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겸노 - 문방사우
[220701-154948]
명연名硯 이야기
명연은 우선 연석硯石이 좋아야 한다.
명연名硯의 조건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묵과 발묵이 잘 되고,
돌 결이 곱고 부드러워서 붓을 상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품위 있는 모양과 아름다운 색채
그리고 정교한 조각을 곁들인 것으로서 장구한 세월 동안 전해진
유서 깊은 내력을 지닌 것이면 금상첨화다.
이런 명연은 문인 묵객들이 서로 애장愛藏하고 싶어하고,
애장은 못할 망정 감상이라도 하려는 마음의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또한 명연 중에서도 안眼을, 안眼 중에서도 활안活眼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로
더욱 고귀한 신품神品이라는 고평高評을 받게된다.
이제 필자가 직접 감상하거나 취급했던 명연名硯 몇 개를 소개하기로 한다.
구욕청안상촉단계연
벼루 오른쪽 운두에 '구, 욕, 청안상촉鸜, 鵒, 靑眼相囑'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서 필자가 붙인 이름인데
너무 길므로 줄여서 '구욕단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명연 중 명연이라고 할 수 있는 구욕단계연을
필자가 맨 처음 보는 행운을 누린 것은 1972년 10월 중순경이었다.
이 벼루의 처음 소장자는 고故 송운 이병직松隱 李秉直 씨였고
다음 소장자는 우리 나라의 금광왕이며 갑부였던 최창학崔昌學 씨였다.
최씨가 작고한 뒤에 전 인천제철 사장 원형묵元亨默 씨가 매수하면서
5,6폭의 서화와 함께 감정을 의뢰하고
가격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필자를 찾았을 때가 최초의 인연이었다.
그로부터 한두 해 지나서 원씨가 벼루를 양도할 생각이 있다면서 필자를 찾아왔다.
백만 원을 호가呼價 하기로 값은 높지만 하도 명연이라
시인 이근배 씨에게 침이 마르도록 권유하여 매매가 성립되었다.
그 후 4,5년 뒤에 삼일 빌딩에서 고서화 및 도자기,
골동품 경매가 있었는데, 이씨의 '구욕단연'이 등장했다.
경매 값이 물경 사백 오십만 원까지 올리갔으나 팔지 아니하고 지금도 주인이 소장하고 있다.
이 벼루가 어찌하여 명연名硯 중의 명연이라고 하는지 그 연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벼루의 크기는 눈짐작으로 너비 15센티미터,
길이 21센티미터,
두께 3센티미터 정도의 단계연이다.
오른쪽 옆면과 왼편 옆면에 벼루를 주고받게 된 사연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도광 정해년 겨울에 백용白鎔이 삼가 썼다는 발문跋文이 있는데,
달필로 쓴 팔분체이며 조각 또한 명각이다.
내용인즉,
백용이 학사 감독관으로 광동廣東에 갔다가 임무를 끝내고 환도還都할 즈음,
미불米芾을 존숭尊崇 하는 버릇이 있음을 잘 아는 완운대라는 사람에게서
유명한 광동 단계연 두 개를 흔연히 선사 받았다.
문방의 중한 보물로 천하에 짝이 없다는 명품을 우연히 얻게 됨에,
28자의 시구로 사례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가 도광 정해년이니 우리나라의 순조 27년(1827)이다.
백용은 순천 통주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공도상서工都尙書를 지낸 사람이며 벼루를 기증한 완운대阮芸臺는
이름이 원元이고 호는 운대이며,
청 말의 유명한 학자로서 우리나라의 추사와도 교분이 두터웠던 사람이다.
연지硯池에는 구름무늬 사이에 있는 청안靑眼을 새 두 마리가 마주 바라보고 있는데
문양이나 조각이 정교하여 품위를 더욱 높여 주는 명품이다.
그리고 화류樺榴(붉은빛을 띤 결이 곱고 단단한 목재)로 만든
벼룻집(硯匣) 뚜껑에는
팔분체로 4자씩 4줄의 글씨를 새기고 그 끝에 '양주 완원'이라는 낙관이 있다.
벼루의 촉감이 뛰어나게 보드랍고 두 개의 청안,
곧 벼루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이 모두 학계에 알려준 명인이며
달필로 쓴 필적과 낙관이 뚜렷하고 연석이 또한 제일의 단계석이니
명연의 조건을 빠짐없이 갖추었다고 하겠다. (p97)
※ 이 글은 <문방사우>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겸노 - 문방사우
대원사 - 2001.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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