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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명상의글(종교.묵상.좋은글.

떠날 때와 죽을 때

by 탄천사랑 2024. 2. 23.

·「김동길 - 떠날 때와 죽을 때」



나잇살이나 먹고 보니 
나이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를 문제 삼지 않아야 할 일들이 가끔 생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고등고시에 패스한 빛나는 경력을 자랑스럽게 흔들며 
지방 행정의 일선인 군수 자리를 하나 따가지고 나오는 수가 있다.
일제 때에는 쯔메에리라는 대학생복을 입은 채 군수로 부임한 엄청난 수재들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면이나 군에서 평생 서기 노릇을 하느라 
머리가 허옇게 된 늙은 사람들이 그 젊은 아이 군수 앞에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해야 했으니, 
나이를 문제 삼아서야 어디 하루인들 출근할 수 있겠는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제 5 공화국이 출범한 그때부터 나이를 문제 삼지 말아야겠다고 몇 번씩 다짐을 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레이건 같은 노인이 대통령 하는 나라로 이민을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레이건 말이 이왕 나왔으니 한 마디 안 할 수 없는데, 
그 이는 대통령 노릇을 더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혹은 도중에 괴한의 흉탄을 맞고 쓰러져 국민의 눈물 속에 장례식을 치른 일은 몇 번 있었지만, 
부고에, '노환으로 인하여 별세'라고 사망 원인이 밝혀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 오래오래 그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앉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재출마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사실 그 보도를 믿고 싶지도 않았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설마 그 노인이?'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다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뿐 아니라 재선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하니,
나이를 문제 삼지 말자고 큰소리치기는 좀 어렵게 된 느낌이다.
나는 그래서 이번에 공화당이 누구를 부통령으로 내세우게 되겠는가 궁금하기 짝이 없고,
만일 부시 부통령이 눌러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가 백악관의 '엉뚱한'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레이건의 재선이 틀림없다고들 하지만 
그가 그 나이에 감기에라도 한번 걸리고 그 감기가 불행하게도 폐렴으로라도 번지게 되면 
미국 정치의 판도는 잠깐 동안에 휙 변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민주당 후보에게는 서광이 비치는 것이다.
먼데일이건 하트이건, 
뛰어가나 걸어가나 여하튼 백악관의 문전에까지 가기는 과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이를 문제 삼지 말자니! 
나이를 문제 안 삼으면 문제 삼을 만한 것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여성의 봄은 40부터'라는 허망한 격려사를 가끔 듣지만, 그것은 격려의 말, 
위로의 말일 뿐, 남녀 간에 40이면 봄날은 이미 간 것이다.
젊음이 문제가 되는 여성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눈 언저리의 죄스러운 잔주름, 
30의 중턱만 넘어서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싱싱하던 어깨가 약간 늘어지고 탄력을 잃게 되면, 이젠 정녕 봄은 아니다.
사우나와 쑥탕, 헬스 클럽이나 골프장을 아무리 누벼도 
성형수술과 짙은 화장법으로 아무리 닦달질을 해도 나이는 못 속이는 법,

공자께서,
나이 열 다섯에는 배우는 일에 뜻을 두고,
서른이 되면 땅을 딛고 확고히 서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느리라고 가르쳤는데,
아마도 그 기간 15년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화려한 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40의 언덕에서도 나는 줄곧 흔들리기만 했고,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한 채 50을 맞았다.
그래도 한 50 되니까 인생이 무엇인지, 역사가 무엇인지, 
사람은 누구이고 하느님은 누구이며 그 사람과 그 하느님의 관계는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듯하다. 그래서 붓을 들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틈바구니에서
지금까지 이해 못 할 것이 시간이었다. 막막하기만 한 것이 공간이었다.
그 시간과 그 공간을 난들 어쩔 도리가 있었으랴. 
하도 걷잡을 수 없고 종잡을 수 없어 한숨만 푹푹 내쉬는 처지였다.

타협하지 않고는 못 산다.
시간도 그만큼 잡았고, 공간도 그만큼 차지했으면 이젠 열심히 살다 가야지, 
아직도 삶의 이 구석 저 구석을 팠다 메꾸었다 하면서 시간은 무엇이고 공간은 무엇인가 
스스로 묻는 이 유치한 버릇은 버려야 한다,
아무래도 모를 것인데, 제한된 땅에서 주어진 시간에,
그나마 최선을 다하여 정작 하게 살면서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는 것 밖에 이제는 다른 도리가 없다.

