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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알일보 - “나보다 더 노력한 기사는 있어도 더 힘들게 공부한 기사는 없을 것”

by 탄천사랑 2022. 3. 4.

중알일보 - 「2022. 03. 04. 2면」

2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신진서 9단. 한국 바둑의 새 구새주로 떠오른 기린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중·일 바둑 삼국지’ 농심신라면배에서 지난달 26일 한국이 우승했다. 극적인 역전 우승이었다.
최종 주자인 신진서(22) 9단이 중국과 일본의 최정예 기사 4명을 차례로 물리치고 통렬한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그를 2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 키가 크다.
“180㎝ 정도 된다. 몸무게는 65∼69㎏인데, 2월 큰 대국을 여러 번 치르면서 3~4㎏ 빠졌다.” (신 9단은 대국 중간에 바나나를 자주 먹는다. 바나나 먹는 장면이 중계에 여러 번 잡혀 바둑 팬은 ‘승리의 바나나’라고 부른다. 막상 본인은 “살려고 먹는다”고 비장하게 답했다.)
현재 신 9단은 세계 최강이다. 비공식 순위지만 바둑 통계 사이트 ‘고레이팅(Go Ratings)’에서 2019년 1월부터 1위를 지키고 있다. 올해 성적은 18승3패, 승률 85.71%(3일 현재)다. 지난해 6월 8일 이후 외국 기사에게 진 적이 없다. 28번을 내리 이겼는데, 그중 중국 기사에게 23번 이겼다. 돈도 많이 벌었다. 2020, 2021년 연속으로 상금 10억원이 넘었다.


신 9단은 2000년 3월 1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부산에서 바둑학원을 했다. 네 살 때부터 바둑을 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4관왕에 올랐다. 가족은 2012년 2월 서울로 이사했다. 그해 7월 영재바둑대회를 통해 입단했다. 신진서는 2000년생 첫 프로기사다.


- 초등학교 시절, 밤마다 인터넷 바둑을 두는데 ‘지면 이길 때까지 둔다’고 했다.
“지는 게 싫었다. 열 판 넘게 두고 잔 적도 많다. 요즘은 그렇게 안 한다. 우선 옛날처럼 인터넷 바둑을 자주 두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은 거의 지지 않는다(신 9단은 가공할 승부사다. 지난달 중국 양딩신 9단과 LG배 결승 1국에선 승률이 1.5%까지 떨어졌던 바둑을 뒤집었다). 패배가 쌓이면 무뎌지는 게 아니라 무력감이 커진다.”


- 천재형인가, 노력형인가.
“재능은 있었던 것 같다.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보다 더 노력한 기사는 있을지 몰라도 나보다 더 힘들게 공부한 기사는 없을 거다. 부산에 살 때 대회에 나가려면 서울을 왔다 가야 했다. 정말 힘들었다. 재미가 없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 선배 기사들에게 배운 게 있다면.
“이창호 9단에겐 부동심을 배웠고, 이세돌 9단에겐 카리스마를 배웠다.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건 박정환 9단이다. 바둑도 배웠지만, 바둑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그는 바둑에 늘 진심이다.”


신 9단의 최대 라이벌은 커제 9단이다. 중국 1위인 데다 상대 전적도 7승11패로 커제가 앞선다.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도 신 9단이 뒤진다. 신 9단 3회, 커제 8회다. 10년 전 프로기사가 됐을 때 그의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현재 목표를 물었더니 “세계대회에서 커제보다 더 많이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 지난달 25일 농심신라면배 커제와의 대국이 큰 화제가 됐다. 한·중 최강자 대결이었는데 일방적으로 끝났다.
“커제의 초반 포석을 공부했는데, 그대로 진행돼 쉽게 이길 수 있었다.”(놀라운 답변이다. 커제가 흑이었기 때문이다. 초반 진행은 흑이 주도한다. 초반 36수가 진행될 때까지 신 9단은 불과 33초만 사용했다.)


- 대국이 끝난 뒤 커제 발언이 논란이 됐다.
“커제가 틀린 얘기를 했다. 내가 화장실을 자주 갔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커제가 말한 내 인공지능(AI) 일치율도 맞지 않는다. 그날 내 바둑의 인공지능 일치율은 65.8%였다. 그런데 커제는 71%라고 했다. 이 차이는 크다. 일치율 65%는 내가 다섯 판 두면 한 판 정도 나오는 수치고, 70% 이상은 100판을 둬야 한두 판 나올까 하는 수치다. 커제는 내가 부정행위를 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날은 내가 잘 두기도 했지만, 커제가 못 뒀다.”


- 커제랑 끝장 승부를 내는 건 어떨까. 이세돌도 구리와 10번기를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올해 안에 커제와 10번기가 마련된다면 무조건 하겠다. 딴말 안 나오게 하려면 대면 대국이어야 한다.”


- 인공지능으로 어떻게 바둑을 공부하나.
“인공지능과는 자주 대국하지 않는다. 대신 인공지능 추천 수를 계속 둬 본다. 왜 이 수를 추천하는지 이유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 인공지능 출현 뒤 바둑이 삭막해졌다는 평도 있다. 인간 바둑엔 기풍이 있는데, 인공지능 바둑엔 정답만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인공지능에도 기풍이 있다. 가령 인공지능 승률 50%의 수가 있다고 하자. 옆에 49.9%의 수가 있고,또 옆에 50.1%의 수가 있다. 어디를 두든 승률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바둑은 전혀 다르게 바뀐다. 이 차이가 기풍의 차이라고 이해한다.”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 바둑이 들어 있다. 남녀 단체전과 남자 개인전 세 종목이다. 신 9단 출전은 사실상 확정됐다.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겠다고 했더니 그가 정색하며 말했다. “병역 혜택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바둑을 알리는 겁니다.” 바둑을 업으로 알고 사는 장인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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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중앙일보 - 2022.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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