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 - 2022 February vol. 217」
아내 현영 씨는 여행을 시작할 땐 이럴 줄 몰랐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한 그녀의 캐리어에는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과 인도양의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챙 넓은 모자가 들어있었다.
운동복 차람에 질끈 묶은 머리로 인도의 이름 모를 동네에서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눈물 나게 그리워하게 될 줄도 몰랐다.
Says
"저희가 어떤 종교적 신념이 있거나, 특별한 봉사정신이 있어서 봉사활동을 한건 아니거든요.
그저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을 내 힘으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나도 행복하겠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때로는 여행도 여행대로 즐겼어요.
봉사도 여행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시작한 거니까요"
- 석남 씨는 치밀하게 준비했다.
연애를 하던 시기에도 종종 성숙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경험을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예를 들면 봉사활동이라던지..., '라면서, -
세계여행, '할 수 있을까?' 에서 '해보자!"로
여기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만인의 버킷리스트 '세계여행'을 신혼여행으로 떠난 부부가 있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 홍석남 씨는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했고, 방송 리포터 일을 하던 아내 김현영 씨도 하고 있던 일을 접었다.
365일, 약 1년간의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결심만으로도 놀라운데,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
여행지의 빈민촌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사실 정확히는 남편 석남 씨의 계획이었다.
"저는 꿈에서도 몰랐어요.
그저 여행 갈 생각에 들떠서 짐만 쌌죠.
결혼 앞두고 해야 할 게 많으니까 제가 결혼식을 맡고, 남편은 신혼여행을 맡아서 준비하기로 했거든요.
서로 계획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묻거나 따지지 않고,
'여보는 이것만 도와줘'
'이것만 하면 돼'하고 얘기하면 그런 것들만 서포트하면서 진행했으니
신혼여행 가서 아프리카에 화장실을 만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거죠."
남편 석남 씨는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계획을 아내에게 숨기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던 걸까?
"제가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여행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막연히 언젠가 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아내를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면서 이 사람이라면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현지에 도착해 현실을 마주한 아내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석남 씨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처음 느끼는 당혹감과 행복 사이
대망의 첫 봉사활동은 인도에서 시작했다.
오전에는 시멘트와 흙을 섞어 건물 벽을 세우고, 오후에는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도움이 필요한 곳이니까 당연히 환경은 열아가고, 먹을 것도 부족하고요.
아이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거북해 편히 안아주거나 살갑게 웃으면서 대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2주 동안 내내 집에 가고 싶다고 그랬어요.
그 환경을 극복할 의지도 없었고, 오직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반응에 석남 씨도 놀랐다.
매일 밤 숙소로 돌아오면 시무룩해 있는 현영 씨를 보는 석남 씨의 마음도 편치 않았자만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이 여행이, 봉사활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분명히 느끼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득의 무기는 바로 당근이었다.
"봉사활동은 하자고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제가 정말 숭고하고 깊은 신념으로 남다른 철학이 있어서 봉사를 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이건 우리에게 생애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기도 하니까.
여행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시간도 가지기 위해 노력했어요"
석남 씨는 몰디브에서 드디어 비키니를 입고 모히또를 마시는 아내에게 다음 여행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였다. 현영 씨는 '딱 2주'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다시 한번 적응되지 않는 봉사의 세계로 향했다.
아프리카의 한 고아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살을 파고들며 자라는 머리카락 탓에 대부분 삭발을 한 민 머리였다.
그런 아이들은 찰랑이는 긴 머리를 한 현영 씨의 머리를 가만가만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현영 씨는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머리를 만져보는데 그게 저를 위로하는 것 같더라고요.
'괜찮아, 2주 금방 지나갈 거야'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정말 이상했어요".
여행의 시작과 끝은 기대감과 신뢰
모두가 부러워하지만 누구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 이 부부에게 그 어려운 결정에 대해 물었다.
가장 어려운 그 시작, 그 첫 테이프를 어떻게 끊었느냐고.
"자신감인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혹은 할지 말지를 고민할 때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하잖아요.
'1년 동안 여행을 간다고?
다녀와서 직장은 어떻게 구하지?
결혼했는데 집은 어쩌고?' 이런 걱정을 하는데, 저희는 걱정보다는 기대감을 가졌어요
가서 우리가 뭘 보고, 배우고, 느끼고 올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1년의 여행을 마친 지금,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여행을 하면서 영상으로 글로 열심히 기록한 것들을 업로드해 유튜브를 운영하고,
여행 후 석 달 동안 그간의 이야기를 정리해 지난해에는 <분명히 신혼여행이라고 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고 영감을 얻고 싶어 하는 곳에서 강연도 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실제로 이들은 그 1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형의 콘텐츠를 제작하며
그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일들을 하나식 확장 해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쌓였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결정 하나도 상의하고, 대화하면서 연애 때보다 더 많이 서로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됐어요.
이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은 가장 큰 게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에요."
이들의 남다른 신혼여행기를 듣고 있으면 순간순간 웃음이 터진다.
그 기분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나누다 보면
언젠가 그들 중 누군가는 다음 여행길에서 이들 부부와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p21)
글 - 강시내
사진 - 박성수
LX한국국토정보공사 홍보처 - 땅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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