숙제를 다 풀지 못하고 가는 게 인생이다. 
숙제가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다 모르고 가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톨스토이도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는 가난하고 무식한 농부들을 부러워하였다. 
그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러시아의 귀족으로 태어나 공부를 많이 하고, 
아는 게 너무 많은 사람이 된 것을 자기의 불행의 중요한 원인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배우지 못한 농부라면 밭에서 씨나 뿌리고 김이나 매고 추수나 하면서 
정신적 고통 없이 한평생을 편하게 살다 갈 수도 있었는데, 
배운 사람이라 책임도 크고 고통도 크다고 그는 더욱 괴로워하였다.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시간은 무엇이고 공간은 무엇입니까?'하고 또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인생에 있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되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인간은 시간을 놓고 영원을 생각하고 공간을 두고 무한을 이야기하게 되었겠는가?
영원이라고 하건 무한이라고 부르건 결국은 잘 모르겠다는 말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시간을 다루고,
옳게 헤아릴 길도 없는 공간을 따지는 사람의 삶이 반드시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엄청난 것을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이 때로는 정도를 벗어나 불행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영원이라는 말이나 무한이라는 표현이나, 
또 이 둘을 한데 묶어 절대라고 불러보는 것이나,
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는 인간의 자기 위안의 수단이고,
하느님조차도 약간 미소를 지으시면서 다소는 가상히 여기시리라 믿는다.
어느 틈에 그가 지으신 호모 사피엔스가 
그만한 자리에까지 기어 올라왔으니 가상히 여기지 않으실 수도 없을 것이다.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절대의 나라를 향해 먼 길을 떠나는 우리의 인생을 
사주 砂州를 넘는 일에 비유하면서 이런 노래를 읊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고
파도는 나를 멀리 싣고 가도
바라건대 내 주의 얼굴 대하리
사주를 넘어서면 주님 만나리.

이 노래는 그에게 있어서는 백조의 노래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백조라는 우아한 새는 죽기 전에 꼭 한가락 노래를 부르고 떠나는 묘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죽음으로 향하는 자세를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고'라고 읊은 것은 정말 멋있는 착상이다.
그것이 또한 그 시인의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토마스 칼라일의 말처럼, 오늘이라는 이 하루가 
'영원에서 태어나 밤이면 다시 영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구태여 시간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지 모르나,
역사라는 것을 공부하다 보니 시간에 대해 무관심할 수가 없게 되었나 보다.

시간이라는 것도 '점'이고 공간이라는 것도 '점'이라고 풀이하자면,
시간과 공간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일 것 같다.
시간이란 시계가 '똑'하고 찍고 '딱'하고 찍는 '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 '점'이 시작되었다 끝나면서까지에 그어진 '선'이 우리 각자의 삶의 길이인 것이다.

태초에 언제쯤 옛날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모르나 
또 오메가가 미래의 어느 시점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우리 각자의 '선'이 끝난 뒤에도 시간의 '선'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니 
떠날 때 당황 말고 의젓하게 떠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방에 높은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을 내 땅이라 한다.
사방에 두터운 벽을 세우고 이것을 내 방이라 한다.
공간이란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밖에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내 방에 앉아서 시계 소리를 들으며, 
어두움을 헤치고 해가 뜨고 어두움 속으로 해가 넘어가는 광경을 지켜본다.
그러다 한 세상이 끝나는 것이다.
너도 나도 그 누구도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는 것이다.



차마 못 떠나는 사람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서 벌어졌던 매우 감격스러운 사건을 상기해 보자.
16년 동안이나 캐나다의 정계를 주름잡았던 
트뤼도 수상이 16년의 권좌를 미련 없이 버리고 일개 야인으로 돌아갔다.

그때, 현 집권당의 전당대회에서 트뤼도는 고별 연설을 하였고,
그 연설은 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그 자리에 운집했던 8천여 청중은 
대부분 눈물을 글썽였으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여인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마침내 연설이 끝나자 
모두 기립하여 우렁찬 박수를 보냈으니 진실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정치인의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저렇게 멋있게 끝날 수도 있는 것인가!

트뤼도의 강연 내용도 물론 의미심장하였고 멋이 있었다.
그는 아직도 캐나다가 젊은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미래가 밝은 조국의 역사를 바라보며 그는 지도자의 자리를 물러난다고 하였다.

그는 이어 캐나다는 아름다운 나라이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캐나다는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꿈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그토록 꿈이 많은 캐나다를 이끌어 나갈 꿈이 있는 새 지도자를 뽑기 위해 모였으니 
그가 선출되는 대로 그 새로운 지도자의 뒤를 따르는 
자신의 모습을 여기 모인 사람들이 장차 지켜보게 될 것이라는 뜻깊은 한마디를 첨언하였다.

25분 동안 계속된 그의 고별 선언은 그의 인생관과 정치철학을 함축성 있게 표현한 셈이다.
그는 캐나다를 사랑한 정치인이었다.
퀴베크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하버드, 소르본 등 
세계의 명문 대학을 다니며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로 있다가 정계에 투신한 인물로 기억이 된다.
 
