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1995/겨울호 단편 ) -공지영 /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여기서 뭐 하세요?
눈을 들어보니 신문기자 김이었다.
김은 짙은 청록색의 선글라스를 벗으며 내 앞자리에 앉았다.
공항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김은
나와 같은 학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의 낯선 스텝들 중에 내가 유일하게 말을 붙이는 상대였다.
김의 곁에는 낡은 갈색의 양복을 입은 얼굴이 검고 키가 작은 사내가 서 있었다.
짙은 쌍꺼풀의 눈이 선량하고 맑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콜라를 시켰다.
아까 내게 커피와 탄산수와 밀크를 가져다 주던 웨이트리스는
코카콜라라는 말을 금세 알아듣고 친절한 미소를 보였다.
이쪽은 빅또르 박씨예요.
여기 교포 3세이시고 지금은 고려일보 기자이시죠.
김이 따라온 사내를 내게 소개했다.
나는 마치 충청도에서 갓 올라온 듯한 느낌의 사내에게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이쪽은 감독님 사모님이시고 한국의 유명한 여배우세요.
김이 사내에게 나를 소개하며 익살을 부렸다.
낯선 나라의 낯선 호텔에선 누구나 쉽게 친근해지는 법일까.
나는 김의 익살이 비위에 거슬리지 않았다.
빅또르 박이라는 사내는,
배우든 뭐든 별로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회색빛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콜라를 마시고 나서 김은 취재수첩을 꺼냈다.
--
우린 누가 뭐래도 사회주의자다.
지금 러시아 불만 많다.
우리 할아버지 사회주의 우리 아버지 사회주의 나,
사회주의 교육받았고 우리 애들 국민학교까지 사회주의 공부했다.
아무리 체제 바뀌어도 할 수 없다.
옐찐 우리, 옐찐 불만 많다.
강도가 생기고 도둑도 생기고 물가는 오르고 살기가 점점 힘이 든다.
우리 고려인들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
삼풍 무너졌을 때 우리 너무 창피했다.
내 친구들 만날 때마다 무너지는 이야기했다.
창피한 거 말도 마. 나는 한국이 잘되고 한국 사람들 많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하고 많이 많이 왔다 갔다.
--
빅또르 박은 짧은 한국말로,
마치 내가 아까 말이 안 통하던 러시아 웨이트리스에게 그러했듯이 손짓을 많이 섞어가며 말했다.
말을 하면서 점점 더 흥분이 되는지 그는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아니 잠깐, / 김이 수첩에 그의 말을 받아 적다 말고 빅또르 박의 말을 끊었다.
아니,
옐찐은 당신들이 투표해서 뽑은 대통령이잖아요?
그래도 나는 싫다
당신들 노태우, 또 김영삼 투표해서 뽑아놓고 맨날 데모하고 그러지?
우리도 그렇게 옐찐 싫다.
김과 나는 빅또르 박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빅또르 박은 점점 더 큰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북 단천에서 태어난 할아버지의 연해주 이주
그리고 지금 모스끄바의 고려신문사에서 일하는 빅또르 박,
그리고 그의 고려인 아이들.
그런데 이거 신문에 언제 나는 거지? / 얼굴이 벌그레해져서 설명을 하다 말고 빅또르 박이 물었다.
지면이 나는 대로 곧이죠.
신문에 나면 보내드릴게요.
김은 빅또르 박에게 수첩을 내밀어 그의 모스끄바 주소를 적게 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이야기가 끝난 듯해서 우리는 자리에게 일어섰다.
내가 아까 마신 세 가지의 음료수와 두 잔의 코카콜라 값까지 해서 이십만 루블의 돈을 내는 동안
빅또르 박이 김에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깨 너머로 들려왔다.
진짜,
저 한국 여배우 너무 못생겼다.
러시아 여자들 정말 예쁜데.
김 선상님도 러시아여자 잡수시고 가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오늘 밤에.
빅또르 박이 김의 농담을 정말로 받아들인 듯 심각하게 말하자 김이,
등을 돌리고 있는 나를 의식한 듯 뭐라고 만류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우,
김 선상님 목사 같은 사람.
어젯밤에도 한사코 싫다 해서 난 그냥 인사인 줄만 알았는데.
빅또르 박은 다른 한국 사람과는 달리
김이 러시아 여자를 "잡수실" 의향이 없는 것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저렇게 눈 맑은 빅또르 박이라는 사람이
"뭉쳐야만 하는" 동족을 만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나는 딱해 보였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저런 인식을 심어놓고 갔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 빅또르 박의 등을 떠밀듯이 보내 놓고 김은 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김 기자 목사 같은 사람?
내가 빅또르 박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김이 들켰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목사 같잖아요.
나는 한국의 야바위꾼 목사,
빅또르 박은 서양말 흉내내는 얼치기 목사.
그거 말 되네요. / 김은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감색 남방 윗도리에 집어넣으며 웃었다.
그런데 영화담당기자가 빅또르 박 인터뷰는 왜 해요? / 김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더니 그냥 웃기만 했다.
더구나 김 기자가 일하는 그 삼류 스포츠지에 아직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고려인 3세가 가당키나 해요?
지면이 정말 나기는 나는 건가요?
가당하지 않죠.
지면이 날 때가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 김은 뜻밖에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역할분담을 하기 위해 누군가가 돈을 댈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빵잽이 딱지 없는 내가 돈 많이 주는 데로 취직을 했었는데 이제 뭐 이게 평생 직업이 되어버렸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김은 긴 복도를 걸으며 뜻밖에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은 왜 묻지도 않은 말을 할까, 나는 그저 농담을 했을 뿐인데.
