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구 - 카피 한 줄의 힘」
추천사
"때로는 무 카피도 카피다."
광고 카피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함축한 이인구 교수의 이 한마디는
그의 30년 경력에서 나온 또 하나의 절묘한 카피다.
카피 쪽으로는 마땅한 교재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론과 실전을 섭렵한 그의 책이니,
카피라이터 지망생은 물론 광고에 뜻을 둔 모든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 윤석태 (전 '세종 문화' 대표. 경주대학교 석좌교수)
내가 문맹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선배님.
카피라는 걸 화두로 삼았을 때, 이 선배님의 이야기는 이따금씩 내 가슴을 관통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한 체험을 후배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으니 읽어보면 안다.
진작 나왔어야 할 책이다. -윤호섭 (국민대학교 교수)
30년 전 직속 상사로 처음 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인구 교수님의 카피 철학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배웠고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공감을 이끌어 내는 진솔하고 힘 있는 카피이다.
행동을 이끌어 내는 힘 있는 카피를 쓰시던 이인구 교수님이 책을 내 섰다.
실무에 계실 때에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단에서나 한결같이 카피계의 어른이 되어주신 이 교수님.
카피 라이팅의 교재가 마땅히 없는 것을 늘 마음에 두 시다가 정년을 맞으시고 이렇게 책을 내놓으셨단다.
마땅한 카피 이론서가 없던 터에
이론과 실제를 적절히 배울 수 있는 카피라이터들의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조병량 (한양대 언론정보 대학원장. 한국 광고 학회 회장)
'옛날 이야기' 인가 하면 '내일을 위한 말씀' 입니다.
'느슨한 질책' 인가 하면 '따뜻한 충고' 입니다.
'또 그 말씀이구나' 하면 '처음 듣는 이야기' 입니다.
'소설책' 인가 하면 '광고론' 입니다. 그런 당신을 닮은 책을 내셨습니다.
선배님께 제가 오래도록 배운 것들을 후배들이 이렇게 쉽게 책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 윤준호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머리말
학기 초에 제출할 '강의계획서'를 작성할 때마다 주춤하게 되는부분이 있다.
교제명을 기재해야 하는 대목이다.
별수 없이 내 방식대로 그냥 '강의노트' 라고 적어놓고 말지만,
실상은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 카피 라이팅 과목이다.
관련 서적은 많아도 대개 사례 분석이나 개인적인 경험 등에 의한 주관적인 서술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어서 어디까지나 참고 서적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카피는 세일즈 메시지이다.
따라서 마케팅에 근거한 전략적 방법론을 전재해야 하므로
강의 내용 자체가 당연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숙제였다.
교재 문제에 관한 한,
결국 직접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숙제로 안고 있으면서도
이래저래 미루어 오기만 하다가 마감에 쫓기듯,
하필이면 정년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 내놓게 된 것이 무척 겸언적지만,
최고참 카피라이터라는 꼬리표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이곳저곳 참견할 수 있었던 한 노 교수의 지각 성의 쯤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실무현장과 강단을 수없이 넘나들며 보낸 32년 세월의 나이테 같은 것이
이 책에 그대로 용해되어 있다는 평을 들을 수 있다면,
그래서 카피라이터를 지망하고 있는 후진들에게
하나의 지침서 구실을 해 줄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한 보람이 없겠다.
지각으로나마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실어준 학교와 광고 학회 회장 조병량 교수,
그리고 자료 정리를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 준 마케터 김훈철,
카피라이터 권혁렬 두 분에게 특히 감사를 드리며
출판을 맡아준 홍순우 대표에게도 같은 뜻을 전한다. - 2002년 6월 이 인 구.
후회 없는 광고인이 되기 위해서
세상만사가 괴로워질 때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들먹일 만큼 심각 했다가도
막상 그 때를 넘기고 나면 그 순간마저 애틋한 그리움으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하고 많은 직업 중에서 하필이면 내가 왜 이 직업을 택했는가 싶었던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직업에 대한 회의와 좌절로 암담했던 한 시절이 다행스럽게도
'역경을 극복한 의지의 세월'로 치장되고 각색되어질 때
그 사람은 이미 살아갈 만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광고는 내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이다.
어쩜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라는 말 자체가 꽤 행복한 의미를 풍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직업도 자기 뜻에 의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광고인으로서의 나의 출발은 1969년 만보사 (萬報社. 오리콤 전신) 창립과 더불어서였다.
당시 이재항 사장의 설득에 의해서였지만,
실은 그전부터 나는 이미 가까운 친구를 통해서 광고에 대한 어느 정도의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정작 광고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다.
