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학교법인 - 제 199호」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 칼럼 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呂不韋)의
육험론(六驗論)을 주제로 한 칼럼입니다. 육험론은 사람에게 여섯 가지 체험을 하게 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
쓸 만한 사람을 가려낸다는 주장입니다.
첫째, 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서 얼마나 빠져드는가를 보고,
둘째,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서 얼마나 자제하는가를 보며,
셋째, 그 사람을 괴롭게 하고서 얼마나 참아 내는지를 보고,
넷째, 그 사람을 두렵게 해 놓고서 얼마나 나타내지 않나 보며,
다섯째, 그 사람을 슬프게 해 놓고서 얼마나 삭이는지를 보고,
여섯째, 그 사람을 성나게 해 놓고서 얼마나 개의치 않는지를 보는 것이다.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일이 생겼다고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얼굴을 찌푸리고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상처 입었다고
펄펄 뛰는 사람, 또 줏대 없이 여기저기 휩쓸려서 불평하거나 남의 말을 즐겨 하는 사람은 쓸 만하다고 하기 어렵습
니다.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마음을 다치고 날카롭게 반응하여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온몸에 가시가 송송 돋친 고슴도치와 같다고 한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의 말
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사람이란 양은 냄비 물 끓듯 얍삽하지 말고 돌 냄비 물 끓듯 묵중(黙重), 곧 말이 적고 몸가짐
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입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듬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열심히 수양해야 겨우 가능하다고 할까요?
사람이 좋게 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사람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듬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열심히 수양해
야 겨우 가능하다고 할까요? 사람이 좋게 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사람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성모 마리아(루카 1, 28)에게서 변화된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즉각 반응하기보다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루카 2, 19. 51).
우리 역시 하느님 은총에 힘입으면 성모 마리아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바로 반응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인내하면서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선
내 입장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타인의 언행이 거슬리더라도 즉각 반발하기보다는 어쩌면 그 자신의 상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이해하려
고 노력하면서 견딜 수 있습니다. 대개 상처 입은 사람이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혹시 모를 내면의 상처를
헤아려 봐도 미움이 가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물론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모두 언젠가는 죽어서 사라질
가련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의 은총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바로 그 은총의 도움으로 세월과 함께 인격이 높아지고 성품이
온유해지면 좋겠습니다. 2024년은 우리 모두 즐겁고 기쁘게 살되, 가마솥같이 묵중하고, 바위처럼 든든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글 -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출처 - 가톨릭 학교법인 - 제 199호 http://www.catholicfoun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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