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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

홈 스위트 홈(4)

by 탄천사랑 2023. 3. 27.

 

 

 


홈 스위트 홈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23년) - 최진영 외 /문학 사상 2023. 02. 10.
수술과 항암 치료 종료 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재발,
그리고 다시 2차 재발, 재발 확률이 높은 병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도 어진도 나도, 
불길한 징조를 막으려는 사람들처럼 높은 확률의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화하지 않았다.
의사는 3차 재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죽음이란 검은 구멍이 한발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한발 뒤에도, 한발 옆에도, 죽음은 두려웠다.
고통에 짓눌릴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고통을 대가로 몇 주 혹은 몇 달을 사들이는 것만 같았다.
내가 피하려고 하는 것이 고통인지 죽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거듭되는 치료와 재발을 겪으며 강함을 다 써버렸다.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내가 낮은 확률에 속하리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믿음이 필요했다.
회복, 차도, 건강에 대한 염원, 기적을 바라는 기도, 
나의 상태를 나타내는 숫자 바깥에 있고 싶었다.

건강이란 뭘까. 
‘건강하다’는 어떤상태일까. 
건강과 죽음은 큰 연관이 없다. 
건강해도 죽을 수 있고 건강하지 않아도 오래 살 수 있다.​
십 대 때는 두통과 변비를, 이 십 대 때는 두통과 위통과 생리통과 변비를,
삼십 대 때는 위통과 생리통과 어깨의 만성적 결림과 이석증으로 인한 어지럼증과 불면을 자주 겪었다.
한 절 기마다 감기에 걸렸고 언제나 피곤했다.
 
​가스레인지 불과 전기장판을 껐는지, 
욕실의 수도꼭지는 잠갔는지, 
현관문을 제대로 닫았는지 확신할 수 없어 집을 나설 때마다 불안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혹시 오해를 부를만한 행동을 했을까 봐 걱정이 많은 편이었다. 
일을 할 때도 불안과 강박이 심해 같은 것을 수차례 확인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의 성과나 실력을 스스로 불신했고 매사 죄책감이 컸다. 
만성적 통증과 적당한 피로, 자잘한 스트레스와 타고나 성격이랄 수 있는 예민함. 
그러니까 나는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다. 
말기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라고. 
나의 생활 방식, 식습관, 성격을 하나하나 따져 보며 문제점을 찾으려고 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즐겨 마시던 와인이 문제였나.
유산소 운동을 했어야 했나.
인스턴트 음식 때문인가.
잡곡밥을 먹었어야 했나.
남들처럼 영양제를 먹었어야 했나.
걱정 많은 성격이 문제였나. 
병에 걸린 이유를 찾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터무니없었다.
커피와 술을 마셔도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걱정 많은 성격을 고치려다가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병을 겪으며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세상에는 건강 관련 정보가 넘치도록 많다는 것을.
당장 사 먹지 않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식품들, 보조제들, 
항암 작용과 면역력 증진과 노화 예방에 좋다는 
각종 제품에 대한 콘텐츠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책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몸을 고치려는 치료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려는 
계획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힐 만큼 지친 상태로 병원로비를 지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날아온 누군가의 말이 나를 후려쳤다.
아직 젊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그런 병에 걸리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년의 남녀 네 명이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웬만한 암은 초기에 발견해서 금방 고칠 수 있다던데.
백세시대란 말이 괜히 있나.
건강검진만 제때 받아도 아플 일이 없지.
요즘처럼 좋은 세상에 자기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그 지경까지 안 갔을 텐데.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 그들이 주고받던 말.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네가 이픈 건 모두 네 탓이라는 그 말들.
그들은 어쩐지 뿌듯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절대 아프지도 병들지도 않을 거라고.
나는 지쳐 있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발을 구르며 아픈 사람들 천지인 이곳에서 
제발 말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싶지만, 사지가 고통에 파묻혀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잠시 지옥에 서 있었다. 인간들의 지옥.
그들의 말은 나의 자책과 다르지 않았다.
내 잘못을 찾는 방법으로 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거지?
아프다는 이유로 잘못 산 사람이 될 순 없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기계의 알림 또는 경고음 같았다.
나는 그 멜로디의 가사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배운 기억도 없이 저절로 외우고 있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집은 아직 없었다.

 

 

※ 이 글은 <홈 스위트 홈>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3.03.27.  20210317-1707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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