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23년) - 최진영 외 /문학 사상 2023. 02. 10.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실제로 거주한 집은 대략 열 일곱 집,
거주한 적은 없으나 기억하는 집까지 더하면 스무 집.
열일곱 집 중 여덟 집은 내가 미성년이었던 때 부모와 살던 집.
성인이 되어 내 이름으로 계약한 집은 아홉 집.
스무 살 때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대학교 기숙사에서 일 년을 살았다.
두 명이 함께 사용하는 방이었지만 어쨌든 돈을 지불하고 내 이름으로 빌린 공간이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고 자주 이사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창문 없는 고시원,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전세보증금 8.000만 원....,
서울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평택으로.
거주지의 환경과 임대료는 매번 달랐으나 방의 구조나 형태는 비슷했다.
열 평 남짓한 하나의 방.
싱크대를 머리맡이나 발밑에 두고 냉장고 소리를 듣다가 잠들던 날들.
삼십 대 중반에 어진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간소하다고 생각했던 각자의 짐을 하나의 집으로 모으니 집은 더 좁아졌고
우린 가진 것을 계속 버려야 했다.
창밖으로는 다른 집의 창이 바투 보여서 늘 커튼을 치고 살았다.
이웃의 웃음과 울음, 다툼과 화해, 사랑과 비극이 어렴풋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이고 이웃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음을 깨달은 어느 날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수치스러웠다.
어진과 나의 생활도 그렇게 노출되었겠지.
이후 보지 않더라도 텔레비전을 켜두는 습관이 생겼다.
텔레비전 속 요란한 수다나 웃음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클래식이나 종교 방송으로 채널을 바꿨다.
동거 생활 삼 년에 접어들면서 우리 사이는 위태로워졌다.
야근과 회식으로 애사심을 강요하는 조직 분위기와
강압적이고 말 많은 상사 때문에 어진은 단단히 지쳐 있었고,
지쳐서 짜증이 늘어 가는 어진에게 나도 지쳐 갔다.
신경질적인 다툼과 개운치 않은 화해를 반복하던 끝에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별이 아닌 변화라고. 우리는 서로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도시를 버리기로 했다.
직장을 옮기는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했다.
우리를 둘러싼 분위기 자체를 새롭게 바꿔야 했다.
서로 가진 돈을 합쳐 충청남도 보령의 작은 빌라로 이사했다.
앞뒤 창으로 계절마다 색이 변하는 뒷동산과 멀리,
아주 멀리 구름처럼 희뿌연 해수면이 부이는 집이었다.
어진은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고 주말과 법정공휴일에는 틀림없이 쉴 수 있는 일을 구했다.
이전보다 수입은 줄었으나 생활에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일러스트 작업을 계속했다.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만 서울에 다녀오고 집에서 작업하는 일상은 변함없었으나,
밤낮 가리지 않던 작업시간을 정오에서 저녁 여섯 시까지로 한정했다.
그런데도 수입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환기가 수월한 집에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자
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줄었다.
우리의 중요한 주제는 '저녁에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로 바뀌었다.
함께 만든 음식을 하얀 그릇에 담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천천히 먹다가
시원한 보리차를 마시면, 물이 정말 달았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도
'물이 제일 맛있다'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실없이 웃곤 했다.
그 집에서 시십 대가 되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어진과 상의할 수 있다고,
곤란하고 힘든 일도 함께 겪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사고가 나면 수습하고, 싸우면 화해하고, 고장 나면 고치고, 잃어버리면 같이 찾고,
상대가 악몽에 갇혀 있을 때는 작은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 서로를 천천히 구원하는 일상.
나에게 미래란 내일이었다.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기도와 같은 기대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어느 주말, 점잖은 옷차림에 난초 화분을 껴안고 엄마가 찾아왔다.
화분을 건네주며 엄마는 말했다. 적당히 관심을 주면 꽃이 필 거다.
엄마는 풍광이 좋은 한식당을 예악해 두었다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조용하고 환한 룸에 앉아
후식까지 다 먹은 다음 엄마는 테이블 건너편의 협상가처럼 제안했다.
결혼식이 정 번거롭고 무의미하다면 혼인신고라도 하라고,
그건 결혼식처럼 돈이 들지도 복잡하지도 않고 서류 한 장만 내면 끝이라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바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 진단을 받았다.
어진은 혼인신고를 미룬 것을 후회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후회하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미루면서 병이 다 나으면 하자고 어진을 설득했다.
수술하고 치료만 잘 받으면 금방 나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어진과 엄마는 나보다 더욱 확신했다.
엄마의 지인 중에는 암에 걸린 뒤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이 몇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결과에만 집중했다.
병을 극복했다는 경험담에만 귀를 기울였다.
당시 우리에게 완치를 제외한 모든 경우는 실패였다.
죽음은 비극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 이 글은 <홈 스위트 홈>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3.03.26. 20210316-162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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