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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

홈 스위트 홈(5)

by 탄천사랑 2023. 3. 30.

 

 

 

홈 스위트 홈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23년) - 최진영 외 /문학 사상 2023. 02. 10.
나는 죽어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죽음 자체로 두기 위해 오래 바라볼수록 두려움보다 슬픔이 커졌다.
두려움은 막연했으나 슬픔은 구체적이었다.
거기 나의 희망이 있다.
슬픔을 위해서 움직일 힘이라면 아직 남아 있었다.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3차 재발한다면 화학적 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어진에게 말했다.

어진은 재발할 일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재발 확률은 70퍼센트.
내가 30퍼센트에 속할 수도 있다는 희망에는 70퍼센트만큼의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재발 가능성을 먼저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럼 또 치료하면 돼.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이제 항암은 하지 않을 거야.
그건 의사가 결정할 일이야. 새로운 약도 많이 나오고 있다 잖아
의사는 선택지를 주는 거야. 결정은 내 몫이고.
내성 생기면 다른 약 쓰면 되니까 포기하지 말자.
물론이야,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치료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말한 적 있나?

나는 어진에게 살아 본 적은 없으나 기억하는 집에 대해.
기억한다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집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주택 평면도와 입체도를 그렸다.

이 집도 그중 하나야

그림은 단순했다.
기역 자 형태의 단층 주택.
본 채는 기차의 객실처럼 침실, 거실, 주방이 나란히 이어진다.
침실과 거실 앞에 툇마루가 있고 주방 앞에는 댓돌이 있다.
주방의 오른편, 동쪽 방향에 별채가 있다.
본채와 별채 사이 라일락나무.
마당의 서쪽에는 텃밭이 있다.
담을 대신하는 사철나무와 낮은 대문.
거실 앞의 툇마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 오는 날 여기에 앉아 부추전을 만들어 먹었어.

텃밭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이 텃밭에서 부추를 가위로 잘라 와서.
어진이 물었다. 언제?
나는 대답했다. 미래의 어느 여름 날.
주방 앞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여기에 하얀 꽃이 피어날 거야.
구절초나 마거리트 같은, 내가 씨앗을 뿌린 기억은 없지만.

어진이 대답했다. 그런 꽃은 저절로 피어나기도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저절로 피어도 좋겠다.
어진이 물었다. 지붕은 무슨 색이야?
하늘색
텃밭에는 무엇을 키워?
초록색과 빨간색들.
대문은?
노란색.
좋다. 부추전 말고 또 뭐가 있어? 무언가를 먹은 기억
콩국수, 채 썬 오이랑 당근 얹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김치볶음밥, 계란 지단 얹어서.

잠시 그림을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이 집에서 죽어.
그 순간, 내 주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와 희망을 느꼈다.

그럼 나는? 어진이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나와 같이 여기서 살지.
이 집은 어디에 있어?

완치하리라는 희망보다 훨씬 단단한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제 우리가 찾아낼 거야.

 

 

※ 이 글은 <,홈 스위트 홈>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3.03.30.  20210321-145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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