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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명상의글(종교.묵상.좋은글.

떠나가는 시간과 웃으며 작별하는 법

by 탄천사랑 2024. 1. 7.

·「샘터 - 2023. 12」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무여 스님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보리선원의 주지이자 사찰 여행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다. 스님에게 가장 효율적인 수행법은 사람들과의 다정한 소통. 속세와 연을 이어가며 스님이 깨달은 기쁨이 충만한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여 스님

벽에 걸린 그림 속 연꽃이 마치 사람으로 환생해 눈앞에 앉아있는 듯한 감흥이 일었다.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연잎처럼 청초했고, 입에서 피어나는 언어는 은은한 꽃향기를 풍겼다. 그 청정한 표정에 물들지 않을 재간이 없어 그녀를 따라 웃음 짓다가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당신의 얼굴이 곧 내 얼굴이요, 내 얼굴이 곧 당신의 얼굴이겠군요.’ 마주 앉은 이가 나의 거울임을 이렇게 몸소 배웠다. 

무여 스님(42)은 많은 사람과 웃음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고자 작년 11월, 경기도 고양에 포교원 ‘보리선원’을 창설했다. 사찰이라 하면 깊은 산속 웅장한 목조 건물이 연상되지만 보리선원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누구나 쉽게 드나들도록 연립주택 건물 1층에 자리한 위치부터 친근한데 안으로 들어서면 더 정겹다. 보리수 그림 앞에 봉안된 불상이 가장 먼저 손님을 반기고 안쪽에 자리한 주방에서는 향긋한 차향이 풍겨나온다. 법당보다 가정집에 가까운 분위기의 보리선원에서는 그리하여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전통 사찰의 경건한 분위기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서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누구나 와서 카페처럼 커피도 마시고 기도도 하고 원하면 저와 담소도 나눌 수 있도록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문을 활짝 열어놓죠. 저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요. 따뜻한 음식은 기본이고, 제가 얻은 지혜나 깨달음까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혼자 간직할 때보다 여러 사람과 나눌 때 훨씬 기쁘거든요.” 

무여 스님이 자신이 가진 것을 이롭게 쓰려는 공심(公心)으로 마련한 도량은 선원 말고도 하나 더 있다. 2018년부터 5년 동안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스님이 국내 사찰의 아름다움을 많은 이와 함께 느끼고자 개설한 채널로 현재까지 120여 곳의 절이 소개됐고 5만 명 넘는 구독자가 스님의 여행길에 동행 중이다. 

시청자가 산사의 멋을 충분히 느끼도록 경내를 산책하며 건축적 특징과 유래를 상세히 설명해주는가 하면 돌담에 피어난 들꽃 하나, 지붕에 쌓인 눈송이 하나까지 절에 아름답게 깃든 것이라면 무엇이든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그중 태백산 정암사의 눈 덮인 마당을 거닐며 서산대사의 선시를 소개해주는 장면을 몇 번이나 되감기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시오.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시어를 곱씹으며 눈길을 걷는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그간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행한 나의 행실로 마음의 눈이 쏠렸다. 그러자 혼곤했던 일상사들은 저만치 물러나고 안정감이 잔잔하게 밀려들었다. 

“제가 사찰을 다니며 느끼는 감정을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특히 사찰을 엄숙한 곳으로만 여기거나 거동이 불편해 절에 다니기 힘든 이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지요? 영상을 보는 이들이 한국 사찰을 사랑하기를 바라며 촬영 전에 공부를 많이 해요. 인터넷에서 다방면으로 자료를 찾아보고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도 꼼꼼히 읽어 소개 멘트를 작성한 다음 여행에 나서죠.” 

본래 승려는 속세와 단절하고 웅숭깊은 종교의 세계를 묵묵히 순례하는 수행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무여 스님은 누구보다 활발히 세상과 소통하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스님에게도 혼자 면벽하며 고행의 길을 걷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했던 먼 과거지만 그때 얻은 깨달음이 지금껏 스님을 타인의 곁에 앉힌다. 

“내가 나에 대해 모두 안다고 여겼다가도 다른 이와 만나면 저의 새로운 장단점이 보였어요. 진정한 수행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더라고요. 수행은 자기를 면밀히 살핀다는 의미거든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알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소중해져요. 그렇기에 사는 게 곧 수행이죠.” 

자신을 알아차림. 이 지난한 과업을 행하기 위해 스님은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 예불을 드리고 참선의 시간을 갖는다. 바다를 좋아하는 스님에겐 참선이 파도의 움직임을 읽는 일과 같다. 자신의 내면이야말로 어느 바다보다 깊고 심오한 세계일 스님은 파도가 잔잔해져야 바닷속이 보이듯, 정처 없이 일렁이는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어느새 시름은 가뭇없이 스러지고 기분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오직 자신과 대면하는 성찰의 시간은 그 옛날 10대 소녀의 마음에도 깊은 평화를 가져다줘 스님은 길상사의 시민 선방을 다니다 열아홉에 출가했다. 그 뒤 3년간의 행자 생활과 운문승가대학을 거쳐 7년이 지난 뒤, 그토록 원하던 참선을 마음껏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쩐지 행복하지가 않았다. 

“막상 세 달 동안 매일 열 시간씩 좌선하고 있으려니 괴로웠어요. ‘한 시간이 왜 이리 길지? 허리가 아픈데 병원에 가봐야 하나?’ 같은 온갖 번뇌가 생겼죠. 내 자신과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없어요. 돌이켜보면 그 고행의 시간이 저를 단단하게 키운 것 같아요. 고난과 행복은 둘이 아니에요. 고(苦)가 커질수록 복(福)도 커지죠. 지금은 저를 돌아보는 데 정진하는 기쁨을 알게 됐어요.” 

부족함을 찾는 날카로운 눈과 잘못을 꾸짖는 목소리를 모두 자신에게 써서일까. 내면에서 정화되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스님의 눈빛과 미소는 맑고 온화하기만 하다. 자신의 표정과 언어마저 다른 사람을 위해 유익하게 쓰는 스님은 항상 깨어 있고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마주 앉은 이에게 따뜻한 말을 베풀고 있는가, 상대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가, 감사함으로 이 음식을 공양 받는가. 스님의 기민한 자각들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가. 

“시간을 잘 흘려보내야 삶에 충실해질 수 있어요. 지금 내가 보는 것, 맛보는 것, 느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면 매 순간이 즐거워져요. 연말이 되면 한 해가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부터 들지요? 그러나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많았다는 의미예요. 세세히 기억나지 않아도 그 느낌이 증거죠. 그러니 허무해하지 말고 그저 스스로를 점검하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됩니다. 그럼 다가올 1년은 또 새로운 지혜를 안겨줄 거예요. 시간이 흘러야 보이는 행복이 있으니 나이 듦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몰라요.”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오직 백발성성한 노인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기대고 싶은 사람이 되어있는 것, 그뿐인 무여 스님. 그와의 대화가 오가는 탁자 위는 보리선원의 공양주가 준비해준 간식들로 가득 채워졌다. 따뜻한 율무차, 곱게 자른 사과와 단감, 잘 익은 고구마, 딸기잼 바른 토스트를 푸짐히 내어주더니 배달 온 택배기사의 손에도 기어코 음료수 하나를 쥐어주는 모습이 맑은 햇살처럼 주변을 밝혔다. 하나라도 더 주려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공양주의 얼굴에도, 허기를 달래는 손님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스님의 얼굴에도 부처의 인자한 미소가 훈훈히 깃들었다.

 

 

 

 

에디터 - 한재원

사진 - 이권호 

출처 - 샘터 - 20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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