퀴베크는 원래 프랑스 말이 주로 통용되고 전통과 풍습이 압도적으로 프랑스풍인 지역인데,
어느 해엔가 드골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다가 
퀴베크 독립의 가능성을 시사하여 이것이 대단한 돌풍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퀴베크 분리주의는 어제 오늘 생긴 주의는 아니고 매우 뿌리가 싶은 것이지만,
외부로부터의 그런 자극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 셈이었다.

그러나 트뤼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퀴베크의 명문 출신인 그가 정계의 중앙에 16년 동안이나 도사리고 앉았었기 때문에 
분리주의자들의 소란이 잠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퀴베크의 독립을 반대한 것은 (***물론 독립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가 퀴베크를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캐나다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오랫동안 노총각으로 있다가 늘그막에 젊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으나 끝내 파경에 이르렀으니 
가정적으로는 그리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캐나다를 사랑했고 캐나다의 정치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뒤를 이어 수상의 자리에 오르는 지도자가 누구이건 (물론 누가 될지 다 알고 있었지만)
그를 받들고 그의 뒤를 따르리라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피력한 것이다,
그것이 캐나다의 민주주의가 사는 길이요, 
트뤼도라는 그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한 인간이 사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극의 주인공들
일단 권자에 앉으면 좀처럼 물러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스탈린은 어느 해인가 전당대회에서 '우주의 태양'이라는 칭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가 원했으니까 주었고 주니까 받았겠지만, 그런 엄청난 칭호를 감히 받을 수 있을까.
그는 감투를 쓴 채 앉아서 죽었다.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정한 투표에 의해 지도자를 선출할 생각을 않고 ,
종신 내지는 세습을 꿈꾸게 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르긴 하지만 레닌이라는 사람도 
오래 살았으면 아마 그렇게밖에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티토도, 모택동 毛澤東도 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티토는 위성국가의 굴레를 벗어나 그래도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다고 했으니 그만이라도 했지, 
그 나라도 큰일날 뻔 했다.
'우주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니 
충성파의 두목이었던 후루시초프가 제일 먼저 반기를 들고 나와 여지없이 스탈린을 격하시켜 버렸다.

모택동이 죽고 얼마 안 되어 그의 아내 강청은 재판의 자리에 서야 했고, 
마침내 사형 언도까지 받았던 것 같은데, 이럭저럭 목숨만은 건지게 되는 모양이다.
모택동이 미리 그럴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되게 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무덤 속에서야 아무리 몸을 뒤채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제시 잭슨이 일전에 쿠바 엘 가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는 장면을 TV로 보고 크게 실망하였다.
저 친구가 끈질긴 투쟁 끝에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권좌에 올라 앉았을 때 세계의 젊은이들은 박수를 보내지 않았는가!
1960년대 초만 해도 그는 확실히 민중의 영웅이었다.
오늘, 그 얼굴의 주름살도 주름살이지만, 
한때 검고 활기찼던 그 수염이 온통 잿빛으로 뒤범벅되어,
그 누추하고 초라한 모습이 흡사 늙은 늑대 한 마리를 연산케 하였다.
저 사람은 왜 저 꼴이 되었나!

프랑코도 이디 아민도 소모사도 다 불행하게 끝이 났다.
떠날 때 떠날 줄을 몰라서 죄다 비극의 주인공으로,
혹은 악한 중의 악한으로 역사에 남는 불명예를 씻어버릴 수가 없게 되었다.

남의 나라 지도자들만 들추어내서 무엇하랴.
이승만도 박정희도 다 그래서 최후가 비참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대통령이 정치파동 같은 것은 아예 일지 못하게 하고 
사사오입이라도 해서 3선 개헌을 관철하려는 한심한 친구들을 다 잡아 가두고,
국민을 향해 '나는 간다'라고 한마디 남기고 이화장으로나 
혹은 충청도의 산골짜기로라도 들어가 여생을 보낼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일 박 대통령이 3선 개헌이라는 비극의 전철을 밟지 않았더라면,
유신이라는 변칙적인 제2의 쿠데타를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가장으로 
알뜰한 부인과 똑똑한 자녀를 거느리고 단란한 가정에서 여생을 즐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착각은 불행의 시초
떠날 때 떠날 줄 알고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알아야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남의 집을 방문하여 필요 이상으로 오래 눌러앉아 떠날 줄 모르면 
집 주인에게 실례가 될 뿐 아니라 때로는 큰 불편을 주기도 한다.
집 주인이 '어서 가라'라고는 차마 못하고 웃음 아닌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을 
자기에 대한 환영인 줄 착각하고 떠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나 싫어하는 사람 없다"라고 믿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그 착각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되겠지만,
그의 행복이 많은 사람의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믿고 사는 일종의 피해 망상증보다는 낫다 하겠지만,
자기 도취도 어지간히 불행한 심리상태인 것 만은 확실하다.
언젠가는 그 마취에서 깨어나야할 터이니, 깨어나면 얼마나 삶이 허망하게 느껴질까!
그런데 과대 망상증의 최대 비극은 깨어나지도 못한다는 데 있다.
이 병은 고치지 못한다. 불치의 병이요 죽어야만 낫는 무서운 병이다.

