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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말 - 쌀과 머루와 누룩의 공간

by 탄천사랑 2008. 6. 8.

·「李御寧에세이集 - 말」   

 


쌀과 머루와 누룩의 공간
고려 때의 가요 청산별곡에는 삶의 세 가지 공간이 음식물에 의해서 상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 랐다'와 
'나마 조개 구조개랑 먹고 바라(바다)래 살으리 랐다'라는 표현은 
다 같이 문화적 공간에 대웅 되는 자연 공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머루. 다래. 조개. 글'은 인간의 農耕 농경으로 재배하고 있는 곡식인 
'쌀. 보리. 콩. 조'와 대조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의 노동으로 가꾸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이며,
논. 밭이 아니라 태초의 그 산과 바다의 터전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러니까 머루. 다래를 먹고 살겠다는 것은 
쌀과 보리를 먹고 살아가는 문화적 공간의 인간적인 삶을 거부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머루. 다래'가 상징하고 있는 '자연 공간'은 저 야생의 세계, 
인간과 동물이 서로 구별 없이 땅 위의 풀을 뜯는 원초적인 생명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산이고 그냥 바다인 공간이며 요리 술이 필요 없는 생식의 세계이다.

그러나 쌀과 보리는 자연 그대로의 땅에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논두렁. 밭두렁의 그 경계선의 엄격한 분할을 요구한다.
잡초를 뽑아 내고 들짐승을 막는 울타리를 요구한다.
흙과 돌이 섞여지지 않도록 물로 씻어 내고 그것을 다시 불로 익히는 요리 술을 요구한다.

그런데 청산별곡이 도달한 세계는 '쌀. 보리'도 '머루. 다래'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
'조롱 꽃 누룩이 매우 잡사오니...,'가 그것이다.

'누룩'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곡식으로 빚은 것이지만 불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머루. 다래처럼 절로 발효하여 뜨는 것이다.
날것도 아니고, 불로 익힌 것도 아닌 누룩... 
자연적으로 발효해서 생겨나는 그 술은 
자연과 문화의 두 공간이 융합된 별개의 새 공간을 상징하는 음식이 된다.

청산별곡처럼 시의 세계는 이 세 개의 공간,
머루 다래의 언어와 쌀 보리의 언어,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누룩의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오늘의 시인들도 배워야 한다.


※ 이 글은 <말>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李御寧에세이集 - 말 
文學世界社 - 1982. 11. 15.

[t-08.06.08.  20240602-1426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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