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외국작가

6 / 톨스토이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탄천사랑 2008. 5. 2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 L.N. 톨스토이 / 맑은소리 1996. 10. 22.

11.
세몬과 마트료나는 자기들이 먹이고 입혔던 사람이 누군지,
지기들과 같이 살고 함께 일해 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두려움과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다. 
천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벌거벗은 채 홀로 들판에 버려졌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인간 생활의 괴로움도 모르고 추위나 굶주림도 알지 못했습니다.
배가 몹시 고프고 몸은 얼어오는데 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가 들판 가운데 서 있는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나 피하려고 교회 뒤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요.

날이 저물자 배고픔도 심해지고 몸은 점점 꽁꽁 얼어붙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장화를 들고 걸어오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인간이 되어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 사나이는 어떻게 이 추운 겨울을 날 것인가, 
어떻게 처자식을 먹여 살릴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마침 저기 사람이 오고 있지만, 그는 자기 아내의 가죽 외투를 어떻게 마련할 일이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일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으니 나를 도와주긴 틀렸다.'

그 사람은 저를 보더니 이마를 찡그리며 아까보다 더욱 무서운 얼굴이 되어 그대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실낱같은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나이가 되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렀습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저는 조금 전에 지나간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아까는 그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었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 보니 만면에 생기가 돌고 하느님의 그림자가 그 속에 얼비쳐 있었거든요.

사나이는 제게로 다가오더니 자기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나에게 입혀주고 그의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당도하자 한 여인이 뛰어나와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은 사나이보다 훨씬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독기 때문에 저는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여인은 저를 밖으로 내몰려고 했습니다.
만약 그대로 저를 내쫓았다면 여인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인의 남편이 문득 하느님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여인의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태도가 부드러워졌습니다.
여인은 제게 저녁밥을 권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쳐다보는 여인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저는 거기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느님은 제게 말씀하셨지요.
'인간의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저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일을 이렇게 보여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저는 더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싱긋 웃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부를 알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저는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찾아와서 1년을 신어도 망가지거나 찢어지지 않을 장화를 주문했습니다.
그 사나이를 쳐다보는 순간 저는 그의 등뒤에 제 동료인 죽음의 천사가 서 있는 걸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나이의 영혼이 해가 지기 전에 그의 몸을 떠나게 되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나이는 1년을 신어도 망가지지 않을 신발을 원하지만 
 자신은 오늘 중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저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하느님의 두 번째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였습니다.
두 번째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어 그래서 싱긋 웃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전부를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저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마지막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6년째 되는 오늘, 한 부인이 쌍둥이 여자아이를 데리고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았을 때, 저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어버린 그 아이들이 
무사히 잘 자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그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때,
 나는 그 여인의 말대로 아이들은 부모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여인이 그 애들을 맡아 잘 키우고 있지 않은가'

그 부인이 남의 아이들로 인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저는 살이 계신 하느님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도 깨달았지요.
하느님께서 마지막 깨달은을 주심으로 
마침내 저를 용서해 주신 것을 알고 너무 기쁜 나머지 세 번째로 웃었던 것입니다.

12
이윽고 천사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전신이 눈부신 빛으로 에워싸여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천사가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말을 하는 것이 어니라 마치 하늘에서 소리가 울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이와 같은 일을 깨달았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걱정하는 마음으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부자 또한 는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어떤 인간에게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살아서 신을 장화일지, 
죽은 뒤에 신을 슬리퍼인지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인간이었을 때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 자신이 내 일을 여러 가지로 걱정하고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과 그 아내에게 사랑이 있어 나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두 고아들이 잘 자라 온 것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해 준 덕분이 아니라 
한 여인에게 사랑의 마음이 있어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각자 자신의 일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 다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는 곧 하느님께서 인간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인간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보여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분은 인간들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자신과 모든 인간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걔시히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각자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들의 착각일 뿐,
진실로 인간은 오직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자는 하느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며,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 계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밀을 마치자 천사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퍼져 온 집안이 울리는 듯했다.
그때 천장이 갈라지고 땅에서 하늘까지 불기둥이 치솟았다.
세몬과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땅바닥에 엎드렸다.
미하일의 등에 날개가 돋아나 활짝 펼쳐졌다.
천사는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이윽고 세몬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집은 옛날 모습 그대로였고, 방 안에는 그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끝.


※ 이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5.28.  20240508_164626]

댓글