우리 둘의 발소리가 낡은 카펫 위에서 사각사각 울렸다.
나로 말하면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기자들은 내게 충고했다.
이제 좀 다른 이야기들을 쓰시지요.
한 평론가는
진지한 얼굴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옳다 해도 낡은 것은 버리고 옳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을 택하시지요, 말했다.
그러지요,
옳더라도 낡은 것을 버리고 옳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 아니오,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는 말을 수정했다.
맘에 든다구요?
이게 맘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였던가요?
하지만 나는 이제는 소리지르지 않고 소근소근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그래서 장편 하나를 끝낸 뒤 1년 반 동안 나는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위에 쌓인 먼지를 닦으며 나는 생각했었다.
찾아야 한다고,
옳든 아니든,
맘에 들든 들지 않든,
새로운.
그런데 모스끄바까지 와서 나는 김의 말투를 이해하고 있었다.
침묵이, 긴 말 없이 농담을 하듯 건들건들하는 대화의,
멈칫멈칫하는 어떤 사이가 너무 많은 의미들로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서 김과 헤어지고 싶었다.
방문 앞에서 내가 멈추어 섰다.
따라서 멈추어 서는 김의 얼굴 위로 C의 얼굴이 겹쳐졌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인도로 가자고 말하던 스물 몇 살의 그의 얼굴.
혼자 방에 들어가 있으려면 심심하겠어요?
서둘러 그와 헤어지려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김이 다시 농담투의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총각방에 혼자 놀러갈 수도 없잖아요?
총각? / 김이 되물었다.
집 나오면 다 총각이잖아요.
남자들.
나는 손을 흔들고 그와 헤어졌다.
방으로 들어서자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혹시 C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들고 있던 열쇠를 침대에 팽개치고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언어의 목소리로 어떤 남자가 말하고 있었다.
뭐라구요?
왓?
여보세요?
당황하다가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갑자기 가슴이 불안스러운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커튼을 젖히고 한 손으로 지그시 내 왼쪽 심장께를 누른 채 서 있었다.
9시가 넘어야 지는 모스끄바의 태양이 오벨리스끄 탑 위쪽에서 아직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 심장도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벨이 울렸다.
나는 이번에는 벨이 세 번을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그 언어를 어떻게 형용해야 옳을까,
영어도 러시아어도 불어도 독어도 아닌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모음과 자음들.
남자의 목소리는 그러나 장난 같지는 않았고
내가 아까처럼 전화를 끊어버릴까봐 몹시 겁이 난다는 듯 빠르고 다급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 내가 물었다.
뿌베 부 빠흘르 프랑쎄?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그랬다.
이번엔 프랑스어였다.
이번엔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건 프랑스 말이구나.
하지만 그것이 프랑스 말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과 내가 그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당신은 프랑스 말을 할 수 있냐는 그의 질문을 대충 알아들었지만,
고등학교 3 년간 그리고 대학에서 2 년간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지만 나는 겨우,
아주 서툴게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혀를 돌돌 꼬부리는 프랑스어는 프랑스어 수업시간 이외에는 발음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 켄트 스피크 프렌치.
데어 이스 노 퍼슨 유아 서칭 포.
내가 천천히 힘주어 대답했지만 그는 이번에는 더 빠른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 켄트 스피크, 아이 켄트 스피크
나는 내가 더듬거리며라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외국어인 영어를 앵무새처럼 되뇌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 것은 그로부터 약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상한 나라의 말과 프랑스 말을 섞어 쓰는 그 남자 때문에
나는 어젯밤 마시다가 만 보드까를 한 잔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보드까는 목줄기를 타고 식도로 넘어가 서늘하게 내 위에 고였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있는 참이었다.
전화를 받자 이번에는 뜻밖에도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왈칵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것은 사실은 순전히 내 뜻이었지만
갑자기 남편이 나를 이 모스끄바 한복판에 버리고 가버린 듯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여기 아리랑 식당이야,
저녁 먹어야지.
스텝들 다 여기서 식사하거든, 듣고 있는 거야.
응.
이리로 와야지
모스끄바엔 택시가 없잖아.
택시?
그러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길거리에 나가서 손을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차가 선다.
대개는 자가용들이지만 때로는 경찰차일 때도 있고
때로는 앰뷸런스를 얻어 타기도 한다고 우리를 안내하는 유학생 안이 말해주었었다.
아무튼 그 차를 세워 가는 곳을 말하고 값을 흥정한 후 차를 타면 되는 것이 모스끄바였다.
하지만 나는 언어를 알지 못한다.
값이야 손가락으로 대충 이야기를 한다 해도 행선지를 말할 언어가 내게는 없는 것이다.
걱정 마,
나 혼자 호텔에서 대충 해결할게. / 나는 갑자기 차분해져서 남편에게 말했다.
모스끄바에 있다는 친구들은 못 만났어?
없어
아무도 없어
웬일이지?
남편은 딱하다는 듯 혀를 한번 차다가 겨우 그렇게 말했다.
※ 이 글은 <창작과비평>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공지영 -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창작과비평 - 1995 / 겨울호. 단편
'내가만난글 > 단편글(수필.단편.공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사이버문학 - 고독한 합창 (0) | 2007.04.28 |
---|---|
· 정채봉. 류시화-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터는 어머니입니다. (0) | 2007.04.26 |
유리 나기빈-볼프강 보르헤르트/밤에는 쥐들도 잔다. (0) | 2007.04.23 |
풀잎 편집부-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영원한 미소 (0) | 2007.04.20 |
지하련(池河蓮) - 결별 (0) | 2007.04.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