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공지영/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곳 북국을 여름이게 하는 8월의 태양이 광장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지만
에어콘이 들어오는 창 안쪽에서 바라보는 햇살을 엷고 투명해 보였다.
호텔 광장 너머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에
미사일처럼 생긴 오벨리스끄 탑의 뾰족함이 서늘한 느낌을 더하게 했고,
가끔 스며들듯이 호텔로 잠입하는 검은빛의 승용차들 모습도 기괴했다.
하지만 호텔 앞을 지나쳐가는 금발의 여자들과 멀리 서 있는 오벨리스끄 탑의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내가 꿈꾸던 북국의 한 도시에 와 있다는 실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났건만
아직도 호텔 밖으로는 나가보지 못한 채 그저 이 광장만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과 광장과 자동차는 도시에서 자란 내게는 낯익은 것이었고 솔직히 그것은 한밤중,
우리나라의 어느 산골 산사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고,
대숲을 흘러가는 바람소리에 문득 깨어난 새벽보다 훨씬 친근했다.
바라보기만 하는 도시는 어디나 비슷한 법일 테니까 말이다.
아침에 급하게 헌팅을 나간 남편이 벗어 놓은 파자마와 널려진 수건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
나는 지갑과 방열쇠를 챙겨들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80년 모스끄바 올림픽을 위해 지어졌다는 이 특급 호텔의 객실 전화는,
받을 수는 있지만 외부로 걸 수는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는 어둡고 길었다.
초승달 모양을 한 호텔의 한 층에는 거의 80개가 넘는 객실이 있었다.
모두들 관광객이었던 탓일까,
아니면 각자의 방에서 나처럼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을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있는 각층의 관리인 여자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보드까나 담배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여자였다.
여자의 임무는 손님들의 키를 맡아주기도 하고
그런 소소한 물건들을 파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주 업무는 밤에 이루어지는 듯했다.
어젯밤에도 남편과 마시기 위해 보드까를 구하러 나왔을 때 복도에 가득하던 러시아의 여자들이,
관리인 여자와 수입을 나누어 가지는 인터걸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은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지나가는 남자와 흥정을 하고 빈 방을 배정받아 몸을 판다고 했다.
짧은 밤에 100불, 러시아인들의 한 달 평균의 봉급과 맞먹는다는 그 액수를
남자 스텝들은 공항에서부터 긴 밤, 짧은 밤 어쩌구 하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스텝들 중 나이든 이 하나가,
키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금발의 여자와 방을 나오다가 나와 마주치기도 했었다.
워낙 점잖은 분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지만
그와 함께 방을 나서던 금발의 여자가 하도 당당하게 이 관리인 여인에게 돈을 치르고
열쇠를 반환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먼저 고개를 숙여버렸다.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가,
시시한 수작 한마디 걸지도 못하는 남자와 여자가 한 침대에서 잠자리를 같이한다...
거기에 비하면 락 까페에서 만나
하룻밤 여관으로 간다는 우리 신세대들의 연애가 차라리 인간적으로 생각되었다.
원한다면 이름을 물어볼 수도 있고
주소를 적어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잘 가라고 인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도 어디까지나 원한다면, 이겠지만.
남편이 겸연쩍을 얼굴로 그 스텝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기는 남편 역시 그 스텝에게
그 자리에서 안녕하세요, 라거나 편히 주무십시오, 인사하고 쑥스러웠으리라.
안녕하세요? 하품을 하다 말고 나와 눈이 마주친 관리인 여자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이 호텔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어느 나라 말로 인사를 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내게 미소를 보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시내로 통하는 단 한 대의 전화가 있는 곳에 줄을 섰다.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짧게 빗어 넘긴 뚱뚱한 여자가 핏대를 올리며
전화 저쪽의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분명 영어는 아니었고 프랑스 말도 아니었고 러시아어도 아닌 듯했다.
저건 어느 나라 말일까,
내가 조금이라도 귀동냥을 한 적이 있는 나라들의 말을 떠올렸지만 알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언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사람이 화를 내면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을 찡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졌다.
갑자기 여자가 전화기를 탁, 하고 놓아버렸다.
전화로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낡은 가죽 핸드백을 들고 휑하니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섬주섬 전화기 앞으로 다가가 나는 버튼을 눌렀다.
모스끄바에는 도착한 이래 내가 한 일이 있다면 그건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한때는 내 대학 친구였으나 지금은 한 시사잡지사의 모스끄바 통신원으로 있는 C에게로였다.
그를 못 만난 지 10 년,
시사잡지사에 연락해서 그의 모스끄바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사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편이었다.
그를 통하면 뒤늦게 모스끄바에 유학 와 있는 B의 소설 취재를 위해 이곳으로 떠날 거라던
소설가 k와는 그래, 우리 모스끄바에서 모두 모여보자라고 약속까지 해둔 터였다.
