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룡 - 비상구 없는 일본의 에로스」
무관심한 가족
일본의 문예인들에게는 최고의 영광 이리고 할 수 있는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수상한 제일 동포 작가 유미리 씨.
그녀 소설의 주된 테마는 '가정'이었다.
가족과의 즐거운 식탁, 대화가 충만한 단란한 가족이 그녀에게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른이 되어서 보니 '보통 가족'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딘가 금이 가고 부족한 가족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한다.
그녀의 말대로 현대 일본의 가정은 물질적으로는 풍요할지 모르지만 무엇인가 빠져 있다.
바로 가족에 대한 '관심'이 빠져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주위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동경의 도요스 마구에 있는 한 목조 아파트에서
일흔아홉 살의 모친과 마흔한 살의 아들이 아사(굶어 죽는 것) 상태로 발견되었다.
또한 오사카에서도 모친과 딸이 굶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직후의 일본 풍경처럼 보이는 뉴스이지만
실제로는 1996년 4월과 1997년 1월에 발생한 사건이다.
현대 일본 사회의 무관심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무관심이 남에게만 미치는 것이라면
현대 사회가 낳은 이기주의의 결과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일본인의 무관심은 자신의 가족에게까지 미친다.
왠지 일본의 부부는 친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모든 부부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친하지 않은 부부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신문이 일본인과 미국인 부부 34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고 마음의 교류를 원하고 있다는 대답이 미국인의 경우에는 70%,
일본인의 경우에는 10%뿐이 안 되었다.
이 조사는 80년대에 행해진 조사이지만 조사가 나타내주는 상황은 극히 일반적이며
지금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졌다고 볼 수 없다.
최근 일본의 부부들을 보면 젊은 커플에서 중년의 부부까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지만
이것이 부부의 화목을 증명 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표면적인 애정이 아니라 내면적인 친숙함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배우자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자식들에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일본의 종합생활 개발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평일에 부모와 15분 이상 대화를 나눈 비율은 초등학생 9%,
중 3학생의 경우는 5%에 지나지 않았다.
휴일의 경우에도 초등학생 27%, 중3 학생이 17%였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없으니까 자식들이 매춘을 하고,
폭력을 저지르고, 마약을 하고, 이상한 취미에 빠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를 못하는 자식은 포기한 자식으로 치부해 버리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공부에 방해될까 봐 대화의 시간을 갖지 않는 일본의 어머니들,
회사의 로봇이 되어 집에 오면 잠에 곯아 떨어지는 아버지들,
그들 사이에서 밝고 건강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뿐이다.(p347)
※ 이 글은 <비상구 없는 일본의 에로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지룡 - 비상구 없는 일본의 에로스
시사플러스 - 1997. 03. 30.
[t-08.04.20. 210403-16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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