대통령에게는 임기가 있고 기타 공직자들에게는 정년이 있다.
본인들을 위해서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나라의 법이 있고 정관이 있고 계약이 있다.
이런 법적인 근거를 무시하거나 
자기 중심으로 마음대로 뜯어고치기 시작하면 그 나라나 그 기관은 결딴이 나게 마련이다.

미국 사람들이 오늘날 저만큼 잘 살게 된 것은 
다분히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덕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가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를 끝낼 무렵 
미합중국이라는 신생 공화국은 아직 분열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알렉산더 해밀턴이 대표하는 연방주의자들과 
이에 맞서는 토머스 제퍼슨의 반연방 주의자들 사이의 불화와 반목 때문에 
사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세 번째 재출마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그에게 
"각하, 각하께서 물러나시면 미국은 망합니다"라고 누군가가 간곡하게 번의할 것을 종용했었다.
그때 만일 워싱턴이 
"그렇지. 아무래도 내가 없이는 어려울 거야!" 하였다면,
그리고 3선 준비하라고 측근에게 지시하였더라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오늘  과연 무슨 꼴이 되었을까?
그때에는 3선 출마를 금지하는 아무런 헌법상의 규제도 없었으니,
그가 원했다면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위싱턴은 단호히 "노!" 하면서 세 번째 출마를 간청하는 그들에게
"이 사람아, 역사에는 없어선 안 될 사람이란 없는 법이야"라고 한마디 던지고 표연히 물러나 
마운트 버논 시골 농장으로 은퇴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아, 얼마나 멋이 있는 삶인가!



붙잡아도 뿌리칠 수 있는 사람
사람이 어떤 자리에 앉았다 훨훨 털고 일어서지 못하는 까닭은 
그 자리에 대한 욕심과 미련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욕심은 한 평범한 인간에게 적당한 자극을 주어 
필요한 활동을 힘차게 전개케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지나친 욕심은 사람에게 때아닌 죽음을 강요하는 독약이나 다름이 없다.

한자리하는 능력도 대단한 능력이지만, 
적당한 때 그 자리에서 물러날 줄 아는 그 능력은 더 대단한 것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그 자리에 앉아 큰 공을 세웠어도 뒤끝이 안 좋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떠나는 용기, 물러서는 지혜를 갖추지 못했는지!

남들이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데 떠나고,
남들이 물러서면 안 된다고 말리는데 물러서서 결국 망했다는 사람을 일찍이 본 일이 있는가?
그 반대의 경우는 허다하지만,
미련 없이 물러앉았기 때문에 봉변당한 사람은 역사에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흐르는 시간, 그어진 공간..... 그것이 알고 보면 다 덧없는 것인데,
점에 지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좁은 무대 위에다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드골이 물러나 일개 야인이 되었다고 하여 프랑스가 망하지 않았으며,
트뤼도가 물러나 일개 야인이 되었다고 하여 캐나다가 망할 리 없는 것이다.
아니 그들의 그런 멋진 결단, 
멋진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조국은 더욱 빛나고 역사는 그들을 위인으로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또한 죽어야 할 때 죽을 줄을 알아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정몽주를 우러러 보는가?
이성계의 뜻을 받들어 그의 아들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서 백 년까지 누리고 저,'하는 
시 한 수를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에게 띄었을 때,
이에 답하여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읊으며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었다.

바로 거기에 정몽주의 인간으로서의 멋이 있었던 것이다.
선죽교 위에서 철퇴를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었으니 어찌 보면 비명에 간 불행한 사람 같기도 하지만,
그 비명이 그에게 있어서는 곧 천명이었던 것이다.

꼭 살아야 할 때 죽는 것도 죄악이겠지만,
꼭 죽어야 할 때 사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은 죽음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오래오래 살라는 말이 아니라,
죽어야 할 때 용감하게 죽으라는 말로 풀이할 때 더욱 값 있는 교훈이다.
  
떠나야 할 때 떠나고 죽어야 할 떄 죽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아 한이 없으련만!

- 1984. 8.




※ 이 글은 <떠날 때와 죽을 때>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동길 - 떠날 때와 죽을 때
자유문학사 - 1995. 12. 01.

[t-24.02.23.  20220203-1548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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