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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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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위트 홈(6)

by 탄천사랑 2023. 4. 11.

 

 

 

 

홈 스위트 홈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23년) - 최진영 외 /문학 사상 2023. 02. 10.

읍사무소에 미리 연락해서 연결해 둔 수도로 마당에 물을 뿌려 먼지를 잠재웠다.
풀을 다 베어 내고 뿌리까지 뽑아 정리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마를 보고 많이 배웠다.
훤히 드러난 폐가 앞에서 엄마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양한 새소리가 들렸다.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휩쓸리는 소리도,
엄마가 먼저 폐가로 들어섰다.
무너져 가는 집을 살펴보며 엄마의 표정은 점점 심란해졌다.
나는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설명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침실로 만들거야.
이 벽을 이만큼 터서 넓은 창을 냘 거야.
여기까지가 거실이고 저기는 주방으로 쓸 거야.
주방에서 설거지나 요리를 하면서 뒷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다란 창을 낼 거야.
서까래는 최대한 살려 달라고 할 거야.

바닥이 무너질까 겁내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걸으며 곳곳을 살펴보던 엄마가 불쑥 물었다.

너 키가 몇이지?
엄마랑 비슷하잖아. 160 정도?
그럼 넌 언제 138이었나.

엄마가 바라보는 문틀에는 먼저 살았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볼펜의 촉처럼 뾰족한 도구로 새겨 놓은,
아래서부터 시작한 키 재기 흔적, 숫자에는 95에서 시작해 138에서 끝났다.

모르지. 나는 작은 편이었으니까 중학생 때일 수도 있어.
네가 작은 편이었어?
응, 늘 앞자리에 않았는데.
그럼 언제 제일 많이 컸나?
눈에 뛰게 자란 적은 없어, 조금씩 야금야금 자랐을 걸.

엄마는 허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물었다.

13 센티미터면 어느 정도지?
여기, 이 정도겠지.

문틀에 새겨진 숫자 125에서 138까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나의 엄지와 검지 사이 간격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엄마는 중얼거렸다.

누군지 몰라도 한 번에 많이도 컸네. 훌쩍 크려면 아팠을 텐데.
갑자기 크면 아픈가?
너도 자다가 깨서 팔다리 아프다고 울고 그랬어.

그런 기억은 없다.
중학생 때 어울려 놀았던 친구들, 고민들, 즐거웠던 일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도시락 반찬의 맛은 기억한다.
그때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점심시간이면 서너 명이 둘러앉아 책상에 도시락을 두고 서로의 반찬을 나눠 먹었다.
친구 중 한 명의 동그란 반찬 통과 그 안에 들어 있던,
케첩을 머금은 꼬마 돈가스 맛이 아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건 당시 엄마가 만들어 주던 후추 향이 강하고 넓적한 돈가스와 매우 다른 맛이었다.
친구의 반찬이므로 나는 그것을 딱 한 개만 먹을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점심시간에 친구가 반찬 통을 열기 직전이면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나와라, 꼬마 돈가스. 
꼬마 돈가스는 가끔 나왔다.
그래서 나는 주문 외우는 버릇을 버릴 수 없었다.
이런 기억은 나만 아는 것.
나만 기억하다가 나와 함께 사라지는 것.

집 뒤쪽의 작은 창문 하나는 깨지지 않은 채였다.
먼저 더께가 앉은 유리에 야광 별 스티커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부착 용이 아닌 판박이 스티커였다.
문틀에 뒤통수를 대고 키를 쟀던 아이가 붙였을까.
그전이나 뒤에 살던 다른 아이가 붙였을까.
누구든 이제는 아주 높은 확률로.... 어른이 되었겠지.
기억하고 있을까? 야광 별 스티커를 붙이던 순간의 마음을, 
잠들기 전 야광 별을 바라볼 때의 그 마음을. 

말끔하게 정리된 마당을 다시 한번 들러보고 트럭에 타면서 엄마는 말했다.
집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건지 무르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귀신 나올까 무섭다고.
나는 물었다.

엄마는 귀신을 겪어 봤어? 

엄마는 살면서 사람들에게 들었던 기묘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할머니가 전쟁 둥에 봤다는 아픈 귀신들.
어릴 적 이웃집에서 벌였던 굿판.
동네의 빈집에서 새어 나오던 노랫소리.
바람도 불지 않던 밤 갑자기 넘어져 깨져 버린 화분.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귀신이 죽은 자의 영혼이라면 그들은 그저 나타나거나 노래하거나 화분을 깨트릴 뿐,
나도 귀신을 무서워했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영혼을 믿어? 엄마는 으스대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니 성당 다니는 사람이야.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거 주말에 하는 취미 활동 같은 거 아니었어? 엄마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가 요즘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그래서 엄마는 영혼을 믿어? 나는 웃음을 거두고 다시 물었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구부정한 자세로 한동안 정면만 바라보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그건 사람이 믿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핸들을 부드럽게 왼쪽으로 돌리며 덧붙였다.
어쨌든 나는 반가워서 말을 걸 거야. 네 영혼이 나타나면 너무 반가워서,
돌이켜 보면, 엄마는 그때 처음 받아들인 것 같다.
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는 말로 밀어내던 높은 확률의 미래를.

그럴 일은 없어, 엄마. 

그러나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영혼만 남기고 갈 생각 없거든. 내 몸이 죽으면 내 영혼도 죽는 거야.
그러니까 죽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헌하고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나쁜 년. 엄마가 말했다.
이럴 때 보면 넌 진짜 지독하게 나쁜 년이야. 

 

 

※ 이 글은 <홈 스위트 홈>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23.04.11.  20230409-1654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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