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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부부로 산다는 것

2 -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기쁨 / 011 명절증후군을 함께 앓는 것

by 탄천사랑 2007. 6. 17.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기쁨
결혼은 투쟁의 연속입니다. 끊임없는 권력 투쟁이 벌어집니다.
자신의 입지를 보전하며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한 강도 높은 투쟁입니다.
양쪽 모두가 정당한 사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투쟁의 끝은 한쪽의 양보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바보 같아서 양보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양보하는 것입니다.


011

명절증후군을 함께 앓는 것
episode 1
'수고했다는 말씀 한 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그는 평소에는 어머니에게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꼭 이맘때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외아들에 종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외아들에 대한 사랑 표현이 지나칠 때가 있었다.
아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들딸 구별 없이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그녀로서는 시댁의 집안 분위기가 생소하기만 했을 것이다.  
명절 때면 아내의 불만이 폭발했다.
몸이 약한 그녀는 시댁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친정에 가는 시간까지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일에 매달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장을 보고 음식 장만과 제사상 차리기 준비에 꼬박 매달렸다.
친척들은 좀 많은가.
3명이 넘는 사람이 일거에 들이닥치는데,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단 두 사람.

어머니의 몇 마디면, 아내가 그렇게 서운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수고한다. 애쓴다, 좀 쉬어라.'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말씀은 커녕 아들 걱정만 하는 것이었다.

"너, 요즘 잘 못 먹는 모양이구나. 왜 그렇게 얼굴이 거칠어졌니?
 얘야, 네 남편 보약 좀 해 먹여라.
 그렇게 건강한 애가 결혼을 하더니 왜 이 모양이 된 거냐?"

그는 결혼 후 몸무게가 늘었고 혈색도 좋아졌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눈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그런 말씀을 듣고 아내의 심기가 좋을 턱이 없었다.
명절맞이 준비를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 못 챙긴다는 타박까지 듣는 셈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눈짓으로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그는 솔직히, 아내를 돕고 싶었다.
어머니가 주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장 보는 데 따라가서 무거운 짐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원천 봉쇄당했다.
설령 따라간다고 해도, 불편한 어머니의 심기는 아내에게 정조준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도와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거들게 되면 오히려 너한테 불똥이 튄다니까, 작년에도 그랬잖아."

그는 명절 준비를 하러 갈 때마다 이렇게 설득했지만, 
이미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녀는 듣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어머니와 아내의 틈에 낀 그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허둥대기만 했다.

어머니는 아내가 부침개를 부치면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다'면서 그의 입에 넣어주시기 바빴다.
물론 며느리에게는 먹어보라는 말씀 한 마디 없었다.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어머니 역시 시집살이를 하실 때, 그토록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고 하시면서,
 왜 며느리에게는 그대로 대물림을 하시는 것일까. 
 당신이 그토록 싫었다면 며느리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는 어머니가 챙겨주는 음식을 먹으며 생각했다.

아내가 신경 쓰여 먹은 것이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명절 때마다 체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명절 행사가 모두 끝났다.
집을 나서 차에 오르는 순간, 그녀의 불만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일이 산더미 같은데 좀 도와주면 안 돼?
 부엌일 거들어주면 팔불출이라도 되는 거야?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하시면,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지.
 그런 노력은 안 하고 누워서 빈둥거리기만 하고 말이야.
 나 힘든 것 뻔히 보면서 그러고 싶어?"

그는 운전을 하면서 묵묵부답, 듣고만 있었다.
처음에는 아내의 지적이 맞는 말이고, 미안하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계속 똑같은 얘기를 듣다 보니 짜증이 났다.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렸다.

"나라고 속이 편한 줄 알아? 내 속 썩어서 명절 때마다 체하는 걸 보면서도 몰라?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그렇게 몇 마디 퍼붓고 보니 그녀가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다투는 사이, 차는 이미 처가에 도착해 있었다.

눈물을 닦고 들어간 그녀는, 시댁에서 힘들었다는 얘기나 불만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어울리면서 까르르 웃는 것이, 언제 그런 고된 노동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친정어머니에게 말씀 드려봐야 걱정만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기나긴 명절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도로에서 2차 부부 싸움이 다시 시작된다.
그러고는 화해를 하고, 내년 명절 때는 어떻게든 잘해 보자고 약속을 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그는 아내의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러준 뒤 침대에 누우면서 생각한다.
'명절 증후군, 그거 여자들만 앓는 건 줄 아나? 남자들도 괴롭다고......
 속이 썩는다고, 말을 못할 따름이지.'



episode 2
어느덧 다가온 추석. 
그는 ‘명절이 사라졌으면’하고 바랄 때가 있다.
처가에 가기 싫어서다. 
아내는 1남 3녀 중 둘째, 그에게는 손윗 동서 한 분과 손아래 동서 한 명이 있다.
둘 다 그에 비해 형편이 낫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나 부모가 대준 밑천으로 사업을 한다.

그러니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아등바등 생활하는 그와는 씀씀이가 다르다.
윗동서와 아랫동서는 처가에 올 때마다 갈비 세트에 값비싼 양주 같은 선물을 양손에 들고 온다.
반면 수입이 뻔한 그로서는 고작해야 과일 한 박스.

그래서인지 장모님과 처남 댁의 사위 대접이 눈에 띌 정도로 표가 난다.
평상시 그가 갈 때면, 있던 밥과 반찬에 숟가락 하나 보탤 정도로 차려주고,
두 동서가 올 때면 갈비찜에 생선회까지 떠오며 요란을 떤다.

괜한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내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그런 친정 올케에게 많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자매 간인데도 서로 경쟁심이 대단했다.
처형과 처제는 새로 산 러닝머신 성능이 어떠니, 
바꾼 가구가 어디 수입품이라느니 하면서 열변을 토하지만
그런 것을 만져보지도 못한 아내는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다. 

‘여자 팔자는 남자 만나기 나름이라는데…’

그는 곁에서 잠든 아내를 보며 생각한다.
더 나은 남자를 만났더라면 지금쯤 화려하게 꽃 피었을지도 모르는 불쌍한 여자.

"요즘 월급으로 어디 생활이 되니? 사업을 한번 해봐. 좋은 아이템 물어서 말이야."
"맞아요, 형님. 요즘은 사오정이 아니라, 삼팔선까지 내려왔다는데 그냥 사업이나 하세요."

작년 명절에 만난 동서들은 그에게 이렇게 권했다.
하지만 사업, 그거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두 동서들처럼 밑천이나 연줄 대줄 사람도 없거니와, 한다고 다 잘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소박한 행복에 감사하며 살겠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명절 때면 송두리째 흔들리기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위들이 전부 모이는 명절만큼은 처가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친정에 가는 아내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올해 추석도 뻔했다.
잘나가는 동서들 보면서 혼자 명절증후군을 앓는 수밖에.


진정으로 명절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 뿐입니다.
명절은 누구에게나 딜레마입니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명절은 매년 치러야 하는 홍역입니다.
피해 갈 수 없다면,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며 지혜롭게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명절이라는 고난을 즐겨보세요.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해 보세요.
오해로 인한 원망을 줄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3.12.31.  20210606-142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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