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다이제스트 - 2022 /특별판」
엄마는 46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골목 한 줄로 한 동네가 가족처럼 지냈는데 하나둘씩 떠나갔다.
넓은 옛집들은 아파트로, 빌라로, 때론 병원 건물로 바뀌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동네 아주머니들과 식사도 하고 계절마다 여행도 다녔다.
얼마 전 전화를 드렸더니 엄마의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었다.
"안 아프다. 괜찮다." 두어 번 그러시더니
"지영아, 사실은 말벗이 갔어."
엄마에게 말벗이라니...,
네 딸에 손주에 이모에 동창에 벗이 그렇게 많은데, 말벗이라니...,
'말벗'이라는 엄마의 말에
오랫동안 반쪽으로 살아온 엄마의 깊은 외로움이 한꺼번에 전해져왔다.
"옛날에 순아네 집에 세 들어 살던 아줌마 기억나지?
자식들도 공부 다 시키고 잘 키웠어.
근데 남편이 아프거든,
그래서 4년 전부터 우리 집에 오고 있었어.
한 달에 한 번,
같이 반찬도 만들어 먹고 우리 집 청소도 해주고,
한 달 동안 못한 얘기도 나누고...,
그런데 어제 갑자기 쓰러져서 돌아가셨어.
아줌마가 여기 오는 거 그동안 비밀로 했어. 아줌마 자존심 상할까봐...,
가끔 그릇도 싸주고 옷도 싸주고 그랬는데,
그동안 입던 것만 줘서 새 바지 하나 사다 놨었거든.
다음 주면 오는 날인데, 너무 미안해.
어젯밤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영정사진을 보니까 내 잠바를 입고 있잖아...,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아줌마 사진 밑에 편지랑 꽃이랑 두고 왔어."
엄마는 잠깐잠깐 말을 끊으면서 아줌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후 나는 말벗에 대해, 부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제는 후배가 메일을 보내왔다.
긴 메일에 이렇게 끝말을 남기고 있었다.
'어서 와 말벗이나 돼주구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짜 벗이 되고 있을까?
때론 꽃잎처럼 때론 양토(陽土)처럼 명랑하고 순한 말벗이 되고 싶다.
외로웠던 긴긴 시간,
엄마에게 따뜻한 한 사람으로 오랜 시간 말벗이 되어주신 아주머니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p27)
말꼬리.
초등학교 1. 2학년 때 맨 앞줄에 앉아 친구들과 말 한마디 않다가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줘 친구들과 말문을 트게 된 은혜를 잊지 못하는 김지영은
오랫동안 깊은 속 얘기를 나누던 엄마가 청력을 잃어 문자로만 얘기하게 돼 안타깝다.
클래식만 음악인 줄 알다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TV 음악경연 프로그램의 가요 노랫말이 마음에 읽혔다.
올해 은퇴한 남편과 함께 시장도 가고 스크린골프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감사하다.
글 - 김지영
가톨릭 다이제스트 2022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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