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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부부로 산다는 것

2 - 012 아이 키우며 철이 드는 것

by 탄천사랑 2007. 6. 20.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기쁨



012

아이 키우며 철이 드는 것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동사무소로 향했다.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출생신고서를 받아드는 순간, 설렘이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다.
부모 직업란 때문이었다.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쓰기가 난감했다.
그냥 자유업 또는 회사원이라고 쓰려다가 말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그냥 '무직'이라고 쓰고 나왔다.

그토록 고대하던 아이가 태어났는데, 처음으로 쓰는 아이의 서류에 거짓말을 하기는 정말 싫었다.
그는 병원으로 돌아가 신생아실의 아이를 보면서 눈물을 쏟았다.
‘네가 아빠를 잘못 만나서 인생 처음부터 이렇게 꼬이는구나. 
 출생신고서마저 실업자의 아들로 기록되다니.’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못나 보였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더 이상 아이에게 못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고.

합격의 기쁨은 그 이듬해 찾아왔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으며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보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지극정성이었다. 
그가 공부를 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밀어주겠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실제로 그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배우지 못하신 한을 왜 저에게 풀려고 하세요? 
 저는 제 방식대로 살 거라고요.” 

독서실 간다고 해놓고선 야구장에 가서 밤늦게까지 놀다 오고, 
방학이면 이런저런 핑계로 친구들과 며칠씩 놀러 다녔다. 

그렇게 아버지를 속상하게 해드렸던 그가, 
스스로 아버지가 되더니 아이를 위해 공부를 하고, 
마침내는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를 철들게 한 것은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면서 어른이 된다. 
 너희들도 아이를 낳고 나면 아빠 가시고기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거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가시고기라….’ 
가시고기 암컷은 알을 낳고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그때부터 수컷이 알을 지킨다. 
알을 먹으려는 수많은 침입자들을 물리쳐가며 굳건하게 지킨다.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서. 

마침내 알에서 새끼들이 탄생하지만 아빠 가시고기는 여전히 떠나지 않는다. 
새끼들이 자라나 밖에서 나올 때까지, 
약 보름간을 기다리며 아빠 가시고기는 만신창이가 된다. 
주둥이는 헐어버리고 몸뚱이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간다. 

마지막 새끼까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아빠는 숨을 거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헤엄쳐 다니던 새끼들은 아빠의 시신 곁으로 몰려든다.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빠의 살을 파먹기 위해서다. 

아빠는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준다. 
그게 가시고기의 운명이다. 
자라난 새끼들은 또, 자신의 새끼들을 위해 희생한다. 

‘그때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몇 천 분의 일 만큼이라도 아버지를 생각했더라면……. 

그의 아버지는 무엇이든 잘 잊는 분이셨다. 
그것은 금방 용서해 주신다는 의미였다. 
그가 공부로 속을 썩인 게 몇 년인데, 그 세월을 모두 잊으신 채 합격을 축하해 주시기만 한다. 

아버지의 생신날, 그는 모처럼 가까이서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그를 나무라시던 매서운 눈빛과 음성은 어디론가 간 곳 없었다. 
손자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허허 웃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역시 가시고기였다. 



“네 아이 키워봐라. 그러면 부모 심정 알게 될 거다.”
많은 부모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냥 넘겨듣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 아픔과 고통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아이는 신이 내린 축복입니다. 우리를 철들게 하니 말입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6.20.  20220623-1623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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