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류시화-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210404-151016]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터는 어머니입니다.
먼저 내 방을 설명드리지요.
서울 젊은이들이 파도처럼 들고나는 4호선
지하철의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오면 4층 빨간 벽돌 건물(담쟁이가 유명한)이 있습니다.
1층에 사람들이 훨훨 지나다니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는 작은 돌마당이 있는 이 건물이 샘터 집인데,
내 작은 방은 3층의 남쪽과 서쪽 2면이 유리창인 두 평 남짓한 공간입니다.
남쪽 창으로는 대학로 큰길이,
그리고 서쪽 창으로는 여든 살 정도를 넘은 은행나무들이 가지런히 서 있는 골목갈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큰길에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골목길로는 젊은이들이 강물처럼 흘러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도 이 거리를 지나가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비쁘기만 한 자동차들,
그러나 때로는 답답히 막혀 있는 거리,
젊은이들의 화사한 웃음,
출처를 알기 어려운 머리 색깔 같은 난무,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발길하며 우리의 오늘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는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개울이 하나 흐르고 있었고,
플라다너스 가로수가 세줄로 서 있어 푸른 하늘이 나무잎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숲의 거리었지요.
그리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잘 차려 입지는 않았지만 여유가 있었고
마치 어떤 넓은 품 속에 있는 듯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유한 얼굴인데도 허기져 보이고 막차를 놓친 역 광장 사람들처럼 허탈한 표정들입니다.
류시화 시인과 저는 방황의 이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오늘 우리에게의 이 끝없는 허기는 어머니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부를 향하여 뛰어온 것이 결국은 소비의 노예를 자초하였으며,
남보다 앞서고자 한 달리기에서 영혼을 빠뜨려 놓고 껍데기(몸)만 가지고 온 오늘의 이 결과이지 않습니까.
언젠가 유치원 구경을 간 적이 있습니다.
마침 선생님이 아이들더러 자기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너도나도 자동차, 텔레비전, 컴퓨터, 냉장고, 아빠 카드, 엄마 모피 코트 등을 말하는데
구석에 앉은 한 아이가 '울 엄마요'하니까 아이들 모두가 '맞아요. 울 엄마요' 하고 합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엄마보다 소중한 보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류시화 시인과 함께 바로 이 보물을 당신 가슴속에 되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엮었습니다.
<샘터>에 실렸던 어느 수병의 일기를 옮겨봅니다.
미 군함 한 척이 마닐라를 공략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이제 막 출항하려는 순간,
물 속에 웃옷을 떨어뜨린 한 수병이 있었습니다.
그 수병은 파도에 떠밀려 가는 옷을 바라보며 지휘관에게 저 옷을 건지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지휘관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수병은 누가 붙들 새도 없이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다른 수병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잠시 후 그 수병은 한 손에 웃옷을 움켜줜 채 헤엄쳐 갑판에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그 수병은 갑판에 오르자마자 군기를 어긴 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습니다.
"하찮은 옷 하나 때문에 그같이 경솔한 태도를 취하다니,
도대체 그 이유가 뭔가?"
제독은 엄중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병은 젖은 웃옷 호주머니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제독에게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실은 제 어머니의 사진이---,"
목숨과도 바꿀 만한 낡은 사진, 이 끌림이 곧 어머니의 힘입니다.
류시화 시인과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터는 어머니의 품이라고 믿습니다.
오리털 이불이니 모피니 하여도 우는 아기는 비록 고기 비린내가 나는 무명 치마일망정
어머니의 품속에서 새근새근 편안히 잠이 들지 않던가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곳에 우리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여러 선생님들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다시 돌아와서 어머니의 사랑 위에서 집을 지어야겠습니다.
그 집은 어느 집보다도 튼튼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 정채봉.
※ 이 글은 <모닥불>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정채봉. 류시화 -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샘터(샘터사) - 1998.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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