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 사계절 2011. 02. 15.
아주 오랫동안 사귀었고 결혼까지 꿈꾸었던 연인으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은 사람이 있다.
그 다음날 그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하여 상사와 동료들과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눈다.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알고 있다.
삶은 마치 연극처럼 진행되고 있고, 그렇게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마치 능숙한 배우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자신의 슬픔을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몇몇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주려고 하는 순간,
친구는 자신이 해고당했다며 슬퍼한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친구라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괜찮아.
너는 능력이 있으니까. 이번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거야."
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맨얼굴이라고 맡았던 것도 사실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에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있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애써 벗자마자,
맨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맨얼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고민을 거듭하던 중,
아주 오래전 인간의 삶이란 연극에 불과하다는 통찰에 이른 철학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바로 에픽테토스(Epictetus, AD 55~135)이다.
- 너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인물인 연극배우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연극이 짧기를 바란다면 짧을 것이고, 만일 길기를 바란다면 길 것이다.
만일 그가 너에게 거지의 구실을 하기를 원헌다면,
이 구실조차도 또한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절름발이를, 공직 관리를,
평범한 사람의 구실을 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
에픽테토스에게 '작가'는 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에 따르면 신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연기해야 할 배역들을 모두 정했다는 것이다.
그 배역에 따르면 우리는 거지가 될 수도 있고,
왕이 될 수도 있고, 사형수도 될 수 있고, 절름발이가 될 수도 있다.
에픽테토스는 왕이 되었다고 뻐길 것도 없고, 거지가 되었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도 없다고 한다.
왕이나 거지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삶이란 연극판에 부여된 배역에 지나지 않는다.
연기를 마치면,
그러니까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우리는 모두 배역에 충실했던 배우들이었을 뿐이다.
어린 나이에 죽을 병에 걸렸다고 슬퍼할 이유도 없다.
단지 자신이 맡은 배역이 그럴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충실하게 자신의 배역을 소화하고 연극판을 떠나면 된다.
괜히 신이라는 작가에게 투덜거려서도 안 된다.
※ 이 글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11.11.21. 20241102_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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