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 딸 10주기 기일 앞두고 떠난 이어령… 」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생전에 부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영인문학관 관장)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세계일보 자료사진
딸 이민아 목사, 생전에 “부친 사랑 못 받았다”
2012년 3월15일 암으로 아버지보다 먼저 타계
이어령, 지난해 책에서 “딸 정말 보고 싶구나”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그리고 정말 보고 싶다.”
26일 별세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게 ‘깨물어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인물은 아마도 고 이민아 목사(1959∼2012년)일 것이다. 고인이 지난해 펴낸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침 고인은 딸이 세상을 떠난 10주기 기일을 보름가량 앞두고 별세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생전에 냉정하게 대한 딸한테 하늘나라에서나마 아버지의 정을 전해주려고 때를 맞춰 타계한 것이란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이민아 목사는 고인과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영인문학관 관장) 사이의 1녀2남 중 맏이로 태어났다. 22세인 1981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입학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수재였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부모의 걱정과 만류에도 첫사랑이자 무명의 청년 작가였던 김한길(전 국회의원)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성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민아·김한길 부부는 5년 만에 이혼한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유진은 버클리대를 다닌 수재였으나 2007년 돌연사했다. 이 목사는 물론 할아버지인 고인한테도 크나큰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2011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목사는 “지금도 내 아들이 죽은 원인을 모른다. 감기 걸린 것 같다더니 그대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년 동안 매일 울면서 신(神)을 원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신을 탓한 것도 잠시, 이 목사는 아들의 사망을 계기로 종교에 귀의한다. 원래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법률가였던 그가 신학을 공부하고 2009년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다. 이후 미국, 아프리카, 남미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하다가 위암에 걸려 2012년 3월 15일 타계했다.
2012년 딸 이민아 목사가 위암으로 타계한 뒤 빈소를 찾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슬픔에 잠긴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생전에 쓴 책 ‘땅끝의 아이들’(2011)에서 이 목사는 아버지 이어령을 원망했다. “자기 전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아버지가 글을 쓰고 있는 서재 문을 두드렸다. 오늘 따라 특별히 예쁜 잠옷을 입었기에 아버지가 ‘굿나잇’ 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손을 흔들기만 했다. ‘오늘도 역시’ 하는 생각에 시무룩해져 돌아섰다.”
책에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버지 서재에 숨어들어가 술을 마셨다”는 고백도 나온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 목사는 “작가, 교수, 논설위원 등 3개 이상의 직함을 가지고 살며 늘 바쁜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그 팔에 매달려 사랑받고 싶은 딸이었는데, 배고프고 피곤한 아버지는 ‘밥 좀 먹자’ 하면서 나를 밀쳐냈다”며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2012년 딸이 암으로 사망한 뒤 고인은 이 대목이 너무나 가슴에 걸렸던 것 같다. 지난해 출간된 고인의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이 목사에게 뒤늦게 띄우는 사랑, 그리고 후회의 편지다. 마침 오는 3월 15일은 이 목사의 10주기 기일이다. 그 보름 좀 넘는 기간을 못 기다리고 기어이 딸의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간 걸 보면 고인의 한(恨)이 너무나 컸던 모양이다. 부녀가 부디 10년 만에 재회해 오해를 풀고 정도 나누길 기원하며 고인이 생전에 딸 앞으로 쓴 편지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어리석게도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좋은 피아노를 사주고 널 좋은 승용차에 태워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빠의 행복이자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느낀다.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나의 사랑 그 자체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고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그리고 정말 보고 싶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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