우리가 함께 대학을 다녔던 신촌이나,
인사동의 길거리에서와는 다른 만남을 갖고 싶었던 것이 내 희망이었다.
감독인 남편 이하 짜여진 일정과 정해진 역할들이 분명한 스텝들과는 달리,
나는 이곳 촬영장에 따라와 거의 고통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스웨터의 앞단추처럼 쭈르르 했다.
나 혼자 실밥처럼 그 곁에 붙어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자신있게 따라온 것은
사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C와 B와 그리고 K.
게다가 살아서는 아마도 밟지 못할 거라고 상상했던 땅
몰래 읽은 혁명사와 레닌 전기 속에서 살아 숨쉬던 땅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예전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스뗀까라찐,
스뗀까라찐 노래를 부르며 모스끄바의 밤거리를 걷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 나는 C와 통화하지 못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지난 이틀처럼 또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딸깍, 하고 그쪽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저, 저는 서울에서 온 G라고 하는데요.
아아, / 하는 목소리가 그쪽에서 흘러나왔다.
네 알죠. 오셨군요. 저 모르시겠어요? 부인이에요.
부인이라고 해놓고 그 단어가 조금 쑥스러웠던지 여자가 웃었다.
물론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대학 삼학년 때였던가,
C가 고향동생이라고 소개하며 우리에게 선을 보였던 그 여자.
진도에서 상경한,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던 그 아가씨.
알죠. 잘 지내세요? 통화가 힘들었어요. C는요?
연구소에 있죠. 이따가 저녁에나 올 텐데요. / 연구소라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가 그저 통신원 일로 모스끄바에 체류하는 걸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그래요? 소설가 K는?
어떻게 하죠.
오늘 아침에 레닌그라드로 떠났어요.
어제 그렇잖아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같이 모였으면 좋겠다구요.
C의 부인은 K가 레닌그라드로 떠난 것이 자기 탓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깝게 말했다.
그럼 유학 온 B의 연락처는 알 수 있을까요?
B씨는 서울 갔어요
일주일 전에요.
방학이잖아요.
그렇군요, 방학이군요. / 수화기를 들고 있던 손에 맥이 탁 풀렸다.
이따가 애기아빠 들어오시면 호텔로 연락을 하라고 할게요.
방 호수를 알려주시겠어요?
나는 방 호수를 그녀에게 알려주고 나서
내가 꼭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이야기하려다 말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로비 라운지로 가서 앉았다.
손님이 없어서였을까, 저희들끼리 잡담을 하고 있던 웨이트리스들 중의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남자스텝들이 우리 배우들보다 예쁘다고 한 그 웨이트리스였다.
나는 우리 남자 스텝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아가씨의 종아리를 훔쳐보았다.
명주실처럼 길고 고운 금발을 뒤로 묶어 하나로 총총히 땋아내리고
서양 영화에 나오는 귀족의 하녀들처럼 프릴이 많이 달린 앞치마를 두른
여자의 종아리는 마론 인형처럼 가늘고 곧았다.
커피, / 하고 내가 발음하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커피,
커피, / 나는 잔을 들고 마시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아, 카페! / 여자는 그제서야 비로소 나를 보고 웃었다.
커피를 마시게 된 것만으로 인도를 하며 나도 웃었다.
목도 좀 말랐으므로
나는 다시 컵으로 벌컥벌컥 마시는 시늉을 해 보이며 워터, 워터 라고 발음했다.
그녀는 가스? / 하고 되물었다.
가스? /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여자가 가스, 가스 / 하고 다시 말했다.
그래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짓자 여자는 잠시 나를 경멸스레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왜 갑자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어서 나도 잠시 당황했지만
아마도 가스란 물을 가리키는 러시아말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나는 오우케이, 하고 말했다.
여자가 이제야 의사소통이 되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잠시 후에 웨이트리스는 간장종지같이 작은 잔에 담긴 커피와 물을 날라왔다.
물잔을 먼저 한 모금 마시는데 역한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졌다.
대학 4학년 땐가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한 모금도 삼키지 못했던 오색약수터의 물맛 같은 것이었다.
뚱딴지 같이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가스라는 것은 영어였던 것이다.
여자는 내게 탄산수를 원하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아까 여자가 짓던 경멸의 표정은 가스라는 영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이 노란 여자에 대한 멸시였으리라.
하는 수 없이 나는 물 마시기를 포기하고 커피잔을 들었다.
서울에서는 엷은 블랙의 커피를 즐겨 마시던 나였지만 이건 참을 수 없이 썼다.