문공부의 유태환 해외공보관장이 바로 그 장본인인데
그가 한국일보사의 외신부 기자로 근무하던 무렵의 얘기다.
하루는 그가 날 보고 느닷없이 방송작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직업을 광고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소리가 무척 모욕적인 말로 들려 불끈 화부터 냈다.
광고하는 사람을 광고나 구걸하러 다니는 사람쯤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너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심사가 뒤틀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그의 얘기는 속으로부터 치미는 화를 붙들기에 충분했다.
외국 유학을 갈 생각으로 장기영 사주 社主를 찾아가서 무엇을 공부해 오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했더니만,
뜻밖에도 광고 공부를 해오라는 당부였다는 것이다.
그 때 덧붙여 나온 얘기는 지금 일일이 기억할 수 없지만 앞으로 가장 빛을 볼 수밖에 없는 분야라는 것,
그 이유는 이러저러한 세계적 추세 때문이라는 것,
대개 그런 내용의 뒷받침을 위한 당위성의 역설 力說 이었는데
나도 공감이 갈 만큼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나는 화가 났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그 얘기에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 얼마쯤 있다가
이재항 어른을 만나게 됨으로 해서 나는 곧 '광고'라는 것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광고 회사 생활은
불과 얼마 안 가서 당초 부풀었던 기대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현실의,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치고 만다.
당시 사회적 여건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내 인내력의 한계가 더 큰 문제였다고 하겠다.
장래야 어떻든, 당장을 지탱하기가 힘든 그 꼬투리 같은 자존심이 한없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어디에다 명함을 내놓으면 외면당하기가 일쑤고
동창들이라도 만나게 되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냐는 식의 의아해하는 표정 앞에서
변명처럼 긴 설명으로 실속 없이 열을 올리게 되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더러 부담스러운 불청객이라도 만난 듯
당혹해 하는 그들 앞에서 몇 배나 더 당혹해야 하는 나를 스스로 발견하게 될 땐
정말이지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뜨겁게 치밀곤 했었다.
그 때 실상 나는 주머니 속에 늘 사표를 넣고 다녔었다.
그러면서도 선뜻 사표를 던지지 못했던 이유는
광고 작업에 대한 어떤 미련 같은 것이 아직 끈적끈적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엉망이 되어 있는 내 자존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그럴 듯한 직장이 없었고
또 한 가지는 이재항 사장과의 어떤 약속에 대한 신의 같은 것에
더 큰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 옳은 말일지 모른다.
그만큼 그 분이 개인적으로 내게 미친 영향력은 켰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분이나 나나 광고계에 발을 들여놓은 시점이 같았기 때문에
광고 공부도 함께 한 셈이지만 그 분의 그 뚜렷한 신념과 열정엔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사장실에서 1시간 동안 외국의 광고 전문서적을 퍼놓고 공부를 해야 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어김없이 세미나를 해야만 했다.
전 사원이 예외 없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직무별로 자기가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해 연구해서 발표하고
토론하도록 하는 방법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보약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그것도 보통 고달픈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튼 그런 과정 속에서도 내가 직접 관여해서 만든 코카콜라,
한타 등의 제작물들이 하나, 둘 빛을 보게 되면서
어느덧 나는 그 세계에 조금씩 적응해갔고 세상 분위기도 조금씩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럭저럭 그렇게 십수 년, 그동안 세상은 정말 무척이나 달라졌다.
내가 걷는 길에 직접, 간접으로 그토록 큰 영향을 끼쳐준 장기영 어른도,
이재항 어른도 벌써 이 세상 분이 아니시다.
내가 15년이나 몸담았던 오리콤을 떠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라는 걸 시작한 지도 어느새 3년째이다.
그리고 또 어느새 나는 소위 매스컴을 자주 타는
'광고계의 명사' 행세를 아주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에 의한 기사가 더러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잘못되어 겪는 곤욕도 있지만,
나를 부추기는 과장된 기사가 나를 무척 겸연쩍게 만들지만,
그래도 카피라이터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관심도가
그만큼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 내게 있어서는 더욱 중요하다.
이제는 내가 광고인 행세조차 부끄러워했던 한때의 일을 더 부끄러워해야 하겠고
그보다도 '광고계의 00' '카피라이터의 00' 라는 소릴 듣기엔 부족함이 훨씬 큰
자신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을 가꾸기 위해서도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 이 글은 <카피 한 줄의 힘>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인구 - 카피 한 줄의 힘
컴온북스 - 2002. 06. 17.
탄천 [t-08.12.07. 20211212-16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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