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 - 「베드로가 쓴 많은 이야기」
수의(壽衣)는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때 죽은 자에게 입히는 옷을 말합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은 값 비싼 수의를 죽기전에 장만하기도 하고 또 죽은 다음에도 비싼 수의를 입고 떠납니다.
그러나 돌이켜 깊이 생각하면 수의는 죄수가 입는 수의(囚衣)라고도 생각합니다.
삶을 통해서 많은 죄를 짓고 살다가 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죽어서 입는 옷을 마땅히 죄수가 입어야하는 수의(囚衣)와 같은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가는 이에게 푸짐한 대접은 못해 준다 하더라도
옷 한 벌쯤 값비싼 것으로 입혀 보내야 되지 않느냐고 이유를 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온갖 추한 짓을 다 하고 많은 죄를 범한 사람이
수의만 좋은 것을 걸치고 간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반겨 줄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값 싼 옷을 입고 떠나는 것이 속죄를 의미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몇 년전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아버님에게 입히는 수의를 보고
나는 내가 죽였을 때 어떤 종류의 수의를 입고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다.
결국 생각한 끝에 제의(祭衣)를 입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입고 갈 수의로서의 제의는 성체분배 때 입었던 옷을 깨끗히 빨아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남은 생애를 보다 조용하고 뜨거운 불꽃으로 나의 신앙심을 불태울 것입니다.
하얀 윗옷에 검은 아래옷인 제의를 바쳐 입고 갈 수 있는 이 특혜(特惠)를 허락해 주실 것을 주님에게 바랍니다.
주님으로부터 이 허락을 받기위해
보다 성실하게 주님에게로 접근해 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생애를 보내려고 합니다.
제의를 입고 성체분배를 할 때는 거룩해 집니다.
이 거룩함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간만은 주님의 힘에 의해 가능해짐을 우리(성체분배자)는 아닙니다.
무척 엄숙하고 경건해지는 시간입니다.
내가 죽어서 내가 입을 수의가 제의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에 평정을 가져다 줄 수가 없습니다.
제의를 입고 돌아갈 수 있는 기회만 허락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주님, 이 죄수가 성스러운 제의를 입고 주님의 허락없이 가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허락해 주신다면 마지막 떠나는 길을 제의를 입고 떠나는 기쁨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심을 빌어 봅니다. (p40)
※ 이 글은 <베드로가 쓴 많은 이야기>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입니다.
최헌 - 베드로가 쓴 많은 이야기
가톨릭 출판사 - 2000. 0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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