나는 다시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밀크, 밀크 / 나는 간장 종지같은 커피잔에 액체 프림을 붓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여자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밀크, 밀, 크 / 여자는 이번에는 대꾸도 없이 그 날씬한 허리를 휘익 돌려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다는 생각에 담배를 무는데 여자가 기다란 잔에 담긴 우유를 날라왔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 눈길은 아랑곳도 않고
여자는 내 탁자에 놓인 청구서에 뭐라고 휘갈겨 쓰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청구서를 들어보니 알 수 없는 러시아말로
세 가지 항목이 적혀 있고 토탈 10만 3천 5백 루블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웨이트리스와의 신경전은 포기하기로 하고
여자가 날라온 우유를 커피잔에 조금 부었다.
그러고는 한 모금 마시려는데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었다.
그것은 우유가 아니라 발효가 많이 된 거의 치즈맛에 가까운 요쿠르트였던 것이다.
나는 웨이트리스를 부르려다 말고 간장종지 같은 커피잔에 든 커피를,
겉모양은 우유 같으나 맛은 치즈 같은 밀크잔에 부었다.
미적지근하고 이상한 맛이 목구멍으로 쿨럭쿨럭 넘어갔다.
모두들 갈라져 헌팅을 떠나고 기재를 점검하러 나간 호텔 방에서 텅 빈 광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이상한 맛의 커피도 추억으로 남겨두지 뭐, 나는 나를 달랬다.
이런 기억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이런 오해와 이상스러운 기분도,
먼 훗날 친구와 시골방에 누워 밤을 새울 때는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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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쯤인가 C하고 B하고 떠났던 여행이 떠올랐다.
그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돈 몇 푼을 들고 달랑 짐을 싸서 무조건 남쪽을 향해 떠났었다.
바다고 산으로 떠났던 피서객들이 돌아와 휴가 동안 책상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서랍을 정돈할 무렵,
아마도 더운 바람이 낮을, 차가운 바람이 밤을 점령하던,
여름이 가고 있던 자리에 바람만 가득 밀려오던 그런 무렵이었을 거다.
그때 우리 나이 스물세 살, 광주행 밤차에 몸을 싣고부터 바로 우리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그 열차는 왜 그렇게 휑뎅그렁할까.
천장에 붙은 형광등은, 작은 종이컵에 담긴 소주 속에서 한없이 떨며 깜빡이고 있었다.
떠나는 우리는 모두 셋이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B와
그리고 공식적인 수배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날마다 집으로 찾아오는 형사를 피하고 싶은 C,
그리고 유학을 갈 계획도 없고 형사도 찾아오지 않는 방에서 혼자 처박혀 있던,
스물세 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생이 길게만 느껴졌고, 이제껏 너무나 긴 23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한 겉늙어버린 나였다.
맹숭한 소주에 취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새벽 광주역에 내렸다.
C가 몇 군데 아는 곳에 전화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지인들은 단 한 명도 연락되지 않았다.
우선은 해장국집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우리는 망월동을 떠났다.
1985년 망월동의 그 초라한 묘지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버스도 없고 포장도 안 된, 표지판 하나 없는 그 길,
아직도 계절은 여름이라는 듯 뜨거운 태양은 시련처럼, 지친 우리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돈을 벌어서 인도로 가자는 의견을 낸 것은
아마도 그 지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초라한 공동묘지에 잠든 외로운 영혼들과 그 이전 우리가 보았던 광주역의 어둠과,
떨리던 밤열차의 형광등 빛과
스물 몇 살에 벌써 지쳐 버린 우리들의 삶들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뜨겁게, 뜨겁게 달구어가는 태양을 다시 머리에 이고,
먼지 풀썩이는 길을 터벅이며 돌아나와 우리는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아무 버스나 타버렸다.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우리는 또 소주를 사들었고, 취하지도 않는 소주를 마시다가 그대로 잠에 떨어져버렸다.
깨어보니 눈앞에 이미 바다가 다가와 있었다.
바다 같지 않은 바다.
섬으로 막막히 막혀버린 바다.
바람이 직선으로 불어오지 못하는 바다.
하지만 파도가 이는 푸른 색깔의, 그러므로 바다.
그때 C가,
술에서 다 깨어나지 못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오줌을 갈기면서 소리쳤었다.
우리는 이제 인도로 간다!
그때 우리는 슬펐던가,
그때 우리는 쓸쓸했던가,
아니던가, 그때 우리는 그래도 젊었던가,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 점령 당했다.
C는 신문사에,
유학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던 B는 대학원에,
나는 생각하지 않았던 길로 달려가고 있는 내 청춘에 대한 멀미에.
물론,
점령당한 영혼들은 인도로 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가끔씩,
그 다음에는 드문드문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쩌다가 한 번씩 서로 연락을 취하던 우리들은
같은 하늘 아래서 비슷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소식을 그저 풍문으로만 듣고 있었다.
(단편소설집)
공지영 -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창작과비평 - 1999. 07. 01.
'내가만난글 > 단편글(수필.단편.공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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