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23년) - 최진영 외 /문학 사상 2023. 02. 10.
일하기에 편한 옷과 챙이 넓은 모자를 챙기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자 엄마가 서 있었다.
뭐야. 비번 알려 줬잖아.
내 집도 아니고, 남의 집에 그렇게 들어가는 건 경우가 아니지.
남의 집?
너도 앞으로 우리 집 올 때 초인종 눌러.
초인종 달았어?
물어보면서 생각했다.
백자가 없어서 초인종 달았나.
누군가 대문 앞을 서성이는 기척이 있으면 백자는 꼭 서너 번씩 짖었다.
그 소리에 엄마는 재미 삼아 사람 말을 붙이곤 했다.
오지 마. 저리 꺼져. 반가워. 누구야. 어서 오게.
백자는 엄마와 십오 년 가까이 실았고 서너 달을 앓다가 죽었다.
백자가 죽고 몇 주가 지난 뒤에야 엄마는 나에게 '백자가 떠났다'라고 어렵게 소식을 알렸다.
엄마는 백자를 무명으로 감싸서 마당의 감나무 근처에 깊이 묻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죽음 이후에 남을 나의 시체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시체가 마치 나인 것처럼 생각하며 장례를 치르겠지.
시체는 정말 나일까? 내가 나의 시체까지 처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백자는 흙이 될까?
그 자리에 무언가가 피어날 수도 있을까?
당신의 땅에 백자를 묻은 엄마의 마음을 나는 이해했다.
그러니 엄마 또한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해하면서도 이해하려 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을 나 또한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고.
발코니에서 소형 예초기를 꺼내 오는 나를 보고 엄마가 물었다.
그걸 돈 주고 샀어? 당연한 걸 물어봐서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예초기를 뺏어 들려고 했다.
아니, 엄마는 저거 들어 줘. 식탁에 올려 둔 가방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간식으로 먹을 사과와 떡, 보리차를 넣어 둔 가방이었다.
엄마는 내 손에서 예초기를 뺏어 들고 먼저 집을 나섰다.
공동 현관을 나서며 엄마의 자동차를 찾아 주변을 둘려봤다.
엄마는 주차장 끄트머리의 소형 트럭으로 다가가 짐칸에 예초기를 실었다.
짐칸에는 낫, 호미, 삽, 옥외용 쓰레받기 같은 장비와 함께 다른 예초기가 이미 실려 있었다.
내가 산 것보다 훨씬 크고 성능이 좋아 보였다.
트럭에 올라타며 엄마에게 물었다.
웬 트럭?
잠깐 빌렸어
예초기도?
인부를 부르면 좀 좋아.
시동을 걸며 엄마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힘든 일은 당연히 전문가에게 맡기지. 근데 이 정도는 내가 하고 싶다고.
땡볕에 풀 뽑는 게 보통 힘든 줄 알아?
일단 해보고.... 주말에 어진이랑 마저 하기로 했어.
돈이 없어 그러는 거면 내가 준다니까.
엄마는 좋겠다. 돈 많아서.
내가 무슨 돈이 많아.
뭔 일만 있으면 돈 준다니까 하는 말이지.
준다는 돈을 좀 받아서 쓰면 안 돼?
아, 엄마는 노후 생각 안 해?
엄마는 입을 다물고 일정한 속도로 트럭을 몰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듣다가 나는 동생 부부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의 형제자매들과 성당 사람들의 안부도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누구는 신장이 좋지 않아 입원했고 누구는 요즘 손주를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고
누구는 누구랑 사이가 틀어져서 엄청 속을 태운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차는 멈춰 있었다.
차장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이 보였다.
엄마는 핸들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나와 가장 닮은 사람. 내가 나이 들면 그런 얼굴이겠지.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눈을 떴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엄마는 나를 보며 과거를 생각할까?
괜찮겠어?
엄마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럭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며 폐가를 바라봤다.
내 키만큼 웃자란 채 마당을 가득 메운 잡초 때문에 집의 외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모자와 마스크와 목장갑과 장화를 착용한 뒤 엄마와 힘을 합쳐 짐칸의 예초기를 바닥으로 내렸다.
엄마는 낫을 들고 마당의 가장자리 풀부터 능숙하게 베어 냈다.
엄마에게 다가가 바꾸자고 했다.
뭘 바꿔?
나 저거 다를 줄 몰라. 예초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할 줄도 모르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 거야?
엄마한테 배우려고 했지, 어차피 여기서 살면 예초기 계속 쓸 테니까
엄마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
엄마는 낫으로 안전하게 풀 베는 방법부터 가르쳐 줬다.
엄마는 나를 영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이렇게,
도대체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도 나보다 먼저 무언가를 말이 되게 할 것이다.
엄마가 알려 준 대로 낫질을 반복하는데 엄마가 나를 불렀다.
예초기를 가리키며 이리 와서 보고 배우라고 했다.
※ 이 글은 <홈 스위트 홈>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3.03.22. 20210307-1629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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