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006
그의 작은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episode 1
"선배님, 오늘 저렁 둘이서만 점심 같이 하시죠"
"왜?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아뇨, 그냥요."
후배가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를 가장 따르는 후배였다.
적극적이고 판단이 빠른 후배는, 고지식한 그의 성격과는 확연히 달랐다.
"선배님은 꼭 7, 80년대 사람 같아요.
뭐 바른생활이라고 도 할 수 있겠지만요."
후배는 간혹 그런 말을 했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보니까 후배의 표정이 어두웠다.
"왜 그러는데? 말 못할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후배가 몇 번을 망설인 뒤에 입을 열었다.
"선배님, 혹시 선배님 인사 점수 알고 계세요?"
그는 비로소 인사 철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11년 간 근무한 직장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남에게 욕을 먹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업무 역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인사팀 사람들하고 통화하다가 알게 됐는데요.
선배님 근무 점수는 좋지만 자기 관리 점수가 낮다고 하네요.
올해도 승진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높대요."
작년에도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그의 승진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러려니 하고 잊은 채 일만 했다.
"괜찮아, 우리 회사는 구조조정 계획이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뭐.
걱정해 줘서 고맙다."
그라나 후배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요,
선배님이 올해 진급을 못하시면 같은 팀에 있는 저도 영향을 받거든요.
제가 내년 진급에서 밀릴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는 점심을 함께 먹자던 후배의 의도를 뒤늦게 간파했다.
누가 선배인지 후배인지 모를 만큼 따끔한 충고가 이어졌다.
선배가 인사에 그렇게 관심이 없으니 승진이 빠를 리가 있겠느냐.
선배님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후배들 생각도 해줘야 한다.....
그는 남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일하면 승진이란 것이 당연히 따라오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월은 지났다.
소처럼 일하고 죽어서 고기까지 주는 바보짓일랑 그만두고,
애완동물처럼 꾸미고 재주를 넘어야만 사랑받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삼팔선, 사오정 같은 것은 남의 일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후배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처한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후배의 지적처럼, 자신으로 인해 후배들이 승진을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episode 2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몇몇 선후배들과 축구 경기를 한다.
축구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오느라 늦기 마련인데,'
그날은 한낮에 돌아왔다.
‘에구~ 그럼 그렇지.’ 그녀는 남편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가 또 얼굴에 훈장을 달고 돌아온 것이었다.
“어휴~ 안 되겠어. 몸이 예전 같지가 않네.”
그는 후배의 심한 수비에 몸싸움을 하다가 얼굴을 다쳤다고 실토했다.
그는 운동을 하고 온 날이면 입버릇처럼 건강을 걱정했다.
헬스라도 끊어서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며 배를 만져보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 말도 없었다.
조용히 씻고 나와서는 맥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그녀는 '운동하고 와서 목이 타나보다' 생각하며 맥주와 마른안주를 준비했다.
순식간에 한잔을 비운 그가, 또 잔을 내밀었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이게 웬일?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먹고 싶어서."
그녀의 직감이 발동했다.
뭔가 있다 싶어서 계속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짐작대로였다.
그가 울적한 이유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 때문이었다.
자기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던 후배였는데 어떻게 성공했는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나타났다는 거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대형 아파트에 산다고 자랑을 하더란다.
그 모습이 자기 처지와 비교된 것이었다.
‘난 언제나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한심해지면서 기운이 쑥 빠지더라는 게 그의 실토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뭐라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엉겁결에 대답했다.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면 우리한테도 좋은 날 오겠지."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남들보다 많이 뒤쳐진 거야.
결혼도 서른 넘어서 했으니까 아이도 어리고,
하여간 전부 출발이 늦으니까 남들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지."
그녀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그래도 건강하잖아.
당신이 팔팔하니까 우리는 조금 늦어도 상관없어.
금방 좋아질 텐데 뭘 걱정해?
난 누가 뭐래도 당신을 믿어.
당신, 정말 착하고 성실하잖아.”
남편이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대답했다.
“그럴까? 우리, 잘 살 수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거야.”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맥주가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맥주는 처음이었다.
때로는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세요.
그의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일 때가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작은 어깨는 아니었을 겁니다.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위축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의 작은 어깨를 토닥여 주세요.
그의 자신감을 일깨워 주세요. 그도 한때는 패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신이 북돋워 준다면…. (p39)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6.07. 20210606-1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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