장, 초조, 냉혹함 등으로 불안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머가 있다면 인생은 따뜻해집니다.
유머를 가진 사람은 너그럽지만 유머가 없는 사람은 빡빡하고요.
유머가 풍부한 작품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웃을 수 있는 동시에 '센스 오브 유머'를 터득할 수 있어요.
좀더 밝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암 * 그렇군요, 선생님. 제가 생각하는 유머의 걸작은 사형수가 집행자에게 한 말입니다.
"나의 목에 손대지 마세요. 나는 간지럼을 많이 타기 때문에 목에 손을 대면 웃음이 나와서요."

또 하나를 들자면, 신부님이 사형수에게
"당신은 오늘 저녁 주님과 만찬을 같이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신부님 먼저 거시죠. 나는 지금 단식중입니다."라고 대꾸했다는 일화입니다.  대단한 유머 아닙니까?

금아 *  정말 멋진 유머군요. 내가 아는 유머의 걸작은 이런 거예요.
어느 양반집 종의 아들아이가 엽전 하나를 삼켜서 아주 야단법석이 났어요.
그때 어떤 사람이 그 집 앞을 지나다가 그 광경을 보고 뭐라 그러는고 하니
'예, 너의 대감님은 몇 만 냥을 먹어도 끄덕없는데 엽전 한 닢 먹었다고 큰일 나겠니' 했대요.

이게 대단한 풍자거든요. 아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 인간미도 엿보이고요.
유머란 단지 웃음거리가 아니라 좀더 차원 높은 경지의 것입니다.

우암 *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정다운 식탁에는 현명한 사람보다는 재미있는 사람을,
 잠자리에서는 훌륭한 여인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을,
 토론할 때는 다소 정리하지 않더라도 유능한 사람을----,"

저는 친구나 우정을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진 사이'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요한 선생님이 어느 글에 저를 당신의 친구라고 쓰신 일이 있는데, 
송구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지요.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친구라는 사람은 많지만,  떨어지면 그립고 꿈에도 보이는 그런 친구는 얼마 없어,
 영혼의 교감이 있는 사이가 참다운 친구로,  연령과는 관계가 없지."

금아 *  친구는 자신의 일부분이에요.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은 나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늙어가면서 친구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날 때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어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은 대개 글을 좋아하고 문장이 좋은 그런 친구들인데 일반적으로 가난했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좋은 글이란 가난 속에서 나오거든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남보다 더 물질적 향락을 누리며 산 사람들은 고생하면서 산 사람들의 내면을 잘 알 수가 없어요.

우암 * 남들이 저에게 재산이 얼마냐고 물을 때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저의 재산은 친구입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동서고금의 책, 책 속의 인물들,
 그리고 변변치 않지만 나만의 내면 세계, 이것이 나의 전 재산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하나 둘 사라져갑니다.
그리운 마음 억제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즈음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로부터 '아직 젊으시네요!'하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 말은 벌써 이미 젊지는 않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오스카 와일드는
- 노년의 비극은 그가 늙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고 했는데
노년이 청년의 흉내를 내려는 것을 노추라고 할런지요.

금아 * 늙으면 아무리 똑똑하던 사람도허수아비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나쁜것만은 아니죠.
사람이 오래 산다는 건 과거의 좋은 기억과 인연을 많이 가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런 것들을 우리 머릿속에 다 저장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되살아나거든요.

나이가 든다는 건 젊은 날의 방황과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는 의미이지요. 
인생을 관조하고 지난 날을 회상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고요. 
늙음이란 물론 젊음만은 못하겠지만, 
잘 늙는 경지에 이르면 노년도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어느 순간 죽음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겠지요.

우암 * 선생님, 사람의 생애를 판단할 때는 역시 그분의 최후가 어떠했는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이라는 경주의 결승점은 역시 죽음,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도산 정신의 핵심은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도산은 또한 용기를 중히 여겼습니다.
죽음이 닫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죠.
가장 용감한 자는 때로 불운할 때가 있고, 그러기에 승리 못지 않은 영광스러운 패배도 있습니다.
도산은 일제의 권력 앞에 목슴을 잃었지만 그분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영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생님! 대체로 우리 한국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사생관(死生觀)이 약한 것은 아닐런지요.
혹시 유교 성리학의 영향이라고 하면 저의 천학(淺學)탓인가요.
공자는 죽음을 말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 하는 말은 선하다는 이야기는 하셨지요.

금아 * 아마 그럴 거예요. 
우리 민족이 사생관이 약한 건 아무래도 유교를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일 거예요.
유교에서는 모든 걸 순리로 따지지요. 
지천명이란 것도 그렇고 자연에 순응한다. 복종한다 그런 생각도 다 순리를 따른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잘 못하는 것 아닐까요.

우암 * 키케로는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했는데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철학의 종착지가 아닐까 합니다. 
현대 과학은, 유전자는 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체의 생명은 죽어 없어져도 유전자는 자손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참다운 용기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조상이 되고 싶군요.

금아 * 만년의 아인슈타인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지요.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죽음을 배워야 하겠지요

우암 * 선생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피곤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금아 * 저에게도 참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저로서는 <샘터>와도 그렇고, 우암과도 크고도 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나눈 정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p65)

 

 

 

이 글은 <대화>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  대화
샘터 - 200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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