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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편집부-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영원한 미소

by 탄천사랑 2007. 4. 20.

풀잎 편집부 -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

 


불국사에 갈 때마다 석굴암을 찾게 된다.
국보 24호인 석굴암 본존상(本尊像)의 미소는 언제나 신비속에서 우러나온다.
'한국의 지혜'라고 일컬어지는 석굴암, 
그 속에 안치된 본존상의 미소는 형언할 수 없는 대자대비의 표정이다.
이 미소를 만나면 정신이 황홀해지며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아득한 평화 속에 잠기게 마련이다.

석굴암 대불은 신라 경덕왕 10년, 
재상 김대성이 이룩한 것으로 신라인의 깊은 명상과 염원이 담겨 있다.
이 예술품이 조성된 것은 당시 신라를 괴롭히던 왜구를 불력(佛力)으로 막아달라는 대원(大願)에서 였다.
대불(大佛)을 모셔 놓은 본존상 후면에는 
십일면 관음보살과 문수보살이 대불을 호위하여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동해에서 솟은 해맑은 햇살이 제일 먼저 대불의 얼굴을 비추면, 
대불은 그 햇살을 맞아들여 미소로써 바다를 주시한다.
대불이 바라보는 곳은, 영원한 공간이며 침묵의 바다이며 피안(彼岸)의 세계이다.
석굴암 본존상의 미소는 신라인의 마음 속에 피운 연꽃이라고나 할까.
영원속에 던지는 깨달음의 미소일 것이다.
그 미소가 영원의 미소가 되기까지 대자대비한 신비의 미소가 되기까진, 
얼마나 오랜 침묵 속에서 좌선해야 했을까.
그 미소는 한 사람 신라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힘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영겁의 침묵 속에서 떠오른 미소, 달관과 해탈의 미소를 어떻게 인간이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석굴암 본존물을 보면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대불의 미소다.
그 미소가 연꽃 향기로 번져와서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 신비한 미소 속에서 달무리처럼 사방으로 번져 흐르는 그리움의 여운을 듣는다.

천 년 세월이 대불에게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졌을 것이다.
동해의 파도가 쉬지 않고 밀려와서 물음표를 내밀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불은 언제나 말없음표로 침묵 속에 미소로 응답할 뿐인가.
석굴암 대존불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대불 앞에서 경배를 드리려 온 사람들은 새벽에 토암산에 올라야 했을 것이다.
새벽 안개를 뚫고 망망한 동해 한가운데서 찬란히 솟아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면서, 
대불이 어떤 표정을 지으시는가를 보았을 것이다.
새벽 어스름속에 새 빛살을 받아, 대불의 얼굴 윤곽과 표정이 드러나는 가운데,
신비를 속한 미소가 무엇을 말하려는듯 끝내 말없음표로 숨을 쉴 때, 
그만 무한의 공간속에서 시간을 벗어버린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웃는 듯 우는 듯, 
말하려는 듯 침묵 속인 듯 영원한 명상의 꽃으로 핀 대불의 표정을 보노라면,
세속의 찌든 마음의 먼지가 깨끗이 지워지고 평온과 안식이 깃든다.

이 대불의 표정을 보면서 신도들은 이 강토에 평화가 깃들 것을 굳게 믿었으며 
부처님의 불력으로 외적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신도들은 누구나 대불 앞에서 자신의 안위와 평온에 앞서 먼저 나라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했다.
모든 백성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대불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천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쌓여서 '그래, 알았다.' 미소로써 응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대불의 신비한 미소는 
신라인들이 꿈꾸던 평화와 신뢰의 웃음이며 신라인의 마음 속에 피어난 명상의 꽃인 셈이다.
대불은 천 년의 침묵 속에서 신라인들의 영원한 마음을 미소로써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은 대불 앞에서 평화와 안식을 기구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대불의 미소는 한국인의 마음 속에 피어나게 되며, 
한국의 영원한 신비로 피어있는 것이다.

불국사의 석굴암이 신라 천 년의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로 손꼽히고 았고, 
외국인들의 찬사와 경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가 갖는 특징은 규모나 섬세 유려한 장식과 조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미의 관점을 외형적 형식적 미(美)에 두기 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내재미(內在美)에 감춰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예술인에 의해서 예술품이 만들어지는 갓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아 영원토록 간직하고자하는 무욕(無慾)의 경지에서 한국의 예술이 태동되고,
영원의 무늬를 아로새긴다고 본다.
한국의 예술품은 차라리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의 마음이 합해져 완성시킨 예술이요, 
그 예술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민중들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마음속에서 영혼을 갖게 되고 점차 신비의 미소를 띠게 되었다.
석굴암 본존불의 미소야말로 한국인이 마음속에서 피워 올린, 
바로 영원의 미소이며, 
명상의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고적지를 찾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석굴암 본존물의 미소처럼, 이곳에도 분명히 마음속에 피어 올린 미소가 있지 않을까.
그 미소는 선뜻 눈에 띄지 않지만, 
어느 곳인가 보이지 않는 데에 슬쩍 숨겨 놓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깨달음의 미소를 찾아내는 것은, 어쩌면 수수께끼를 푸는 일과도 같다.

생각해 보아라.
석굴암 본존불이 영원의 미소를 띠게 될 때까지, 
동해에서 솟아오른 햇살을 몇 번이나 들였으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들어 왔던가를---.
어쩌면, 
신비란 침묵이 떠올리는 미소가 이닐까.  (p100)

글 - 정목일

※ 이 글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풀잎 편집부 -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
도서출판 풀잎  - 199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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