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일상 정보/사람들(인물.

이어령 선생을 그리며

by 탄천사랑 2022. 2. 26.

 

그리움이 돌이 된다.
망부석의 전설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기억한다.

그러한 기억은 우리 민족의 핏속에 가라앉아서, 두고두고 문학의 언어 속에 되풀이해 나타난다.

 

소월은
"선 채로 이 자리에서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고 했고,
청마는
"님을 따르지 못하는 외침이 바위되어 남는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모든 그리움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리움들은 안개처럼 피어오르다가 한나절 햇살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혹은 바람 같은 그리움도 있다.
불현듯 생겨났다가 거칠게 몰아치고, 회오리치다가 금세 잠잠하게 가라앉는 바람,
그것은 바위처럼 한곳에 붙박여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허공을 맴돌면서 명멸하는 그리움이다.

 

에코의 전설처럼 목소리만 남는 그리움도 있다.
피도 살도 다 닳아 없어지고,  이제는 그리운 것을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만이 남아,
숲 속의 가지에 얽혀 매아리친다.

 

그리움은 바위가 되어 망부석처럼 어느 벼랑 바닷가에 우뚝서기도 하고,
정반대로 안개나 바람이나 목소리가 되어 형체도 없이 허공을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당신의 그리움은 어떤 것인가.
한곳에 굳어버려 시간도 이끼로 남는 천년의 바위인가,
그렇지 않으면 낡은 문짝을 아프게 흔들어대는 바람인가.
산도 마음도 앞으로 갈 길도 가로막고, 모든 얼굴을 지워버리는 답답한 안개인가.

 

시인이여,
당신은 가르쳐줘야 한다.
그리움을 모르는 당신의 이웃들에게,  그리움의 변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어째서 그리움은 바위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는가를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이야기해야 한다.
사월이 되면 돌무더기에서 바위 틈 사이에서 피를 토하듯 피어나는 진달래꽃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시인이여,
당신은 그리움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바위든 바람이든 목소리든,
그리움의 마지막 모습은 꽃으로,  꽃 가운데서도 진달래꽃으로 나타난다는 비밀을 이야기해야 한다.

 

바위처럼 굳어 침묵하던 그 그리움들이 눈을 뜨고 일어나면 그것은 진달래가 된다.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어느 날 사월에 갑자기 조용하게 잠들어버리면,  그 자리에 진달래가 핀다.
산울림 소리가 다시 피를 얻고 살을 얻게 될 때 진달래 한 송이가 핀다.
꽃이 되지 않는 그리움은 시가 되지 않는다.
바위가 되어버린 그리움도 바람으로 남는 그리움도 모두 다 피거라, 사월이면…

 

그리고 시가 되어라.
그리움들의 변신이 끝나는 마지막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
그 진달래를 꺾어 옛날 소월이 그랬듯 뿌려라.
그리움을 모르는 저 시끄러운 무리들이 다니는 길거리 위에.

- 그리움의 변형  -

 


후기.
뉴스를 보던 아내가 그런다.
TV에 이어령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자막이 쓰였다고,
우리나라의 귀한 지성으로 자리잡고 있던 선생이 아니던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평소 예찬 하던 사월의 진달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작 선생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그의 깊은 이야기들,
어찌 담고 가셨는지,

 

작가 E. 퀴블러 로스는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그 새로운 곳에 아기가 울음으로 자신의 탄생을 알렸으리라 믿는다.
선생의 긴 여행은 그렇게 이어지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